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주류 유통의 공정 경쟁 시대가 열렸다. 불법 리베이트가 판치던 불공정 게임의 룰이 이제 바뀌게 됐다. 불공정 경쟁이 공정 경쟁으로, 불평등·비정상 시장이 평등·정상 시장으로 바뀌기 원하는 주류 업계 숙원이 이뤄지게 됐다.
국세청은 지난 5월 30일 주류 리베이트 근절을 담은 국세청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이하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오는 20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7월 1일자로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리베이트에 대한 정의와 지급 가능 규모를 명확하게 규정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시간과 장소, 대상이 다르다면 모두 건별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국세청 고시와는 그 내용이 현격히 달라졌다. 국세청의 주류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강력한 근절추진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이다.
리베이트 관련 명확한 ‘정의’ 신설
이번 개정안에는 주류거래와 관련해 금지되는 사항을 명확하게 정의했다. 리베이트라는 용어는 없지만 ‘주류거래와 관련하여 장려금·수수료·대여금, 에누리·할인·외상 매출금 경감 등 그 형식 또는 명칭이나 명목여하에 불구하고 금품, 주류 및 용역 제공’을 모두 금지시켰다.
금품제공은 물론 주류나 용역을 제공하는 것도 불법 리베이트로 본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은 ‘주류공급과 관련하여 장려금 또는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금품 및 주류 제공 또는 외상매출금을 경감함으로써 무자료거래를 조장하거나 주류 거래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장려금 또는 수수료 명목’이라는 한정된 명칭으로 지급되는 금품 등을 리베이트로 보고 이를 금지해 왔으나 앞으로는 ‘명칭이나 명목은 불문하고’ 모든 금품 등의 리베이트를 금지하겠다는 국세청의 의지가 개정안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리베이트 규모 제한
그동안 제조사·수입업자의 리베이트는 위스키 등 양주에 가장 많이 몰렸다. 원가의 10~20% 많게는 30% 이상까지도 리베이트가 지급됐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위스키 등 RFID 적용 주류에 대해 제조사·수입업자가 주류 판매업 면허자 즉 도매업자와 함께 소매업자 중 유흥음식업자에 대해서만 리베이트를 허용하되 도매업자는 연간 공급액의 1%, 유흥음식업자는 3%로 제한했다.
지금까지는 양주에 대한 이와 같은 제한폭이 없었기 때문에 양주도매업자들은 최대 30% 이상 리베이트 받아 시장을 움켜쥘 수 있었다. 하지만 리베이트가 모든 양주도매업자에게 지급된 것은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주류 리베이트는 상위 7% 이내의 도매업자에게 전체 리베이트의 40%가 지급됐고, 그 외의 90%가 넘는 도매업자에게는 나머지 60%의 리베이트가 배분되는 형태였다.
결국, 그동안 리베이트를 거의 독점했던 상위 7% 이내의 양주도매업자들이 이번 국세청 고시 개정으로 가장 큰 치명타를 입게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통해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허용 기준이 명확해 짐에 따라 일부 상위 도매업체에 몰렸던 주류 리베이트가 고르게 배분될 수 있다는 희망이 가능해졌다.
불공정·불평등·비정상 주류 리베이트 시장이 공정·평등·정상 시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불법 리베이트, 건별 과태료 부과
불법 리베이트에 부과되는 과태료의 부과 방식도 대폭 개편됐다. 지금까지는 고시 위반 행위의 개수 산정 기준이 없어 위반 행위를 뭉뚱그려 하나로 보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고시 위반 행위 개수 산정 기준이 신설되면서 ‘행위 의사의 단일성’과 ‘위반행위의 단일성’이 모두 인정되면 하나의 행위로 본다.
