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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창용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사무국장

‘4100억원’ 역대 최대 역외탈세 내부고발자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홍채린 기자) 내부고발자들은 조직의 핵심 책임자이자 조직의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다. 조직의 깊숙한 곳을 보려면 핵심관계자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철저히 배척받는다. 조직의 신뢰를 깬 배신자로 몰아붙이고, 취업 길마저 막는다. 하지만 사회는 ‘대의를 위한 현명한 침묵’보다 ‘행동하는 양심’을 요구한다. 조세금융신문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특별기획 인터뷰를 연재 한다.

 

2011년 4월 12일. 국세청은 역대 최대 규모의 역외탈세 사건을 발표했다. 추징세금은 무려 4101억원, 은둔의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사건이었다. 그가 가졌다고 추정되는 배는 무려 160척. 시도상선의 추정자산은 10조원에 달했지만, 국내에는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선박왕은 철저한 은둔자였다. 그는 자신이 조세회피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꾸미고, 국내 본사는 일개 대리점으로 실체를 감추었다. 대표에는 자신을 대리할 꼭두각시를 앉혔다. 선박왕의 지시는 USB나 구두로만 전달됐다.

 

회삿돈은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해외로 유출됐다. 해외에 숨겨둔 돈을 몰래 국내로 들여와 호텔 등 부동산 사업에 투자했다. 국세청이 시도상선 역외탈세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내부고발자 안창용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외탈세 사건이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다수 세워 거래와 지배구조 사이에 겹겹이 배치한다는 것이다. 겹겹이 겹친 거래단계, 나라별 서로 다른 회사법과 세법이 얽히면서 추적의 동선은 금세 희미해진다.

 

안 씨는 이 은밀한 돈의 흐름을 그대로 과세당국에 전달했고, 덕분에 국세청은 41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추징세액을 부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도상선 사건의 결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검찰이 2011년 10월 권 회장을 2200억원대 탈세혐의로 기소했지만, 2013년 10월 구속집행만기로 풀려났다.

 

권 회장은 국세청을 상대로 3050억원대 세금반환소송을 제기했고, 소송 끝에 이중 2226억원의 과세가 정당하다고 조정됐다. 최종 판단은 2017년 대법원으로 넘어갔지만, 최종 판결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국회기획재정위원회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도상선 탈세사건의 지지부진한 상황을 지적했다.

 

“2011년 최대 역외탈세사건인 ‘선박왕’ 사건은 부과세액이 4100억원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납부되지 않고 있고 최서원 일가재산 해외은닉 사건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큰 상황이다. 국세청은 철저한 세금부과와 재판 및 환수조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내부고발을 한 거죠?

 

안창용 씨는 국내외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인물이었다. 시도상선의 핵심 회계담당자를 맡은 그는 얼마 안 가 3년 연속 최우수 직원으로 선정됐다. 억대 연봉 정도는 우스웠을 것이다. 그의 지인들도 대기업 최고위 임원들이었다.

 

안 씨는 여러 유능한 CEO를 접해봤지만, 권혁 시도상선 회장처럼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고 술회했다. 시도상선은 조선소에서 짓고 있는 게 100척, 실제 운영되는 배가 160척 등 총 260척을 보유한 회사였다. 처음에는 놀랍고 경이로웠는데, 권 회장은 경영인으로서 인품도 훌륭했으며, 지금도 존경한다고 말했다.

 

회사 역시 안 씨를 믿었다. 안 씨는 회계책임자에서 회장 비서실장 역할까지 맡게 됐다. 그렇게 그는 시도상선 회장일가의 측근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07년 안 씨를 혼란에 빠뜨린 것은 기획팀으로 들어간 일련의 세무컨설팅 문서 때문이었다.

 

 

국내 최고의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이 합동으로 작성한 해당 문건에는 매우 공격적인 절세 수법이 담겨있었다. 주된 거래마다 페이퍼컴퍼니를 거치도록 했고, 회사 의사결정구조에서 권 회장의 이름이 지워졌다. 권 회장과 더불어 회장의 부인, 회장의 처제(재무담당이사), 회장의 동서(기획담당이사)까지도 페이퍼컴퍼니 너머로 이름을 숨겼다. 모든 거래와 활동이 소득과 최종수익자를 해외 조세회피처로 은폐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안 씨는 권 회장이 이런 일을 지시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회장 처제일가와 기획팀이 권 회장에게 과잉 충성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해당 컨설팅 문건은 ‘역외탈세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처음에는 권 회장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외부 세무자문 컨설팅을 보고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기획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역외탈세를 하면 안 들킬 수 있겠는가, 그때가 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고 따졌다.”

 

안 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회사가 금융감독원 공시 대상으로 올라가도록 했다. 회계투명성이 확보되면 합법적 절세 계획을 선택할 것이며, 자신이 아는 권 회장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합법의 영역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런데 안 씨의 권 회장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9년 검찰은 시도상선의 비자금이 홍콩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거제도 호텔 사업에 투입된 것을 포착했다.

