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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메디치, 마키아벨리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작품 ‘앙기아리 전투’

메디치, 무법자에서 지식인으로

 

(조세금융신문=송종운 경제학박사) 이야기는 서유럽의 르네상스에서 시작됩니다.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는 가을까지 계속 될 것이고요, 가을이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실 겁니다. 물론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이야기나 튤립 광풍 같은 이야기 그리고 네덜란드의 골목골목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의 어느 곳에 그리고 어떤 상품을 눈독 들이고 그것을 거래함으로써 부유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시아 사람들은 또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드릴 생각입니다. 물론 인도차이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와 어떻게 엮이는지도 전해드릴 것이고요. 이야기는 잇고 엮어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올 한해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메디치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몇 대에 걸쳐 피렌체와 함께 했었기 때문에 역사책에서 뿐만 아니라 피렌체의 건물이나 거리 여러 곳에 아직도 메디치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는 《중세 유럽의 상인들》에서 초기 중세 상인을 무법자라고 불렀는데, 메디치 가문의 선조인 코시모 데 메디치가 딱 거기에 해당됩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닥치는 대로 돈을 모으던 시절에 잘 적응한 사람이었죠. 그러나 손자 세대에 오면 무법자라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날립니다. 그 손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위대한 사람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입니다. 


1478년 겨우 마흔넷의 나이로 죽은 로렌초가 한 여러 일 중 하나는 학문의 기초를 닦는 일이었는데요, 메디치 가문은 로렌초의 할아버지 코시모 때부터 35년간 꾸준히 책을 모으고 필사본을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림잡아 300만 파운드 정도될 겁니다. C. F. 영의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로렌초가 얼마나 많은 금액을 도서 구입에, 그것도 매년(!) 지불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폐 가치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로렌초가 매년 책에만 지불한 액수는 65000~75000파운드에 해당한다. 그는 저명한 조반니 라스카리스를 순전히 고대 문헌 발굴과 구입을 위해서만 두 번씩이나 동방에 보냈다. 라스카리스는 두 번째 배를 타고 돌아올 때 200권의 그리스어 서적을 가지고 왔는데, 그 중 80권은 당시까지 심지어 알려지지도 않은 책들이었다.”


지금 시세로 매년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책 구입에 지출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돈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상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대 유명한 지식인 이자 출세에 목숨 건 마키아벨리도 로렌초의 열혈팬이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비루투스(실력)와 포루투나(운) 같은 개념으로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정치학자였습니다.

 

‘기회(운)’가 오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으로 한몫 잡아야 한다고 했었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첫 페이지에는 “위대한 사람 로렌초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정치 참모가 되어 당대 로렌초의 권력 한 편을 누리고 싶어 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쇠락,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다운 대응

 

시간이 흘러 위대한 사람 로렌초가 죽고 난 후 메디치는 별볼일 없는 가문으로 전락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과연 어떤 태도로 메디치 가문을 대했을까요? 정치적 술수의 황제답게 마키아벨리는 이 상황을 틈타 권력을 메디치에게서 시민의 품에 돌려주자는 주장을 합니다. 공화정을 정착시키겠다는 근사한 말로 포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로렌초 살아생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겠죠. 한때나마 로렌초에게 구애했던 사람이 이젠 메디치를 피렌체에서 아예 지워 버리려고 하네요. 그러던 와중에 첩보가 하나 들어오는데요. 로렌초가 죽고 나서 피신했던 아들 피에로가 피렌체 외곽 앙기아리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메디치에게 흠집을 낼 방법만 생각하고 있던 마키아벨리에게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할아버지 코시모 데 메디치가 떠벌리고 다녔던 전투 영웅담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 장소가 앙기아리였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앙기아리 전투의 실상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여우의 지성’을 치켜세웠던 마키아벨리다운 해법입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선택한 방법은 좀 남달랐습니다. 글을 쓰거나 광장으로 나가 연설을 해서 메디치 가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대신 허풍쟁이 코시모의 앙기아리 전투를 그림으로 만들어 생생하게 폭로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것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해서 말입니다. 

 

다빈치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앙기아리 전투’


앙기아리 전투가 대관절 어땠길래 메디치 가문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을까요? 작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알렉산더 리의 《마키아벨리: 생애와 시대》는 1440년 벌어진 이 전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위대하고 길었던 이 전투는 오후 2시에서 시작해 6시에 끝났다. 단 한 명의 사상자를 냈을 뿐인 이 전투는 피린체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다친 다른 한 명 또한 말에서 떨어진 것이지 적에 공격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즉, 그렇게 떠벌리고 다닐만한 영웅담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앙기아리에 몰락한 가문이지만 명성은 자자한 후손이 기회를 틈타 피렌체로 다시 진입하기 위해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죠.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의 전투’라는 그림에는 또 다른 기막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나리자’보다 더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앙기아리의 전투’ 이야기로 다음 호에 찾아 뵙겠습니다. 

 

 

[프로필] 송 종 운

한신대 정치학 학사, 서울대 정치학 석사, 경상대 경제학 박사

(현)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

(현)포용금융연구회 기획부위원장

(현)공정금융포럼 정책본부장

(전)백석예술대 초빙교수

(전)울산과학기술원 연구원

(전)한국사회경제학회 운영위원장

(전)민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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