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옛사람들은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꺼낸 순간, 마치 신호라도 받은 듯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웃으며 우연이라 넘기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묻는다. 정말 단순한 우연일까.
양자역학은 이런 질문에 뜻밖의 힌트를 준다. 미시 세계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진 입자도 하나의 상태로 묶여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는 양자얽힘 현상이 존재한다. 공간이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연결은 유지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과 호랑이가 실제로 양자얽힘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중요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깊은 연결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이다. 생각과 말, 관심과 기억은 보이지 않는 신호처럼 퍼져 나가고, 그 신호가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과 사건을 만들어낸다.
양자 세계에서 관측이 상태를 결정하듯, 우리의 관심과 말도 현실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사람은 우리의 세계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결을 직감한 오래된 지혜인지도 모른다. 양자 역학이 보여준 것처럼,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깊은 연결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세계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멀리 떨어진 입자가 하나의 상태로 묶여 있는 ‘양자얽힘’, 관측하는 순간 상태가 결정되는 현상, 전자가 연속이 아닌 불연속적인 에너지 상태만을 갖는다는 사실. 미시 세계에서는 직관보다 법칙이 앞서고,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구조가 더 본질적이다.
이 낯선 세계가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된 것이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는 단순한 금속 조각이 아니라, 전자의 에너지 띠와 이동을 정밀하게 통제해 만든 과학의 집약체다.
실리콘에 극소량의 불순물을 넣어 전자의 흐름을 설계하고, 나노미터 단위의 구조를 통해 전류의 ON과 OFF를 조절한다. 전자의 미세한 상태 변화 하나가 신호가 되고, 그 신호가 모여 계산이 되고, 계산이 모여 오늘의 디지털 문명을 만든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클라우드, 자율주행, 우주 산업까지—모든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전자의 질서에서 출발한다.
얼마 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실감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공장이었지만, 그 경쟁력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었다. 극도로 정밀한 공정, 수십 단계에 걸친 관리 체계, 나노 단위의 설계와 오차 관리.
먼지 하나, 진동 하나, 온도 변화 몇 분의 일도 허용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생산되는 칩은, 결국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얼마나 정밀하게 이해하고 통제하느냐의 결과물이었다. 미시 세계의 법칙을 다루는 능력이 곧 국가 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임을 그 현장에서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연결을 떠올렸다.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가 설계에서 생산, 물류, 수출까지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제도와 행정이 함께 작동한다.
원재료 수입, 장비 통관, 공정용 소재 관리, 해외 수출 절차, 외환 흐름 관리까지 어느 하나 막히면 전체 공급망이 흔들린다. 눈에 보이는 공장은 기업이 세우지만, 보이지 않는 흐름은 제도가 지탱한다. 이 복잡한 흐름을 조용히 이어 주는 기반이 바로 관세행정이다.
보세공장 제도는 그 핵심적인 축이다. 기업이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출하는 과정에서 관세 부담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제도는, 생산과 수출이 끊기지 않도록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통로다.
반도체 공정에서 전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에너지 구조를 설계하듯, 보세공장 제도는 기업이 글로벌 생산망 속에서 속도를 잃지 않도록 제도적 길을 마련한다.
생산 라인이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 기술이 세계 시장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은 행정이다. 오늘의 K-반도체 경쟁력 뒤에는 기업의 연구개발과 투자뿐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이런 제도적 기반이 함께 서 있다.
외환 검사와 데이터 분석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아주 작은 오차가 결과를 바꾸듯, 국제 거래에서는 작은 불법 자금 흐름이나 허위 신고 하나가 시장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속도와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거래의 안전성이 의심되는 순간 자금은 멈추고,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시장은 위축된다. 관세청이 국경을 넘는 무역 데이터와 자금 흐름을 결합해 분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험을 조기에 관측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행위는 단순한 단속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안전장치’다.
양자역학에서는 관측이 상태를 결정한다. 행정에서도 정확한 관측과 분석이 시장의 방향을 바꾼다. 보이지 않던 위험이 드러나는 순간 거래의 흐름이 달라지고, 데이터가 축적되는 순간 정책의 정밀도가 높아지며, 제도가 보완되는 순간 산업의 환경이 개선된다.
