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1년 반 전의 삼성물산 합병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엘리엇을 대리하여 일부 업무에 관여하였는데, 그 당시 절대 다수의 언론과 평론가들은 삼성물산을 외국 기업 사냥꾼인 엘리엇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투표권 행사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자 삼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당시 합병의 최대 이슈는 합병비율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주들이 신 삼성물산에서 어떤 비율로 주식을 배분받는지의 문제로, 한쪽이 유리하면 한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제로섬(Zero Sum) 게임과 유사하다. 공정한 합병이라면 각 회사의 가치를 잘 공정히 반영하여 합병비율을 정했어야 하는데, 과연 그랬는지가 쟁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의견들이 많지만 의외로 삼성물산 반대편인 제일모직 주주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합병을 찬성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물건을 살 때 매수인이 어떤 가격을 제시했더니 매도인이 쌍수를 들고 환영한 상황인데, 일반적으로는 그 가격이 매도인에게 유리한 높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삼성물산 측에서는 상대방인 제일모직 주주들이 합병비율에 크게 찬성하였다면 이는 반대로 삼성물산에는 불리하다는 의미가 아닌지 검토해 보았어야 한다.
한편 시너지 효과가 있으므로 삼성물산에게도 불리한 합병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회사간의 M&A는 단순히 가치의 합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가 있으므로 1+1 이 2가 아니라 3 혹은 4가 될수도 있음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를 합병비율 산정시 고려해야 할까? 시너지 효과는 부가적인 이득이고, 그와 별개로 양사 주주들의 주식 비율 조정은 양사 가치를 고려한 합리적인 합병 비율에 의하여야 한다.
필자는 삼성물산 합병의 당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합병비율에 상당한 논란이 있을 수 있기에 삼성물산 주주들이 쉽사리 동의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었음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의 주주총회에서는 주주 2/3 이상의 찬성으로 합병이 통과되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합병비율이 불합리하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삼성물산 주주들이 이렇게 압도적인 찬성 표를 던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우선 개인 주주들의 경우는 비교적 금융에 대한 전문지식이 떨어지기 때문에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 다. 그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엘리엇에 대한 비평 일색으로, 본인 스스로가 심층적인 연구를 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주주들은 기사의 내용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명백한 오보이거나 명예훼손 수준이 아닌 이상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므로 이에 대한 법적 규제도 매우 어렵다. 주주총회를 선거에 대비시켜 보면, 아무리 유권자들이 잘못된 여론에 현혹되어 투표권을 잘못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유권자들의 책임이다.
선거에 대한 국민의 참여도를 높이고 정치에 대한 관심과 지적수준이 높아져야 선진국이 될 수 있듯이, 주식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반 개인 주주들도 주주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경영진들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펀드와 같이 충분한 정보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은 어떨까. 철저히 이득을 추구하는 이들이 주가가 낮아질 줄 알면서도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선, 삼성물산 주식 뿐 아니라 제일모직 주식도 가지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상당수였다. 이 경우 제일모직의 비중이 높아서 비록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라도 제일모직에서 그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찬성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삼성그룹과 어떤 방식으로건 거래 관계가 있는 회사라면, 합병 반대표를 던질 경우 주가는 올라가겠지만 거래상의 불이익으로 인해 결국은 회사에 피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역시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합병에 찬성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삼성그룹과 거래관계도 없고 제일모직의 주식비중도 높지 않은데 합병이 자신의 회사의 손해가 됨을 알면서도 이를 찬성한 경우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국민연금이다. 최순실 특검에서도 매우 중대 사항으로 다루고 있지만, 어떠한 이유이건 만약 국민연금이 수백억 원의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하였다면 이는 커다란 문제이다. 누구보다도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관리자들이 이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신뢰를 잃을 것이고 이는 당연히 주식시장 전체의 악영향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가이다.
뇌물죄나 업무상배임죄 등 형사적인 제재가 가능하지만, 삼성물산 사건도 합병 후 1년 이상이 지나서야 최순실 게이트라는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야 검찰 조사가 이루어졌듯이 형사절차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결국 해답은 투자자들에 의한 민사소송이다. 현재 주주대표소송과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라는 제도를 통해 민사 조치를 취할 수 있으나, 남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번히 이용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관련 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사견으로는 투자자들의 권리 의식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손해를 보았어도 억울해 하기만 할 뿐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적극적인 권리 행사는 주저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소액주주운동이 더욱 활성화되고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들도 많이 등장하여 집단소송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이를 견제 장치로삼아 주식시장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방민주 프로필]
• 법률사무소 한성 변호사/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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