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웹케시, 나이스페이먼츠와 세무사무소 미수관리 업무 혁신 새바람

웹케시, 나이스페이먼츠와 업무 협약 체결
세무사무소 미수관리 업무 불편 해소 전망

 

 

(조세금융신문=김종태 기자)  웹케시(대표 강원주)와 전제결제 서비스 전문기업 나이스페이먼츠(대표 황윤경)가 세무사무소의 미수관리 업무 자동화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9월 18일 서울 영동포 웹케시 본사에서 체결했다. 

 

양사는 이번  MOU 이후 경리나라와 더빌CMS를 연계해 세무사무소의 미수관리 업무 불편 해소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웹케시는 위 멤버스 클럽과 경리나라의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더빌CMS 마케팅을 진행하고, 나이스페이먼츠는 더빌CMS 웹사이트에서 위 멤버스 클럽과 경리나라를 홍보해 세무사와 중소기업의 미수 관련 업무 자동화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웹케시가 제공하는 세무사 전용 플랫폼 위 멤버스 클럽은 세무사의 매출 증대, 고객 서비스 향상, 업무 혁신을 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지원한다. 

 

위 멤버스 클럽은 ▲세무 비즈니스 플랫폼 ‘위멤버스닷넷’ ▲국내 대표 협업 툴 ‘플로우’ ▲수임 고객사를 위한 모바일 장부 앱 ‘세모장부’ ▲국내 최초 경리 전용 솔루션 ‘경리나라’ ▲국내 최초 경리 세무사 전문 교육장 ‘경리나라 아카데미’ 등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나이스페이먼츠는 국내 최대 결제 인프라 그룹인 나이스정보통신㈜의 결제 전문 자회사다. 기술, 통신, 금융을 융합한 혁신적인 지급결제 서비스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대표 상품으로는 자동이체 대행 서비스 ‘더빌CMS’, 전자결제 서비스 ‘나이스페이’ 등이 있다.

 

경리나라 아카데미에서 미수관리 노하우를 강의하는 이규상 세무사는 “수임처의 미수 관리 전문가라 자부하지만, 작년 연말 기준 약 1억원이 넘는 미수금을 발견하고 세무사무소의 미수관리 업무 자동화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금번 경리나라와 더빌CMS의 제휴로 세무사들의 업무 편의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석창규 웹케시그룹 회장은 “이번 협약으로 더빌CMS의 고객에게 전문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리업무를 자동화해 기업의 업무 편의성을 높여가겠다”며 “웹케시는 더 편리하고 고품질의 위 멤버스 클럽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