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사샤) 이번 호에서는 지난달에 이어 메디치 은행의 성공 비밀인 환어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똥은 인간의 배설물이지만, 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이 널리 퍼져 있으니 당연이 돈 장사하는 일은 비난 받기 딱 좋은 일이 되었겠죠.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이자는 금지되었고, 그렇지만 돈놀이 하는 사람들은 이자는 아니지만 이자와 같은 역할을 해 돈을 벌어 주는 방식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방식으로 이자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번 주제인 환어음입니다.
환어음 거래를 통해 부를 쌓게 된 메디치 은행, 환어음이란?
환어음은 이탈리아에서 물건을 사지만 당장 돈(플로린)을 지불하지 않고, 나중에 런던의 롬바드 스트리트에 있는 은행에서 파운드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환어음에 대한 정의는 이 속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하나씩 풀어 보도록 하죠. 지난호에도 말씀드렸듯이 메디치 등 은행가들은 동시에 상인이라고 말씀드렸었죠. 그러나 실제 상거래를 통해서는 돈을 얼마 벌지 못했습니다. 무역을 하면서 필요했던 지불과 결제에 관련된 업무에서 돈을 벌었던 것이죠. 일종의 교환의 기술(The art of exchange)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캄비알레라고 하는 환어음 한 장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네요.
“서기 1417년 6월 15일 피렌체에서 1,000플로린 영수. 관례(usanza)에 따라, 이를 1플로린에 40펜스의 비율로 지오반니 데 메디치 일동이 지명한 런던의 대리인에게 지불한다.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여럿 있지만 관례라는 부분에 눈길이 가네요. 우산자라고 불리는 이 관례라는 것의 의미는 지불을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어음에는 딱히 정해놓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모두 합의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가령, 피렌체에서 어음에 서명하고 브뤼헤에서 지불해야 한다면 우산자 기간은 60일이 됩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가깝기 때문에 10일, 아비뇽은 좀 머니까 한 달, 더 먼 바르셀로나는 60일, 런던은 배타고 가는 데만도 오래 걸리니까 석 달, 즉 90일이었습니다.
눈치를 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게 오늘날 어음만기일의 유래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만기 30일, 60일, 90일 등등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관례, 즉 우산자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실제 거래가 있고 나서 돈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였습니다. 걱정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1분이든 1년이든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이렇게 해서 은행가들은 내어줄 때도 프루덴셜(신중)해야 하고 서로 크레딧(신뢰)으로 엮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어음의 교환 그리고 재교환 시스템이 낳은 국제적인 금융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인‧순례자들도 애용한 ‘환어음 시스템’
이런 환어음 시스템은 비단 상인이나 은행가들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순례자들도 종종 이용하곤 했습니다. 순례자들이 길을 떠나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고 나서, 환어음만 가지고 순례를 떠나면 되었죠. 도착지인 로마에서 어음을 보여주고 현금을 받으면 되었기 때문에 길을 가는 와중에 강도를 만나 몽땅 털릴 염려도 없고 부주의해서 잃어버릴 위험도 전혀 없었죠. 이런 이유로 환어음은 상인이나 은행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사랑받았던 거래 방법이었습니다.
상인들은 주로 네 가지 용도로 환어음을 사용했습니다. 상거래 수단이자 외국과의 송금 수단, 대출의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환을 통한) 돈 벌 기회였습니다. 메디치 은행은 ‘프로 에 다노 디 캄비오’라는 계정을 두고 환전으로 인한 손실여부를 기록하였습니다. 외화평가손익 정도 되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어음 거래를 통해 환차손을 보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메디치가 아무리 뛰어난 집단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매번 환전 거래에서 이익을 보았지? 손해를 본 적도 있지 않을까?
기록에 따르면 한참 전성기 때이긴 하지만 총 67건의 거래에서 메디치 은행이 손해를 본 것은 1건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메디치 은행이 환어음 거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최초 환어음의 거래가 아니라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즉 런던에서 파운드로 받은 다음 그 돈을 마차에 싣고 피렌체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런던에서 파운드로 대출 받고, 피렌체에서플로린으로 갚을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자 이제 환어음 영수증 하나를 더 보시겠습니다.
“런던에서 166파운드 1실링 6펜스 영수, 관례에 따라, 이를 1플로린에 36펜스의 비율로 지불한다.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
아까 말씀드린 관례에 따라 석달 후 피렌체에서플로린으로 갚게 되는 이 거래를 통해 메디치 은행은 6개월만에 1,000플로린으로 11.1% 수익을 올린 것입니다. 연이율로 따지면 22% 정도 되겠습니다. 메디치는 이런 거래를, 말 그대로,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매일 했습니다. 수백 건의 환어음 거래를 통해서 메디치 은행은 엄청난 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 거래의 핵심 포인트는 환어음 발행지 화폐의 가치를 더 높여 어음을 발행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피렌체와 북유럽 지역들 간에 존재하는 환차이가 메디치 은행의 수입을 결정하는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플로린 당 약 4펜스 정도 차이가 나네요.
1397년 지오반니 디 비찌가 5,000플로린을 투자해 만든 메디치 은행은 가장 성공적인 시기로 알려진 1435년~1450년 기간 동안 수익금만 29만 791플로린을 챙겼다고 합니다. 연간 19,386플로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메디치 은행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르네상스를 큰 틀로 다뤘던 이탈리아의 이야기도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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