 

안 씨에게 권 회장은 ‘처제일가가 꾸민 일이다. 내가 당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 씨는 권 회장의 말을 믿고 검찰수사에 협조했다. 담당 검사 역시 안씨의 협조를 받기 위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 버텨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2010년 1월, 3년 연속 최우수 직원이 하루아침에 빈 책상으로 보직 해임됐다. 안 씨 대신 회계책임자 자리를 차지한 건 회장 처제일가가 이끄는 기획팀의 직원이었다. 안 씨는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고 싶었지만, 권 회장과 담당 검사의 말을 믿고 빈 책상 위에서 6개월간 견딘 후 퇴사했다. 2010년 10월 검찰 압수수색과 2010년 11월 국세청 중수부 ‘서울청 조사4국’의 특별세무조사까지 이뤄졌다. 국세청 조사 담당자는 안 씨에게 수차례 협조를 요청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사상황은 이상하게 변했다. 회사 비자금에 대한 책임이 회계담당자인 안

씨에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세청 역시 안 씨를 역외탈세 혐의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안 씨는 그제야 권 회장이 처제 일가와 기획팀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을 직감했다. 검찰과 국세청도 믿을 수가 없게 됐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도상선 탈세에 대한 많은 확증이 었었다. 2011년 3월 7일. 이 날을 기점으로 안씨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안 씨는 수사당국이나 과세당국이 자신이 전달하는 확증을 묵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대한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 해당 자료를 전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무총리실, 법무부, 검경, 국세청 등 정부행정기관, 국회 법사위, 기재위, 국토위 여야 간사 등 12곳에 공익제보했다. 엘리트 출신의 회계전문가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순간이었다. 이 공익제보로 검찰은 거제도 호텔 비자금 수사에서 시도상선 탈세로 수사를 확대했다. 새로운 담당 부장검사 L. 수사담당검사 H의 수사의지는 뚜렷했다. 수 차례 법원 반려에도 권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되풀이했다. 안 씨는 시도상선 탈세재판의 1호 증인이 됐다.

 

권 회장은 당시 TK계 여당 주요 정치인사들과 상당한 인맥을 맺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2011년 7월 부장검사 L이 한직으로 배치되고, 같은 해 9월 수사담당검사 H도 좌천됐다. L은 현재 오명을 씻고 핵심 검찰인사가 됐으나, H는 결국 퇴직해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본지는 안씨에게 물었다.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내부고발을 한 거죠? 그냥 눈 감았으면 충분히 부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요.” “법을 지켜야 하니까요. 내가 맡은 일은 회계작성하는 것이었지, 도둑질은 아니거든요.”

 

세금도둑에 휘는 서민 허리

 

안창용 씨가 지불한 대가는 쓰디썼다.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협받고, 지인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알음알음 지인들이 준 일을 맡아 프리랜서로 활동했지만, 자가였던 집이 전세로, 전세가 월세로 바뀌었다. 묵묵히 견디어 준 아내가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아직 자신을 시도상선 내부고발자라고 밝히는 데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다. 기업인으로서 권 회장에 대한 존경심도 여전했다.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본지의 거듭된 제안 때문은 아니었다.

 

시도상선 사건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법원에 머물러 있다. 권 회장이 세금반환소송청구에 돌입해 수백억원의 세금을 돌려받게 됐고, 시도상선 일가의 해외 이익은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귀속됐다.

 

이 과정에서 어째서 권 회장이 역외탈세에 가담했는지 정황도 드러났다. 아들에 대한 승계문제, 상속세 회피 등이 얽혀 있었다. 재벌과 사회지도층은 세금 없는 상속을 위해 재산을 해외에 숨기고 있다. 국세청이 성실납세를 강조해도 ‘유전탈세 무전납세’가 여전했다. 내부고발자는 여전히 배척받았다. 2017년 8월 시민운동계와 민주당 일각에서는 보호기금 마련, 제보자 폭행 시 가중처벌, 증인보호제도 등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됐다. 안 씨도 내부고발자로서의 경험을 전달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계류 끝에 폐기됐다. 안 씨는 현재 시도상선의 내부고발자에서 공익 시민단체의 일원이 됐다. 2017년 10월 여권 일각과 시민사회는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를 결성했다. 권력층의 해외은닉재산에 대한 환수와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단체다. 안 씨는 이곳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안 씨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며 말을 끝맺었다.

 

“역외탈세는 힘 있고 돈 있는 권력자들의 범죄다. 시도상선을 고발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처벌이 이뤄졌다든가, 재판이 결론에 도달하는 등 어떠한 결론도 나지 않았다. 역외탈세 제보자는 보호도 받지 못한다. 역외탈세, 내부고발은 특정한 사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역외탈세로 국가의 곳간이 비면 그 빈 곳간은 서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한국 사회는 공정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정부, 정치권, 사법부, 시민 모두가 역외탈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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