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마라 독도여 / 김락호 곧은 듯 부드러운 선 하늘 높은 곳까지 올려다보며 너는 세상에 외마디를 지른다. 오천 년 역사의 한 서린 아픔을 지켜보았노라고 벚꽃으로 위장한 칼날이 너의 살갗을 찢고 어미의 젖가슴에 어혈을 물들이고 아비의 입과 귀를 도려낼 땐 억지로 감춘 고통의 망령을 보아야만 했다. 해국이 만개한 돌 틈 사이와 거친 섬제비쑥에 숨겨두고 괭이갈매기 울음소리가 하얀 각혈로 바위를 물들일 때까지 눈물을 감추어야만 했다. 너는 거기서 누런 황소가 끌고 가는 꽃상여를 침묵으로 지켜보며 훌쩍이는 요령 소리에 아리랑을 숨겨야만 했다. 침묵으로 통곡을 노래하던 독도여 삼키지 못한 억겁의 한이 무거운 약속으로만 남지는 않을 테니 이제는 울음을 거두어라 시린 가슴을 안고 너도 하얗게 새벽을 지키며 희망을 품고 있지 않은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미래에 맑은 영혼의 소리를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에다 외치고 있지 않은가 구멍 숭숭 뚫린 몸뚱이는 이제 저 멀리 태평양을 지나 이랑을 만들고 꽃을 피우다가 열매 맺을 것이라고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가 이제 오천만이 하나 되어 너에게 무릎을 내어 쉬게 할 터이니 너는 이제 우지마라 우지마라 독도여.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낭송 최현숙)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 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시인 이원규]
불타는 시 / 나호열 (낭송 최경애)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 동천 눈물 주머니를 꿰뚫었는지 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 시인들은 역으로 나아가 시를 읊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 길고 길었다 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 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 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 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 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 매운 눈물이 된다 아, 불타는 시 [시인 나호열]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 『망각은 하얗다』 『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 『칼과 집』 『낙타에 관한 질문』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눈물이 시킨 일』 『촉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등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2004년 녹색 시인상 수상 [詩 감상 양현근] 눈발이 성성하게 흩날리는 날 눈발이 대지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낭송 홍성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시인 신경림] 1936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학교 영문학 졸업 1955년 《문화예술》로 등단 2009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 등 다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갈대』, 『뿔』, 『농무』 등 시그림집『달려라, 꼬마』 [감상 양현근] 이 시는 한 도시 근로자의 가난한 삶과 고뇌를 노래한 작품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고향을
지리산 / 조병기 (낭송 홍성례) 지상의 산이란 산은 모두 지리산에 와서 어깨를 겨루나 보다 천왕산을 에워싼 봉우리들이 구름 위의 병풍이라 물푸레나무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등이 휘젓는 하늘 지리산에 와서는 조릿대밭을 지나 호오리새 풀잎 건드리며 바람이 가라는 데로 따라갈 일이다 가다가다 무르팍이 꺾일지라도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의 길 더러는 바위 등 타고 앉아 다람쥐 산새들이랑 놀다가도 써늘한 숲 바람이면 떠밀려가야 한다 발시린 계곡물에 나를 버리고 나면 어느새 적막강산이 내려온다 사나흘이면 어떻고 백리 길이면 어쩌랴 커니 낯선 사람들로 왔다가 친구로 돌아가는 사이라 하지만 내가 나를 찾아 헤매다 가는 지리산은 아직도 꿑나지 않은 산의 길 아무도 모르는 가슴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시인 약력] 조병기 1940년 전남 장성 출생 성균관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72년《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산길을 걸으며』『바람에게』『가슴속에 흐르는 강(江)』『회귀의 바람』 등 제3회 한국시조시학회 시조시학상 등 수상 [감상 양현근] 지리산에 오르려거든 때묻은 마음과 온갖 번뇌는 기꺼이 벗어던지시라 그저 바람이 부는 데로 발자국이 닿는 데로 터벅
별 헤는 밤 / 윤동주 (낭송 최현숙)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1]', '라이너 마리아 릴케[2]'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낭송 조정숙)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시인 약력] 김현승 1913년 광주 출생(1975년 별세) 1934년 시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때 당신들은'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암울한 일제시대 속에서도 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새벽〉,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등을 발표, 1973년 서울특별시문화상 수상, 시집 『김현승시초(詩抄)』 등 [감상 양현근] 한
