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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메디치은행과 예술인, 상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메디치은행 3부작, 세 번째 이야기

 

(조세금융신문=송종운 경제학박사) 메디치은행과 르네상스를 풍비하였던 여러 예술인들과 상인들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 의문이 생깁니다. 이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사실 이 질문은 르네상스 시대 상인들과 예술인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미 답을 제시드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상인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했던 것이기에 부흥도 함께, 그리고 쇠퇴도 함께 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상인의 영광스러운 시절이 사라지면서 이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던 예술인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입니다.

 

메디치은행 가문과 예술가들과의 관계는 여럿 있습니다. 조반니 데 메디치는 브루넬레스키에게 의뢰해서 산 로렌초 성당에 작품을 남겼습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프라 안젤리코에게 의뢰해서 산 마르코 성당에 작품을 남겼고요. 그리고 페에로 데 메디치는 베노초 고촐리에게 의뢰해서 메디치 저책의 기도실에 예술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사했던 그 유명한 ‘위대한 로렌초’는 산드로 보티첼리에게 의뢰해서 카스텔로 별장에 길이 남을 예술작품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 같이 예술가들의 작품 모두 상인가문의 의뢰를 받은 것입니다.

 

이외에도 조토의 산타 크로체 수도원 작품은 바르디 가문에 의해 의뢰된 것이고요, 안드레야 오르카냐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 작품은 스트로치 가문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세티 가문은 카를란다요에게 의뢰해서 산타 트리나타 수도원에 예술작품이 남게 했었죠. 거의 모두 예외 없이 상인들과 유력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비롯된 예술작품들이었던 것입니다.

 

상인들이 예술가를 후원한 까닭

 

1200년도 초‧중반 이탈리아에 교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고민의 결과 교회는 교회에 기부한 신도들에게 특권을 부여하곤 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교회가 고안한 기막힌 방법을 들어 보시죠.

 

교회는 자신의 소유지인 땅에 교회를 짓게 해준 신도에게, 십일조를 징수할 권한을 줬습니다. 라틴어로 Jus patronatus라고 부르는 후원법 혹은 후원권한에 따라 교회를 지어준 신도는 다른 신도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이 후원자라는 뜻의 패트론(patron)입니다.

 

맥락을 따라가 보니 후원은 금전적 대가를 기대하면서 지불한 일종의 투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교회가 돈 가진 사람들이 기부를 하면 대가로 금전적 수익이 발생하는 특권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이들이 바로 상인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상인의 걱정거리는 죽고 난 후에 연옥에 가느냐 마느냐였습니다. 지옥과 천국사이에 있는 연옥에 고리대금업자들이 가는 것으로 다들 믿고 있었기에 여간 고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상인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에 후원하는 것은 십일조 권한을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득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내세에 대한 보험이 생겼다는 측면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4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칙령을 내려 신앙심이 두터운 평신도들의 시신을 수도원 지하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줬습니다. 성스러운 교회에 누울 수 있다는 것은 평화로운 사후세계를 보장받는 것이기에 상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지갑을 열게 된 것입니다. 당시 교회법은 성인이나 고위 성직자 이외에는 교회 매장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20세기 영국의 위대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주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예술가들과 이탈리아 상인들의 밀월관계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며 동시에 상인들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자취를 감추게 된 것입니다. 돈 많은 상인들의 후원 사례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2019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에 휩싸였습니다. 전세계로 실시간 중계된 처참한 광경에 노트르담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17일, 복원을 위한 기부금 행렬이 앞을 다퉜고 이어지는 기부 약속도 상상을 뛰어넘었다.

 

가장 먼저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어링 그룹 회장이 1억 유로(1284억원)를 기부한다고 발표했고, 이어서 전 세계 명품의 상징 같은 존재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가 2억 유로(2569억원)를 내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로레알그룹의 베탕쿠르 메이예도 2억 유로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부자들의 기부약속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의 속내는 이랬습니다. 그동안 사회적 기부에 냉랭했던 대기업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같은 사회적 이목이 쏠린 곳에 기부하겠다고 나서니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지요.

 

이탈리아 상인들이 금전적 이득과 내세를 위한 후원이 빚어낸 찬란한 예술작품들의 흥망성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부유한 상인들의 후원과 기부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는다고 할까요? 르네상스 시대 상인과 예술가들의 콜라보의 교훈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프로필] 송종운 경제학박사

•(현)지방의정센터 센터장
•(현)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
•(전)백석예술대 초빙교수
•(전)울산과학기술원 연구원
•한신대 정치학 학사/서울대 정치학 석사/경상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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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성필 변리사가 만난 스타트업 9편 - “비디오몬스터”의 전동혁 대표
(조세금융신문=황성필 변리사) 인간에게는 창작의 욕구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창작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진화시킨다. 창작, 공유를 통한 인간의 연대 욕구도 충족된다. 이러한 욕구의 충족은 매체(커뮤니케이션 스킬)의 발전을 부추긴다. 고대의 벽화, 상형문자, 음악, 영화, 웹툰 그리고 틱톡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콘텐츠 내지 전달 매체가 된다. 매체는 기술의 발전을 떠나 논의할 수 없다. 웹3.0으로 대표되는 탈중앙화를 위한 시대정신(Zeitgeist)도 결국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 UCC가 붐이던 시절이 있었다. 프리챌과 싸이월드가 있던 시절로 기억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퀄리티 있는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따라서 자신이 기획한 영상을 창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손쉬운 영상의 제작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유튜브라는 매체는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의 전달에 가장 효율적인 플랫폼이 되었다. “비디오몬스터” 이야기 비디오몬스터는 영상제작에 획기적인 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