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안이 두 달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농협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 사안은 ‘중앙회장 연임 허용’ 여부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이 해당 조항에 반발하면서 농협법 자체가 발이 묶인 상태다.
법사위 일정상 농협법이 올해 안에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지난 11월 20일 전현직 농협 조합장들이 대규모 국회 집회를 열어 농협법에 반대하는 법사위 의원들을 규탄한 바 있다. 그러나 집회를 주도했던 성명불상의 ‘조합장대책위원회’의 실체가 농협중앙회 비서실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국회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농협법의 법사위 통과가 사실상 어렵게 되자, 다소 무리해 보이지만 소관 위원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의 ‘직권 상정’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농협법에 포함된 셀프연임‘ 조항을 두고 법사위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한 만큼 직권 상장으로 본회의에서 투표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본래 법사위가 전원 합의제로 법안을 의결하는 것이 원칙임을 감안하면, 직권 상정으로 올려지면 찬성파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국회법 86조에서 따르면 법사위가 회부된 법률안에 대해 이유 없이 회부된 날(농협법은 지난 9월 20일 상정)부터 60일 이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소관 위원회(농해수위) 위원장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받은 후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거쳐 국회의장에게 법률안의 본회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할 수 있다.
개정안은 통과 후 공포되면 그 즉시 시행된다. 즉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이 임기를 마치기 전 농협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넘어 본회의에서 가결된 후 공포되면 즉각 연임 도전이 가능하단 의미다.
법사위 통과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농협회장 입법로비 의혹
일부 법사위원들이 농협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농협회장 셀프연임 조항이 법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 이성희 농협회장이 셀프연임을 대가로 입법로비를 벌였다는 정황이 농해수위 회의록, 언론 보도, 입법로비 투서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법사위가 정상적인 법안 상정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법사위원들은 물론 농협 내‧외부에서도 농협법 이슈가 현 회장을 중심으로 한 입법 로비, 인사‧이권 청탁 의혹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정황이나 증언들도 쏟아지고 있다.
입법로비 투서와 관련된 의혹은 지난달 8일 자 중앙일보 ’야끼리 싸우는 농협회장 연임법, “의원청탁” 투서도...농협 “사실무근”)와 본지 ‘입법로비 의혹으로 얼룩진 농협법 개정안...여야 정쟁으로 번져’ 기사에서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이성희 회장에 대한 입법로비 의혹은 지난해 12월 8일 처음 언급됐다. 당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준병(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의 중 ‘부장연합’ 출처의 공문 내용을 그대로 읽은 것이 발단이었다. 해당 공문에서는 이 회장이 국회의원, 국회 전문위원, 농식품부 등에 조직의 인력을 들여 로비하고 있다고 언급됐다. 입법 로비를 위해 농협중앙회 기획실을 통해 비자금이 조성되고 국회의원 등에게 농협 지역 본부장을 시켜 로비자금을 전달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왔다.
당시 해당 내용은 단순 의혹 수준에 그쳤으나, 잇따라 비슷한 류(類)의 증언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법사위 소속 김의겸(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직접 이 회장 측으로부터 로비성 발언을 들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 통과에 협조해 주면 총선 때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입법로비 정황은 이 회장의 측근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작성한 투서에도 담겨있다. 해당 투서는 내부고발 성격이 있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의혹인지 명확하지 않은 만큼 본지 취재진이 취재를 통해 확인된 일련의 사실을 정리했다.
본지가 입수한 입법로비 투서 필사본과 윤 의원이 제기했던 의혹을 종합 취재한 결과, 민주당 모 의원이 입법 로비 대가로 실제 이 회장에게 인사 청탁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다만, 인사청탁 대상으로 언급된 농협의 모 임원이 투서에 적힌 자리로 영전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또한 본지는 농협 내부 사정에 정통한 A씨에게서 또 다른 농협사업 이권 청탁 의혹에 대한 제보를 받아 그 내용을 확인했다. 이 회장이 농협 특정 사업에 B업체가 선정될 수 있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에 관한 것이다. B업체는 농협 내부에서 이 회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곳이다. 확인 결과, 실무 라인이 이 회장의 청탁 요구를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성사되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부당 하명 청탁은 있었으나 실제로 이행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청탁을 거부한 실무진 중 한 명은 2021년 정기 인사에서 업무와 관련성이 없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입법로비에 이어 부실기업에 대한 '부정대출' 문제도 불거져
또 다른 이권청탁 의혹은 농협중앙회가 부실 식품업체인 D업체에 대한 부정대출 의혹이다. 이 업체는 농협 내부에서 이성희 회장과 유착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 결과, 이 업체는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 사이에 400억 원에 육박하는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기관도 심사 프로세스가 까다로운 농협은행을 피하고 농협중앙회의 통제하에 있는 상호금융을 통해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시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D업체는 지난해 기준 부채가 404억 원에 자본이 44억 원 정도다. 즉, 부채비율이 1,000%에 육박하는 부실업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인데도 D업체는 상호금융 공동대출을 통해 여러 조합으로부터 375억 원의 공동대출을 받았다.
여기에, 농협이 추가로 지분투자까지 했다는 제보가 있지만,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대출 규모가 과도하게 큰 것도 이례적이지만, 만약에 농협이 이 업체에 지분투자를 했다면,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부채비율이 1,000%에 달하는 부실기업이 대규모 금융기관 대출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심사역에 따르면, "통상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과다채무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 심사가 매우 까다롭고, 그 비율이 300% 이상인 한계기업의 경우에는 사실상 추가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회장의 입법 로비, 인사‧이권 청탁 의혹은 농해수위 회의 중 윤 의원의 폭로로 시작돼 점점 범위와 유형이 광범위해지는 양상이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제기된 입법 로비, 인사‧이권 청탁 의혹은 농협법 개정안 통과에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도출된 입법로비나 이권개입 등 비리가 사실이라면 횡령, 뇌물수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어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편, 지난달 29일 법사위 전체회의 역시 파행으로 끝났다. 법사위는 이날 민주당 법사위원들의 요구로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한 건의 법안 처리도 하지 못하고 24분 만에 산회했다. 농협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농협중앙회 측은 2009년 도입된 단임제에 따른 ‘연임 제한’이 과도한 자율권 침해라는 입장이다.
법사위 소속 박용진(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 바 있는데, “현 회장이 출마하지 않겠다면 논란은 간단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못 박았다. 농협법은 농업인과 농촌을 위한 민생법안이다. 이성희 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농협법의 병목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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