사랑의 물리학-상대성 원리 / 박후기(낭송 : 김동현) 나는 정류장에 서 있고, 정작 떠나보내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던 당신의 일 분이 내겐 한 시간 같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생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당신은 날 알아볼 수 없으리라 늙고 지친 사람 이 빠진 턱 우물거리며 폐지 같은 기억들 차곡차곡 저녁 살강에 모으고 있을 것이다 하필, 지구라는 정류장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한시절 지지 않는 얼룩처럼 불편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울게 되었듯이, 밤의 정전 같은 이별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시인 약력] 박후기 1968년 경기도 평택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3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격렬비열도』 『엄마라는 공장 아내라는 감옥』등 [감상 양현근] 이별의 아픈 순간을 물리학이라는 변함없는 진리를 통하여 풀어내고 있다 아무리 뜨겁던 사랑도 언젠가는 식게 마련이고 무성했던 추억도 시간과 함께 스러지는 법이다 어느 먼 훗날 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혹여 이빠진 턱을 우물거리며 서럽게 재회하더라도 푸른 날의 기억
오월 / 피천득 (낭송 남기선)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시인 약력] 피천득 중국 상하이 호강
섬진강 하구에 와서 / 허영숙 (낭송 : 향일화) 하류에 당도하였으니 오백 리 물길 굽이굽이 둘러본 날이 어제의 일이 되었습니다 검문도 없이 국경을 넘은 듯 바다로 쉽게 빠져나간 그대는 맹물의 시절을 버리고 간기를 지녔으니 모든 물새의 혓바닥에 비릿하게 휘감기겠지만 명경의 물속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의 몸짓을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그대가 씻기고 간 강돌의 맨들맨들한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와서 그대를 놓아주고 이름조차 파랗게 읽어야 하므로 안개처럼 피던 배꽃도 감질나게 닿았던 강섶도 둥글게 몸을 말아 강바닥에 가라앉은 이마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그대가 밀물로도 다시 거슬러 올 수 없는 먼 윗목입니다 [시인 약력] 허영숙 2006년 《시안》으로 등단 2018년 <전북도민일보>소설부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바코드》,《뭉클한 구름》 등 2016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감상 양현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 : 화엄경)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버려야 보다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섬진강 상류를 흘러내린 강물이 바다에
노래여 노래여 / 이근배(낭송 : 한경동) 1. 푸른 강변에서 피 묻은 전설의 가슴을 씻는 내 가난한 모국어 꽃은 밤을 밝히는 지등(紙燈)처럼 어두운 산하에 피고 있지만 아카로스의 날개치는 눈 먼 조국의 새여 너의 울고 돌아가는 신화의 길목에 핏금진 벽은 서고 먼 산정의 바람기에 묻어서, 늙은 사공의 노을이 흐른다. 이름하여 사랑이더라도 결코 나뉘일 수 없는 가슴에 무어라 피 묻은 전설을 새겨두고 밤이면 문풍지처럼 우는 것일까 2. 차고 슬픈 자유의 저녁에 나는 달빛 목금(木琴)을 탄다 어느 날인가, 강가에서 연가의 꽃잎을 따서 띄워 보내고 바위처럼 캄캄히 돌아선 시간 그 미학의 물결 위에 영원처럼 오랜 조국을 탄주(彈奏)한다 노래여 바람부는 세계의 내안(內岸)에서 눈물이 마른 나의 노래여 너는 알리라 저 피안의 기슭으로 배를 저어간 늙은 사공의 안부를 그 사공이 심은 비명의 나무와 거기 매어둔 피 묻은 전설을 그리고 노래여 흘러가는 강물의 어느 유역에서 풀리는 조국의 슬픔을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 내가 띄우는 배의 의미를 노래여, 슬프도록 알리라 3. 밤을 대안(對岸)하여 날고 있는 후조(候鳥) 고요가 떠밀리는 야영의 기슭에서 병정의 편애(偏愛)는
인연서설_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풀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시인] 문 병 란 1935년 전남 화순 출생(2015년 별세) 시집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금요일의 노래』『법성포 여자』 등 2010년 낙동강문학상, 제1회 박인환 시문학상 제1회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 수상 [시감상] 양 현 근 사랑은
그리운 이 그리워_오세영 그리운 이 그리워 마음 둘 곳 없는 봄날엔 홀로 어디론가 떠나 버리자 사람들은 행선지가 확실한 티켓을 들고 부지런히 역구를 빠져 나가고 또 들어오고, 이별과 만남의 격정으로 눈물짓는데 방금 도착한 저 열차는 먼 남쪽 푸른 바닷가에서 온 완행 실어 온 동백꽃잎들을 축제처럼 역두에 뿌리고 떠난다 나도 과거로 가는 차표를 끊고 저 열차를 타면 어제의 어제를 달려서 잃어버린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운 이 그리워 문득 타 보는 완행열차, 그 차창에 어리는 봄날의 우수 [시인] 오 세 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65년 ~1968년 《현대문학》에 작품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모순의 흙』 『무명연시』 『불타는 물』 『사랑의 저쪽』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어리석은 헤겔』 『벼랑의 꿈』 『적멸의 불빛』 『시간의 쪽배』 평론집 『한국낭만주의 시 연구』 『20세기 한국시 연구』 『한국현대시의 해방』 『상상력과 논리』 『문학연구방법론』 산문집 『꽃잎우표』와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 등 한국시인협회상(1
쉬_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 몸, 온 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시인] 문 인 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제14회 대구문학상, 제11회 김달진문학상, 제3회 노작문학상 수상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등 [감상] 양 현 근 ‘쉬’는 다의적 의미로 읽힌다. 생리적 현상으로서의 ‘쉬’와 소멸이라는 의미의 ‘쉬’로 치환된다.
봄길_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시인] 정 호 승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외 다수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산문집 『위안』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어른을 위한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동화집 『바다로 날아간 까치』 『슬픈 에밀레종』 『산소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