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그룹 회장들과 금융당국 수장인 금융위원장이 다음 주 한 자리에 모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대출 만기를 오는 9월 다시 연장할지 등을 논의한다.
아울러 회장단은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대형 정보통신 기업)의 공격적 금융시장 진출과 관련, 기존 사업자인 5대 금융그룹의 입장과 불만도 위원장에 전달할 예정이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은 오는 24일 서울 명동 뱅커스클럽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함께 조찬 간담회를 진행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5대 금융지주 회장단은 비공개로 분기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갖는데 다음 주 모임에는 이례적으로 당국 인사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참석할 예정"이라며 "그만큼 지금 코로나19 관련 금융지원을 비롯해 금융권과 당국이 의견을 조율할 이슈가 많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 '9월, 무차별 대출 재연장 가능한가' 토론
이번 간담회에서 이들은 주로 9월 대출 만기 재연장 여부를 포함한 코로나19 지원 방안, 빅테크의 금융시장 진출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은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지난 2월 이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상환의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도 유예했다. 연장·유예 기한은 9월 말이다.
하지만 연장 만기가 1개월여 남은 현 시점까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타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9월 말 다시 한번 대출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결정해야 할지 은행권과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비가 한창 오는데 우산을 뺏을 수 없다"며 지속적 금융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기업인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무차별적 대출에 따른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나 정치권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과 가계를 돕는데 협조해달라고 은행에 요구하고 은행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라면서도 "하지만 조건 없는 대출 급증과 연장으로 대출이 부실해지면 그 모든 부담은 결국 사기업인 은행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은성수 위원장도 지난달 26일 한 국제콘퍼런스에서 "9월에 (대출·보증) 만기를 다시 한번 연장하자는 말이 제 입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그는 이 발언에 대해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 9월이 됐다고 우리가 갑자기 손 털고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장 참가자들에게 9월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24일 간담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참가자인 5대 금융그룹 회장들과 이 화두로 실질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대출 만기 연장뿐 아니라 '선별적' 지원 방식으로의 전환 여부도 관심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2일 시중 은행장 간담회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대응도 길게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권이 기업을 지원하는 데도 지금처럼 전방위·무차별적 지원을 계속할 수 있는지, 접근 방식을 바꿔 지원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이 총재가 기존 '전방위' 기업 지원 방식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실상 '선별' 지원 전환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으로 해석하며 대체로 전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 '금융규제, 네이버 등 빅테크에만 유리' 불만도
금융그룹 회장들은 속속 금융시장에 뛰어드는 빅테크와 기존 금융사 간 '역차별' 문제 등도 은 위원장에게 제기할 예정이다.
최근 네이버·카카오 등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통장·증권계좌·보험중개판매 등의 금융서비스에 나서면서 이에 위협을 느끼는 5대 금융그룹은 "금융당국이 너무 쉽게 빅테크에만 문턱을 낮춰준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 달 시행을 앞둔 마이데이터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과 관련, 은행 등 기존 금융사는 "우리만 모든 데이터를 네이버 등에 내주고 우리는 얻을 정보가 없다"고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은 각 금융사에 산재한 개인정보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그룹들은 여기에 참여하는 전통적 금융사만 고객의 각종 금융 거래 정보 등을 네이버 등 다른 참여 업체들에 개방하고, 네이버의 경우 네이버 본사의 막대한 검색 정보가 아니라 네이버파이낸셜이라는 신생 자회사가 가진 제한된 정보만 공유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밖에 금융당국이 금융산업 혁신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핀테크(금융기술) 업체에 대한 외환서비스 진입 요건 완화, 소액 후불결제 한도 확대 등의 영향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이런 갈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회장들에게 규제 완화 취지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달 은 위원장은 국제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새 플레이어(사업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줘 환경 변화를 유도하려고 하지만, 기존 은행·카드사들은 이미 경쟁이 심한데 플레이어 수를 늘리고 인센티브를 준다고 불만"이라며 "이해관계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화로운 정책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