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주연 손해사정사)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특히 암보험금의 경우에는 암 진단 확정 요건을 둘러싼 해석 차이로 인해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보험사는 병리학적 확정을 원칙으로 내세우지만, 현실적으로 환자의 상황에 따라 이를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억울한 사례가 반복된다. 급성 백혈병 환자가 확정 절차 없이 사망에 이른 경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보험 약관상 암의 진단 확정은 조직검사, 미세침흡인세포검사, 골수검사 등 현미경적 소견을 기초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의학적으로 가장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급성 백혈병은 발병에서 악화까지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환자가 이미 위중한 상태에서 내원하거나 응급 치료가 시급한 상황에서는 확정을 위한 골수검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망진단서에는 ‘백혈병 의증’, ‘백혈병 추정’과 같은 임상적 판단이 기재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는 실제로 백혈병을 전제로 한 치료를 받았음에도, 문서상으로는 확정된 암환자가 아니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이러한 공백을 근거로 암 진단비 지급을 거절한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약관에 따른 진단 절차가 없었으므로 지급 근거도 없다.” 그러나 이 논리는 약관 전체의 취지와 법적 해석을 외면한 주장이다.
약관에는 병리학적 진단이 불가능할 경우 임상학적 진단도 암 진단의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확정 검사가 불가능했다는 사정이 입증된다면, 다른 의학적 근거를 통해 충분히 진단이 인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사례를 보면, L씨는 발열과 전신쇠약, 점상출혈 증상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빈혈과 혈소판 감소도 확인되었다. 담당 의사는 급성 백혈병 가능성을 고려해 하이드록시우레아 투여, 수혈, 감염 치료 등을 진행했으나, 환자는 며칠 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에는 ‘백혈병 의증’이 사인(死因)으로 기재되었고, 보험회사는 확정 진단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러나 당시 의료진의 처치는 백혈병을 전제로 한 치료 과정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이는 환자가 실제로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자료로 입증할 수 있느냐다. 혈액검사 수치와 말초도말 검사 결과, 항암 전처치 기록, 수혈 내역, 감염 치료 내용, 골수검사 미시행 사유 등은 모두 핵심 증거가 된다. 여기에 더해 사망진단서의 기재 내용, 담당 의사의 소견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의 자문 의견 등이 함께 갖추어진다면, 임상적으로 백혈병을 전제로 한 치료가 진행되었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적 입증은 약관의 예외 조항에 따라 암진단비 지급을 가능하게 만든다.
법원 역시 인과관계를 단순히 의학적 확정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사회적·법적 인과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따라서 병리학적 확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환자가 임상적으로 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면, 보험금 지급의 근거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각 기록이 일관되게 맞아떨어지는지, 그리고 의료적 판단과 환자의 실제 치료가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형식적 절차에만 얽매이지 않고 환자의 상태와 치료 과정을 실질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보험은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위험을 분담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다. 형식적 요건만을 내세워 지급을 회피한다면 보험의 본질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고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프로필] 김주연 손해사정사
- 現) ㈜손해사정법인더맑음 대표
- 現) ㈜FA Hub보장컨설팅 전문강사
- 前)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
- 前) 마에스트로 법률사무소
- 前) ㈜에이플러스손해사정
- 사) 한국손해사정사회 정회원
- 사) 한국보험법학회 종신회원
- 사) 자영업소상공인중앙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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