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두한 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공공요금 시장화정책을 폐기해야 하는 이유
민생경제는 무모한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대란 사태로 번지는 비상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부의 공공물가 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공공이 주도하는 물가상승이 민생경제를 집중타격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문제는 시장 논리에 맡기는 공공요금 정책은 “보편 인상-선별 구제” 충격이 중산층과 서민을 집중적으로 타격한다는 것이다. 즉, 무리한 요금 인상으로 전국민에게 재정 부담을 100% 전가한 후 원성이 높아지면 일부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방식이다.
특히, 유례없는 고금리‧고물가 국면에서 이루어지는 가격전가 정책은 민생경제를 고사시키는 자해행위와 마찬가지다. 민생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적자가 해소될 때까지 인상 기조를 유지한다는 시장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은 한, 누적된 물가 충격이 민생위기로 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지난해 발생했던 난방비 사태가 대표적인 ‘보편 충격-선별 구제’ 정책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자. 정부가 물가 상승국면에서 난방비를 일거에 40% 이상 올려 에너지대란 사태를 초래한 바 있다. 전국민이 무방비 상태에서 난방비 폭탄을 맞아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자, 정부가 100만여 가구의 취약계층을 구제하겠다는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이처럼 2000만 가구에 보편 충격을 주고 100만여 가구만 선별 구제하는 악순환이 반복하면, 나머지 1900만 가구는 점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물가상승이 실질소득 감소, 구매력 저하, 소비 충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는 물가 대책을 마련할 때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보편 위험에 보편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물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정부가 건전재정 중독에 걸리면 결국 재정이 더 불건전해지고 민생경제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좋을 때도 긴축하고, 나쁠 때도 긴축으로 일관하면 잠시 곳간을 지킬 수는 있어도 새로운 쌀이 들어오지 않는다.
즉, 민생곳간을 털어 나라 곳간을 채운다 해도 민생경제가 망가지면, 결국 나라도 국민도 더 가난해진다. 공공발 물가대란 사태로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가 얼어붙으면, 내수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 공공기관의 적자 해소가 급하다고 해서 가계 주머니를 함부로 털면 안 되는 이유다.
진짜 건전재정은 경제가 어려울 때 곳간을 풀어 민생을 구제하고 경제를 살려내 다시 곳간을 채우는 전문 역량을 보이는 것이다.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민생재정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건전재정에 가려진 곳간지기 이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지금의 민생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확장적 민생재정”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물가충격과 소득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특단의 물가대책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재정을 풀면 물가 때문에 서민이 또 죽는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요금인상 폭주 견제할 제도적 장치 필요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물가대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그 시작은 민생경제가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일단 공공요금 인상 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공물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공공물가가 일반 물가를 수렴할 수 있는 물가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하향 안정화되고 일반 물가는 3%대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공공요금이 지닌 공공성을 감안하면, 공공물가가 일반 물가보다 낮아야 한다는 게 보편적 상식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올해 공공요금 인상률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의 범위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즉, 일반 물가가 3%면, 모든 공공물가는 그 안에서 인상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공공기관 적자가 공공물가 정책의 기준이 된다면, 일시적으로 재정 부담을 덜지는 몰라도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지난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반면교사 할 필요가 있다. 경제 상황을 배제하고 단기적 관점에서 급격한 임금 인상을 단행하게 되면, 추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첫해에 16.4%를, 그다음 해에 10.9%를 올린 후 사실상 궤도에서 이탈한 바 있다.
공공요금 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공공적자 해소는 중장기 틀 안에서 물가 충격을 완화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는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그 기준은 공공요금 인상이 일반 물가의 범위 안에서 수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물가 정책은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정책 수요자인 국민이 배제된 상태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지금의 방식은 합리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공물가 정책의 참여 주체는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국민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부실을 관리할 책임이 있고, 공공기관은 자구노력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할 책임이 있다.
또한, 정책 수요자인 국민은 주어진 책임의 범위 안에서 재정 부담을 수용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책임의 주체인 정부는 공공기관 적자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을 내놓지 않고, 모든 책임을 요금 인상을 통해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국민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의 정상화와 연계해 재정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따라서 모든 참여 주체가 책임성에 기초해 공공요금 인상과 인하를 결정할 수 있는 ‘공공요금 공론화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부‧국민‧공공기관이 적자의 원인을 진단하고 책임의 범위 안에서 공공적자를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프로필] 송두한 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 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 전) NH금융연구소장(NH금융지주)
◾ 전)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 저술: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파급효과 진단,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 등 다수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