‘행위 의사의 단일성’이란 단일 의사표시(리베이트 지급 의사 등)와 시간적 근접성, 장소적 근접성, 대상의 단일성을 모두 충족해야 하나의 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보면 리베이트 지급 관련 의사표시가 다르고, 시간과 장소, 대상이 다르다면 이를 각각 건별 행위로 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세청은 훈령 제2293호를 통해 ‘세법상 과태료 양정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이 규정에는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를 지키지 않는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가 명시돼 있다.
먼저 주류제조업자 및 수입업자의 경우 직전년도 수입금액이 500억원 이상인 경우 과태료가 2000만원이며, 수입금액 100억원~500억원이면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수입금액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이며 500만원의 과태료가, 수입금액 50억원 미만이면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류도매업자의 경우 직전년도 수입금액 100억원 이상이면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50억원~100억원 미만이면 500만원, 50억원 미만이면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과태료 부과가 일회성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모든 고시 위반 행위에 대해 일일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게 됐다. 과태료 한번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리베이트 주거나 받으면 모두 처벌하는 쌍벌제 도입
이번 국세청 고시 개정안에는 금품 등을 제공한 자뿐만 아니라 제공받은 자도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이 신설·개정되면서 리베이트 금지 제도의 효율성이 대폭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제조·수입업자와 도매업자의 경우는 리베이트 지급에 대해 금지했고, 수류 소매업자는 리베이트 수수에 대해 금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든 주류면허자에 대해 주류 거래와 관련해 형식이나 명칭 또는 명목 여하에 불구하고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제공받아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함에 따라 주류 소매업자는 물론 주류 도매업자의 리베이트 수수도 처벌 대상이 됐다.
주류업계 숙원 ‘공정 경쟁’ 시대 열려
제조·수입업자의 주류 리베이트 불공정한 리베이트 지급 행위는 주류 도매사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매출 상위 7% 도매상에 집중되는 리베이트로 인해 대다수의 도매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영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뜩이나 주류 매출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불공정 시장으로 인한 문제는 도매사의 수익을 더욱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오정석 전국도매업중앙회장은 2014년 취임 당시부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류유통업계의 모든 문제 및 병폐의 근본 핵심 원인이 불법 주류 리베이트에 기인한다”며 “주류도매사의 99.9%는 중소기업이지만 불법 리베이트가 극히 소수의 대자본사에 집중되면서 영세 중소기업의 영업이 더욱 어려워졌고 회원사들은 박탈감, 위기감, 생존권에 대한 절박감 등을 느끼고 있어 정책적 해결방안이 절실하다”고 외쳐왔다.
2017년 7월에는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와 한국수입주류도매협회,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이 ‘주류 유통단체 협의회’를 구성하면서 주류 제조(수입)사의 불공정한 리베이트 지급 행위의 근절을 다짐하며 MOU(업무 제휴 협약서)를 체결했다.
2018년 5월에는 ‘국회인구정책과 생활정치를 위한 모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 김상희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조세금융신문’ 및 ‘조세금융연구소’가 공동주관한 ‘주류업계 리베이트 그 해법은?’ 국회공청회가 열렸다.
정헌배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의 발제로 진행된 이 공청회는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좌장으로 정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 오정석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장, 강성태 한국주류산업협회장, 김용민 진금융조세연구원장, 윤종건 국세청 법인납세국 소비세과장 등이
토론에 나섰다.
이날 국세청 윤종건 소비세과장은 “주류 유통에서 발생하는 불법 리베이트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라면서 “각계의 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국세청에 전달해 향후 집행 및 관리, 또 정책 수립에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주류 리베이트 근절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은 가속화됐다. 결국 주류 업계의 각각의 반응을 토대로 이번 국세청 고시 개정안이 탄생했다.
일부 양주 도매상들은 이번 개정안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주류 제조사나 수입사로부터 받아오던 리베이트가 대폭 줄게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고시 개정에 대한 반대 글이 올라왔고,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사발통문이 돌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류 관계자들은 그동안의 주류 리베이트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지급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에 이를 바로잡는 이번 국세청 고시 개정안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꼭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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