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일이 되었다 ㅡ문기주
화순에 오면
내가 잘 보인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만
모두 옛일이 되었다
찬바람이 부는 돌 언저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연을 만들고
연 날리기를 하고
연싸움을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있다
눈물 한 방울 발밑에 떨어진다
물동이를 이고 골목 어귀를 들어서며
“아들아!” 하고 부르는 어머니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리고
왁자지껄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불알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 목소리들을 사랑한 적이 있다
모두 옛일이 되었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상실의 풍경화, 시간을 건너온 목소리
문기주 시인의 시에서 화순은 지리적 고향이기 이전에, 덧칠해진 세월을 벗겨내고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분주한 세상살이에 가려졌던 나의 민낯이 비로소 선명해집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만 모두 옛일이 되었다는 담담한 진술은, 이 시에서 가장 아픈 단절의 선언입니다. 효도라는 미완의 동사가 옛일이라는 완료된 명사로 굳어버린 자리. 그 먹먹한 시차 위로 찬바람이 스치고, 시인은 돌 언저리에 앉아 하늘이라는 거대한 기억의 도화지를 펼칩니다.
연을 만들고 날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의 소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어진 연줄처럼 멀어져 버린 시간을 향한 간절한 손짓입니다. 발밑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은 그 끊어진 줄을 대신해 땅과 하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유일한 매질이 됩니다.
귓가를 울리는 환청은 이 시의 정서적 정점입니다. 물동이를 이고 들어서며 건네는 어머니의 아들아 하는 부름과, 대문을 흔들던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소음들. 시인은 그 소리들을 사랑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고 그 온기를 나누던 역동적인 순간들의 총합이었음을 시인은 문득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는 다시 모두 옛일이 되었다는 문장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닫습니다. 이 반복은 허무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수용하는 서글픈 긍정입니다. 이제 화순의 찬바람 속에 남은 것은, 그 정겨운 목소리들이 흐르던 자리에 고인 적막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옛일이라는 이름의 빈집 한 채를 가지고 삽니다. 문기주의 시는 그 빈집의 문을 열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실을 어떻게 견디며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요히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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