미시 세계에서의 측정이 현실을 규정하듯, 행정에서의 관측과 분석 역시 경제의 질서를 형성한다. 미시의 법칙과 거시의 제도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본질에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나는 예전에 면접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한 지원자에게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꼽았다. 인문계 전공이지만 물질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읽었다는 그의 대답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양자역학 관련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공부를 할수록 우리가 다루는 재화와 산업, 그리고 제도 역시 보이지 않는 질서 위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눈앞의 숫자와 서류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구조와 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인 신세영의 '전선야곡'에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이라는 가사가 떠오른다. 그것을 물리학의 공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과 믿음이 삶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산업과 제도의 연결, 기술과 행정의 연결,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마음과 현실의 결과 사이의 연결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하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양자역학은 말한다. 세계는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반도체가 보이지 않는 전자의 질서 위에 서 있듯, 산업 경쟁력은 보이지 않는 제도와 행정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신뢰 위에서 이어진다.
한국무역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들이 인식하는 올해의 가장 큰 대외 위험 요인은 환율 변동성 확대(43.5%)였다.
이어 미국의 관세 인상(40.1%), 주요국 수입 감소(28.3%), 중국과의 경쟁 심화(23.5%), 원자재 가격 변동성(18.8%)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수치는 우리 경제가 얼마나 많은 외부 변수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시장의 파도는 숫자로 나타나지만, 그 파도를 견디는 힘은 숫자 밖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이야기한다. 생산량, 수출액, 투자 규모 같은 지표는 쉽게 비교되고 빠르게 평가된다. 그러나 진짜 경쟁력은 대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축적된다.
정밀한 공정 관리, 안정적인 법과 제도, 축적된 데이터, 현장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행정,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책임. 이런 것들이 모여 산업의 기반을 다지고 국가 경제의 체력을 만든다.
과학계에는 가장 유명한 동물 두 마리가 있다. 하나는 조건반사 실험으로 잘 알려진 파블로프의 개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역학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고양이 사고실험을 제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논의는 오히려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우연한 발견은 의학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탈모 치료제는 본래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사용 과정에서 탈모 개선 효과가 확인되면서 치료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처럼 과학의 세계에서는 연구의 출발점과는 다른 뜻밖의 성과가 나타나곤 한다. 행정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와 파급효과, 즉 새로운 나비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거시적 성과는 언제나 미시적 선택에서 시작된다. 작은 제도 하나가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행정이 투자 결정을 앞당기며, 투명한 규칙이 시장의 신뢰를 높인다. 조용한 변화들이 쌓여 산업 구조를 바꾸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의 토대를 만든다.
관세행정 역시 마찬가지다. 국경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관리의 대부분은 국민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통관 절차의 신속성과 정확성, 위험관리 시스템의 정밀성, 데이터 기반의 선별과 감시, 공정한 법 집행은 모두 우리 경제의 흐름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이 보이지 않는 기반이 흔들리면 무역의 신뢰가 흔들리고,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며, 결국 국가 경쟁력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관세행정의 역할은 단순히 물품을 통과시키거나 막는 데 있지 않다. 안전을 지키면서도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불법과 위험은 차단하면서도 정상적인 교역은 더 원활하게 만드는 것, 즉 공정한 규칙 속에서 누구나 정당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공정의 사다리’를 세우는 일이다.
이 사다리는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묵묵히 받쳐주는 기반이 된다.
미시의 선택이 거시의 결과를 낳고, 작은 제도가 큰 산업을 키우며, 조용한 행정이 국가 경쟁력을 떠받친다. 보이지 않는 연결을 이해하고 정교하게 관리하는 능력, 그것이 결국 위기의 시대에 더 강한 경제를 만드는 힘이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조용한 연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보이는 세계를 더 정확히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와 노력이 쌓일 때, 우리의 국경은 더 안전해지고, 우리의 무역은 더 공정해지며, 우리의 경제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계에서 물질의 상태가 확률과 관측을 통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이는 현대 관세행정이 데이터를 통해 위험을 찾아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수출입 신고, 물류 이동, 외환 거래, 가상자산 정보는 각각 따로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관세행정은 이 데이터를 AI와 통계 분석으로 종합해 이상 징후를 확률적으로 찾아낸다. 즉,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기보다 데이터를 통해 가능성을 예측하고 필요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공정한 통관을 유지하는 것이 오늘날 K-관세행정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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