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하이트진로, 창립 96주년 정상에 '우뚝'..."또다른 100년을 준비한다"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출발

 

(조세금융신문=홍채린 기자) 주류역사의 큰 획을 그은 하이트진로가 20일 창립 96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대표 장수기업인 하이트진로는 1924년 설립 이후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고객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 참이슬과 하이트는 소주·맥주 부문 시장점유율 1위를 오랫동안 차지했다. 

 

전성기를 누렸던 하이트진로도 정체기를 피할 수 없었다. 지난 10여년 간 맥주 경쟁사 추격으로 어려운 시간을 극복해오다 지난해 3월, 필사즉생의 각오로 호주 청정지역에서 자란 맥아 100%로 만든 청정라거 테라를 출시해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테라는 출시 14개월만인 5월말 기준 8억 6천만병이 판매됐다. 이는 초당 22.7병(330ml 기준)을 판매한 셈이다. 테라는 하이트진로 맥주 브랜드 중 출시 초반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보이며, 국내 맥주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진로’ 역시 뉴트로 콘셉트로 7080년대 디자인을 복원하고 재해석해서 출시했다. 2030세대에게는 새로움을, 기성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진로는 출시 7개월만에 1억병 판매 돌파했고, 출시 13개월만인 지난 5월 기준 3억병 판매를 기록했다. 하이트진로는 4년 뒤면 국내 주류업계 최초로 100년을 맞이한다. 이 기업이 걸어온 길은 곧 대한민국 주류 역사라 할 수 있고, 국내 주류사에 다방면에서 ‘최초’의 기록을 남겨왔다. 

 

국내 최초의 주류 회사 

하이트진로의 역사는 1924년 10월 3일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한다. 1924년은 우리나라 주류사에 큰 변곡점으로 그곳에서 진로가 탄생했다. 제품명은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眞'과, 순곡(純穀)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제조방식에 따라 '이슬 로(露)'자를 합쳐 지어졌다.

 

진천양조상회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 50년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특히 ‘참이슬’은 2001년 이후 글로벌 증류주 시장에서 18년 연속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초의 맥주 회사

하이트진로는 1933년 8월 9일 당시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설립된 조선맥주주식회사에서 시작한다. 

조선맥주는 국내최초 비열처리맥주 ‘하이트’로 맥주업계 1위 탈한 후 1998년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특히, 2019년 출시한 ‘테라’는 런칭 후 현재 1초에 22병 판매되는 메가 히트 제품이다.


국내 최초 UN 군납, 크라운맥주

조선맥주는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하고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영등포공장 재건에 주력했다. 그 성과로 대한민국 최초로 1954년에 주한 UN군 군납업체로 선정되어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 

 

주한 UN군 군납업체 선정을 바탕으로 1962년 제 1회 전국상품전시대회에서는 내각수반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68년도에는 국제식품심사회에서 병맥주, 수출용 캔맥주, 내수용 캔맥주 부문 최우수금상을 획득했다. 100여년 가까운 하이트진로의 맥주 양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국내 최초 광고 CM송 ‘진로 차차차’

대한민국 최초의 CM송 ‘차차차’는 유행가로 따라 부를 만큼 크게 히트했다. 재미있는 가사와 신나는 멜로디는 술과 전혀 상관없는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애창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 광고는 극장용으로도 제작되어 큰 호응을 받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CM송 ‘차차차’는 주류사를 넘어 우리나라 광고사에도 새로운 장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차차차’ 이후 오란씨, 맛동산 등 많은 기업에서 광고 CM송을 채택하게 된다.


국내 최초 맥주 해외수출

1962년 3월 조선맥주는 국내 최초로 병맥주 등을 해외로 수출하게 된다. 국내에서 그 맛을 인정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수출로까지 이어져 크게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UN의 국제정치적 권위를 고려해보면, 당시 주한 UN군 납품이 국내 최초 맥주 수출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68년 진로소주를 첫 베트남으로 베트남 파견군인을 위해 수출했는데, 동남아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1972년에는 해외영업부를 신설하고 다양한 주류를 수출을 진행하여 해외진출 시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국내 최초 주류업계 연구소

1970년 삼학을 제치고 소주시장 1위로 성장한 진로는 축적된 양조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1974년 대한민국 최초의 주류 연구소를 개소한다. 이 연구소는 대한민국 주류사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하며 소주, 와인 및 기재주등 대한민국의 유명한 주류를 개발한다.

 

여기서 미래를 준비한 제품들이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넘어 글로벌 증류주 시장을 석권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참이슬’과 ‘진로’ 다. 하이트진로가 이 연구소를 통해 대한민국 최대 주류회사로 성장하는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하이트진로는 또다른 100년을 준비 중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100년 기업의 위상에 맞게 한국을 대표하는 주류기업으로서 오랜 양조 기술과 정통성을 바탕으로 최초의 길을 개척하여 또다른 100년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데스크칼럼] 관치금융의 덫에 걸린 농협금융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최근 농협금융지주와 대주주인 농협중앙회가 NH투자증권 사장 인선을 놓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여기에 금감원까지 가세하면서 관치금융에 대한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의 연임 도전과 관련이 있다. 정 전 사장은 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일으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장본인이다. 여기에다, 폐쇄적인 조직운영, 개인 사법리스크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6년간 장기 집권에 성공한 저력을 보였다. 그러나 증권사태가 범농협 차원의 규제 리스크로 확산되는 가운데 정영채 전 사장이 4연임에 도전하자, 대주주인 농협중앙회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쟁점을 살펴보면, 농협중앙회는 이번에는 농협 출신 인사를 추천해 NH투자증권의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자본시장 전문가를 앉혀야 한다고 반발하면서 농협중앙회와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이석준 지주회장의 말도 일리가 있고, 범농협 차원의 리스크관리가 중요하다는 대주주의 판단도 일리가 있다. 참고로,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소유한 1인 최대 주주다. 문제는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