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폐쇄적인 일본 시장을 개방시키고 비관세 무역장벽을 허물려는 의도로, 1989년부터 3년간 미국은 미·일 구조 협의(SII :Structual Impediments Initiative)를 가졌으며, SII 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로 미·일 통관 전문가들(Working Group)이 분석과 논쟁을 거쳐 ‘미·일 수입통관제도 보고서’를 산출해 내었다. 이 보고서의 주요 논쟁 사항들은 전통적 보세구역제도에 바탕을 둔 수출입통관 제도의 개선/발전 노력과 그런 변화에 대한 거부/저항 논리간의 토론으로, 사회의 모든 제도, 시스템의 개선/ 발전 노력에 거의 예외없이 나타나는 변화에의 저항과 기존 제도 유지 논리의 전형적 다툼 양상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역으로 수출입통관제도의 발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하기에 소개해 본다. 옛부터 수입업자는 국내에 도착한 물품을 항구 근처 야적장(YARD) 이나 창고(WAREHOUSE)에 갖다 놓고 이 수입할 물품에 대하여 세관통관 절차를 밟게 된다. 이러한 창고나 야적장을 관세(關稅)징수 유보(留保)지역이라는 의미로 보세구역(保稅區域, Bonded Area)이라 불렀다. 이러한 보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고대 동양과 서양의 세관제도를 비교해 보면, 모든 수출입물품을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했다. 원칙적으로 종가세가 부과되었다는 등 유사점이 많음에도, 큰 차이점은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징세청부인이라는 전문직을 두어 관세를 징수했다. 반면, 동양에서는 일반직인 왕의 관리가 관세를 징수를 담당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왕과 제국을 위하여 평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들이던 징세청부인인 세리/세관원은 서양 사회로부터 좋은 평은 못받고 천대받던 부류였던 것 같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9장 9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라고 하여 천대받던 세관원 마태도 예수를 만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12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거하며 예수를 소개하는 전도를 하였다 한다. <국부론>(1776)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영국 스코틀랜드 동해안의 작은 항구도시 커콜디에서 세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778년부터 에딘버러 세관 국장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세관(Customs)이나 관세(tariff, customs duty)라는 제도는 어떻게 생겨 났을까? 세계 관세역사에 관심을 갖고 학습해온 필자의 생각으로는 세관/관세라는 제도가 생성·발전되기 위해서는 세가지 여건이 구비돼야 한다. 첫 번째는, 대외무역·교역이 융성해야 한다. 기원전 5-4세기에 관세제도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추정되는 그리스의 경우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저편에서 가져다주는 채소, 식량등이 필요하였고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는, 무역상인들이 그 지역 권력자에게 통행세나 수수료 명목으로 교역물품의 일부를 주더라도 (악어와 악어새 같이) 무역상인들의 활동을 안정적으로 보호해 주는 힘, 권력이 건재해야 한다. 그리스 시대의 무역 상인들은 아테네 해군력의 보호아래서 안정적인 교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셋째로는 오랜 기간, 먼 장거리 이동이 필수적인 무역의 위험을 헷지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주조화폐, 해상 보험, 대부제도등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의 경우, 기원전에 이미 주조화폐가 유통되었고, 금융업과 해상 보험을 합친 것 같은 모험 대부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미국의 행정수도 워싱턴 D.C를 방문해 버스 투어(bus tour)를 하면 백악관을 바로 지나 그늘진 한 건물에 다다르면 버스기사 겸 관광 가이드가 관광객들(visitors)에게 “미국 역사상 적자가 아닌 흑자 재정(balanced budget)을 운영한 유일한 재무장관이 누군지 아느냐?” 고 호들갑을 떨며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정답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초대 재무장관이라며 차창 너머 미국 재무성 건물 앞에 서 있는 알렉산더 해밀턴 장관의 동상을 가리킨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카리브 해의 영국 식민지 서인도 제도의 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출신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프랑스 위그노(*개신교도)와 영국인 사이의 혼혈이었다. 미국 독립전쟁시 죠지 워싱턴 장군의 부관이었으며 참모장을 거쳐, 죠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하여 미국 초대 재무장관(1789년~1795년)으로 임명된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재정문제 해결과 연방정부 체계를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미국 경제를 설계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무장관으로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183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관세기구(WCO, World Customs Organization)는 전세계 세관직원들의 능력배양(capacity building)을 위하여 전문적 관세기법(customs techniques)인 HS 품목분류(classification), 세관신고 가격평가(customs valuation), 불법자금세탁 방지 수사기법(Anti-Money Laundering Investigation Technique), 수사정보분석기법(Intelligence Analysis), 고위험 선택과 집중 기법(Risk Management)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 세미나등을 개최하고 있다. 교육은 WCO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랏셀에 집합해서 하기 보다는 각 세관직원들의 편의등을 고려해 6대주 각 지역별로 나누어 개최하는 것이 관례이다. 1988년 봄, 태국 방콕에서 WCO 가 주관한 세관조사 정보분석 기법 교육이 일주일간 실시되었다. 강의는 호주 관세청 조사국 정보분석과장이 맡았고, 태국·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세관의 간부급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 동력(動力)은 무엇이었을까? 웅대한 애국심? 식민지를 착취하는 영국에 대한 반영감정? 그러나 미국의 독립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다수의 국민들의 자각, 쏠림 현상들이 커다란 동력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차(tea) 상자를 바다에 던져 버린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 미국독립 전쟁의 불씨를 일으킨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보스턴 상인 사회는 42 퍼센트가 미국 독립지지자(Independencist), 39 퍼센트가 대영제국 충성파(Royalist), 19 퍼센트는 추정 불가로 분석된다. 이러한 성향 차이에는 나이와 부(富, 재산), 종교와는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출생지와 사업의 종류가 큰 요인이었음이 드러난다. 즉,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 독립에 반대하는 대영제국 충성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이 영국 회사의 중개인이나 지점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