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조병기 (낭송 홍성례)
지상의 산이란 산은 모두 지리산에 와서 어깨를 겨루나 보다
천왕산을 에워싼 봉우리들이 구름 위의 병풍이라
물푸레나무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등이 휘젓는 하늘
지리산에 와서는 조릿대밭을 지나 호오리새 풀잎 건드리며
바람이 가라는 데로 따라갈 일이다
가다가다 무르팍이 꺾일지라도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의 길
더러는 바위 등 타고 앉아
다람쥐 산새들이랑 놀다가도
써늘한 숲 바람이면 떠밀려가야 한다
발시린 계곡물에 나를 버리고 나면
어느새 적막강산이 내려온다
사나흘이면 어떻고 백리 길이면 어쩌랴 커니
낯선 사람들로 왔다가 친구로 돌아가는 사이라 하지만
내가 나를 찾아 헤매다 가는 지리산은
아직도 꿑나지 않은 산의 길 아무도 모르는
가슴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시인 약력] 조병기
1940년 전남 장성 출생
성균관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72년《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산길을 걸으며』『바람에게』『가슴속에 흐르는 강(江)』『회귀의 바람』 등
제3회 한국시조시학회 시조시학상 등 수상
[감상 양현근]
지리산에 오르려거든 때묻은 마음과
온갖 번뇌는 기꺼이 벗어던지시라
그저 바람이 부는 데로 발자국이 닿는 데로
터벅터벅 떠밀려 가보시라
세상의 시기와 질투와 경쟁도 없고
발시린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적막강산이
산그늘을 데리고 오는 그런 빈 마음으로 가보시라
나를 찾다 끝내 못찾고 가면 또 어쩌랴
사나흘 세상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또한 족하리
[낭송작가 홍성례]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전국 재능시낭송대회 금상
숙대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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