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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화)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스트레스와 동현적 사고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전 UFC 선수 김동현에게 KO패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공포였다.

 

데뷔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실신’이나 ‘타격에 의한 패배’는 선수 생명을 위협할 것 같은 거대한 벽이었고, “얼마나 아플까”라는 원초적인 불안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심리적 제약은 그를 더욱 방어적이고 신중한, 그래플링 중심의 경기 운영에 머물게 했다.

 

전환점은 2011년 카를로스 콘딧과의 경기에서 찾아온 생애 첫 KO패였다. 허무하게 쓰러진 뒤 정신을 차린 그가 느낀 것은 예상했던 극심한 고통이 아니라 아무런 기억조차 남지 않는 ‘무(無)’의 상태였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끝나버린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KO가 생각만큼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실체를 마주하자, 공포는 힘을 잃었다.

 

그 이후 그의 두려움은 ‘맞아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패배에 대한 공포를 내려놓자 경기 스타일은 더욱 과감해졌고, 안전한 승리보다 위험을 감수하는 타격전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스턴건’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파괴력이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이른바 ‘동현적 사고’로 이어진다. 이는 힘든 상황을 “운동(경험)이 된다”라며 성장의 기회로 전환하는 적극적 긍정의 방식이다.

 

‘오히려 좋아’라는 원영적 사고를 넘어, 고통을 즉시 성장의 에너지로 바꾸는 능동적 사고라는 점에서 더 강력하다.

 

 

며칠 전, 관세국경인재개발원 신입생 수료식에 참석했다. 낯설었던 교육의 시간이 어느덧 마무리되고, 각자의 현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 얼굴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학 무렵 진행했던 특강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슬기로운 세관 생활을 위한 36가지 지혜’를 이야기하며 마지막 한 문장을 특히 강조했다. 수료식 자리에서 그 문장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적절한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이롭다”였다. 긴 교육의 시간 속에서도 그 한 문장이 남아 있기를 바랐던 마음이 조용히 닿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평온함을 바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흔들림 없는 상태를 이상처럼 여긴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요한 삶은 우리를 무디게 만든다. 긴장과 자극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성장의 가능성 또한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쌓인 안일함은 어느 순간 더 큰 부담과 어려움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반대로 적절한 스트레스는 우리를 단련시킨다. 당장은 버겁고 피하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작은 긴장과 부담이 축적될수록 스스로를 다루는 힘이 생기고, 결국 더 큰 만족과 성취로 이어진다.

 

세관의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순간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하고, 작은 빈틈이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긴장 속에서 전문성과 책임감이 자라난다. 그 축적이 모여 결국 ‘경제 국경을 지킨다’라는 사명으로 완성된다.

 

수료식장을 나서며 다시 한번 그 문장을 되새겼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우리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Antifragile)』로 이어진다.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그는 충격을 견디는 것을 넘어, 오히려 충격을 통해 더 강해지는 존재를 말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오며 체감해 온 삶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생명체는 역설적이다. 아무 자극도 없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기능이 퇴화한다. 편안함이 지속될수록 몸과 마음은 무뎌진다.

 

반면 적절한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세우고, 이전보다 더 강한 상태로 회복한다. 탈레브가 말한 ‘과잉 보상’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다음 충격에 대비한 강화의 과정이다.

 

우리 몸만 보아도 그렇다. 근육은 쓰지 않으면 약해지지만, 반복적인 자극을 주면 더욱 강해진다. 뼈 역시 충격을 통해 밀도가 높아진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고통이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개념도 같은 맥락이다. 해롭다고 여겨지는 자극도 극히 적은 수준에서는 오히려 면역과 저항력을 높인다.

 

백신 역시 약화된 바이러스를 통해 더 큰 위험에 대비하는 원리다. 작은 충격이 큰 위기를 막는 셈이다. 이러한 원리는 개인을 넘어 조직과 사회에도 적용된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축적된 경험이 결국 더 큰 혁신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활용하느냐이다.

 

결국 스트레스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활용해야 할 자원이다. 너무 크면 무너지고, 너무 없으면 쇠퇴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힘들다고 느꼈던 순간들 또한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였고, 우리를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작은 긴장과 부담 역시 언젠가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스트레스는 정신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신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체내 비타민 C는 빠르게 소모되고, 이는 피로 누적과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다.

 

비타민 C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조절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작용을 통해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지속적인 긴장과 과중한 업무 환경에서는 그 필요량이 더욱 증가한다.

 

나 역시 부산세관 통관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수입과장의 권유를 계기로 비타민 C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하루 3,000mg에서 6,000mg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건강 습관을 넘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감당하기 위한 하나의 실천이기도 하다.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는 이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 마지막 문장을 오래 간직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슬기로운 세관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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