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공직자의 재산등록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자 중하위 공직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여당이 이런 극약처방을 검토하는 것은 LH 사태 발발 이후 전국에서 일반 공무원과 선출직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민심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재산을 등록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국민 신뢰를 얻으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이를 꼼꼼히 살펴 부당한 재산축적이 있는지 가려내고, 현재 1급 이상으로 한정한 공개 범위를 넓히는 한편 허위 등록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하는 등 제도의 완결성을 높여야 한다.
◇'내 재산 다 드러난다"…숨죽인 공직사회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는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고, 향후 공무원·공공기관·지자체·지방 공기업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로 재산등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직자 부동산 거래 시 사전신고제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먼저 LH처럼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의 재산등록을 추진하고, 다음 단계로 이를 모든 공무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일부 특정분야는 7급 이상)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에 대해서는 재산 등록, 1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재산 공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등록재산은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심사한다.
현재 전체 공무원 수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를 합쳐 111만3천800명이다. 이 가운데 재산등록의무자는 14만1천700명, 재산공개 대상자는 864명이다.
여기에 공직자 범주에 들어가는 공기업 등 공공기관 임직원까지 포함할 경우 재산등록 대상자는 확 늘어난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을 합한 공공기관 전체 인력은 41만명에 달한다.
공직자 재산등록제가 전면 확대되면 이들은 재산을 등록한 뒤 해마다 변동사항을 신고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공개 재산은 열람이 가능하지만 등록 재산은 일반인이 열람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 청렴도는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27로 하위권이었다. 일본은 물론 칠레, 스페인,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보다 낮았다. 재산등록이 모든 공직자로 확대되고 이해충돌방지법 등이 만들어지면 공직 사회의 부패지수는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투기 등 비리 억제 효과 있을 것"
공직자 재산 등록과 공개제도가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의 비리를 과거보다 억제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번 LH 사태에서도 이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정부합동조사단의 1, 2차 조사 결과 LH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중에서는 땅 투기 의혹자들이 쏟아졌으나 중앙부처에서는 투기 의혹자가 적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경우 고위직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산등록을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에게까지 확대할 경우 공직 사회 전반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행정학회 회장인 박순애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선 공직자들 입장에서는 사생활이나 기본권 침해가 아니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나 공직자들이 재산 문제에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하기에 투기나 뇌물수수 등의 비리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는 공직자들에게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김영란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대상자들의 불만과 불편이 컸지만, 실제 매사 조심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재산등록 역시 공직자들이 감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익명을 원한 고위 관료는 "재산 등록이나 공개를 하게 되면 해마다 늘어나고 줄어드는 재산에 대해 소명을 해야 하는 만큼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고 본인이나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재산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문제는 토착 비리에 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지방 공직자들인데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면 보유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감사 부서에서 손금보듯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일탈을 제어하는 제동장치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재산등록은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으로 제한돼 형제·자매나 배우자 친인척 명의 등으로 차명 투기를 할 경우 걸러낼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