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7 (화)

  • 맑음동두천 -0.5℃
  • 맑음강릉 3.7℃
  • 맑음서울 -0.7℃
  • 맑음대전 2.7℃
  • 맑음대구 3.7℃
  • 맑음울산 4.6℃
  • 맑음광주 2.9℃
  • 맑음부산 6.4℃
  • 맑음고창 0.7℃
  • 구름많음제주 5.8℃
  • 맑음강화 -2.0℃
  • 맑음보은 0.7℃
  • 맑음금산 2.0℃
  • 맑음강진군 5.0℃
  • 맑음경주시 4.2℃
  • 맑음거제 5.2℃
기상청 제공

문화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 그 겨울, 남춘천역

 

그 겨울, 남춘천역_양현근

 

대합실의 나무의자는

먼지를 끌어안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펄펄 내리는 눈은 길을 지우고

새벽을 껴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역무원이 느릿느릿 잠을 털며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잔기침소리에 타닥, 타닥 불길이 일었다

허연 입김을 내뿜는 아저씨를 배경으로

등 굽은 노인이 급하지 않은 이정표를 뒤적거렸다

 

기차는 오지 않고 눈발은 풍경을 하얗게 지우는데

발목이 젖은 사람들 난로에 둘러앉아 온기를 껴입었다

 

외진 순대국밥집에서 며칠 눈에 파묻혀

막걸리나 몇 사발 걸쳤으면 싶은 날

대설주의보 소식이 분분하게 날리고

어느 설해목 아래 젖은 상처 부둥켜안고

한 사나흘 모진 눈발로 마저 휘날렸으면 싶은데

 

내내 소식은 오지 않았다

소복하게 기다림이 쌓여갈 때쯤

난로 위의 주전자는 들끓는 입김을 허공에 풀어내고​

한 그릇 국밥 같은 소리가 선로 위를 달려오고

부풀어 오르는 발자국들

먼 길 가는 노인의 보따리에

창틈으로 스며든 외풍이 시린 엉덩이를 슬쩍 걸친다

 

초행길도 같이 기대어 가면 화르르 봄꽃도 될 거라고

몰려오는 졸음이 말없이 그 바람을 당겨 덮고 있다

울퉁불퉁한 사연을 견딘 멍 자국 가뭇한 유리창에

막 나온 국밥처럼 뜨거운 입김이 공손하게 얹히고 있다

 

눈발은 가뭇없이 내리고

 

―양현근 시집, 『기다림 근처』 (문학의전당, 2013)

『별을 긷다』 (시선, 2024) 재수록

 

 

[詩作 노트]_양현근 시인

 

젖은 발목들이 나누어 입던 그 겨울의 온기

 

오래전 춘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의 기억입니다.

눈이 세상의 경계를 지우던 날,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하나 둘 남춘천역 대합실로 모여들었습니다.

 

낡은 나무 의자는 수없이 얹힌 몸의 무게로 반질거렸고,

먼지를 끌어안은 채 묵묵히 추위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역무원이 느릿하게 지피던 난로 불은

새벽을 껴입고 온 사람들의 안색을 덥히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굽은 등으로 이정표를 뒤적이고,

누군가는 허연 입김을 훈장처럼 내뿜으며 서 있었습니다.

 

그 풍경 속에 섞여 있노라면,

나 또한 한 그루 '설해목(雪害木)'이 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꺾인 가지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이 무심한 눈발 속에서 한 사나흘쯤

속수무책으로 휘날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적막을 깨운 것은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난로 위 주전자의 수증기,

멀리서 국밥 끓는 소리처럼 다가오던 기차의 진동.

 

그 소리는 기다림에 지친 몸들을 슬쩍 들어 올리는

다정한 손길 같았습니다.

 

저마다 울퉁불퉁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지만,

유리창에 서린 뜨거운 입김이 멍 자국을 가리듯,

 

초행길도 서로 기대어 간다면

언젠가는 봄꽃이 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이 시는 그 겨울 남춘천역에서 마주한,

사람이라는 이름의 난로에 대한 기록입니다.

 

세상 속으로 눈발은 여전히 흩날리지만,

그때 나누어 입던 온기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데스크 칼럼] 국세청 개혁, 이제는 ‘행정 과제’가 아니라 ‘국정 과제’다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국세청이 개청 60주년을 맞아 26일 대대적인 세정 개혁을 선언했다. 체납관리 혁신, 반사회적 탈세 근절, AI 대전환, 국세외수입 통합징수. 하나같이 국세청 내부 차원의 개선을 넘어, 정무·정책 판단 없이는 실행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이번 선언을 더 이상 국세청의 ‘업무계획’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번 회의에서 임광현 국세청장이 반복해서 강조한 키워드는 분명했다. “현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세청은 징수기관이 아니라 동반자여야 한다”, “적극행정으로 국민 목소리에 바로 답해야 한다”, “성실납세자가 손해 보지 않는 세정이 조세정의의 출발점이다”, “AI 전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세행정을 만들겠다.” 이는 수사가 아니라, 국세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이 선언이 국세청 내부 결의로 끝나느냐, 국정 운영 원칙으로 격상되느냐다. 지금 국세행정은 단순한 징수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시장 신뢰, 부동산 안정, 조세 형평, 국가 재정 건전성, 민생 회복까지 모두 관통한다. 국세청이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져도, 정치·정책 라인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번번이 중간에서 멈춰왔던 영역이다. 역외탈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