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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체크] 대법, 화성 니코틴 살인 사건 파기환송…"부실 기소는 인정될 수 없다"

니코틴 음독살인의 까다로움…방어흔‧척수 반사‧부식성 화상
검찰, 결정적 범행 수단으로 본 찬물…니코틴 수용액인지도 분석 안 해
초고농도 중독으로 사망한 피해자, 하지만 피의자가 구입한 건 상대적 저농도
사법 실패‧사법 살인 막는 것이 법 원칙…엄정 집행은 아니야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난 달 27일 대법원이 2021년 화성 니코틴 살인사건에 대한 유죄 선고가 잘못됐다며 재판을 꺾었다.

 

사유는 증빙 부족이었다. 대법원의 판시는 아래와 같다.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대법 2023도3477).”

 

원심의 30년 선고를 꺾은 대법의 판결. 그 배경을 살펴봤다.

 

 

◇ 1. 형사 재판의 원칙과 헌법 27조

아내와 남편 둘이 사는 집이다.

 

다음의 셋 중 아내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건은 무엇인가.

 

아내가 니코틴을 샀고, 다음날 남편이 니코틴으로 죽었다.

아내가 쥐약을 샀고, 다음날 남편이 쥐약을 먹고 죽었다.

아내가 세제를 샀고, 다음날 남편이 세제를 먹고 죽었다.

 

니코틴인가, 쥐약인가, 세제인가.

 

 

‘답은 모른다’다.

 

‘구매 행위’와 ‘먹인다’는 완전히 별개의 행동이다.

 

기소를 하려면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에 따라 사건을 규명해야 하며, ‘아내가 독극물을 샀고, 남편이 중독 사망했으니 아내가 독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으로 수사, 기소, 판결이 이뤄졌다면 이는 명백한 사법의 실패다.

 

그러하기에 형사재판의 뿌리는 헌법 제27조 무죄추정 원칙이며, 영미법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입증’, 대륙법에서는 ‘확신에 이를 정도로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 2. 사건 개요

2021년 화성 사건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1. 40대 남성 A의 아내 B는 평소 불륜 등의 문제가 있었으며, A 사망 전 니코틴 용액을 구입했다.

 

2. 2021년 5월 26일 오전 A는 출근 전 아내 B가 준 미숫가루를 먹었고, 이후 회사에 도착해 복통을 호소했다.

 

3. A는 퇴근해 속이 안 좋았지만, 오후 8시경 아내 B가 차려 준 흰죽을 반쯤 먹었다.

 

4. 오후 10시경, A는 속이 탄다며 오후 11시 26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5. A는 상태가 호전돼 27일 새벽 1시에 퇴원, 새벽 1시 30분에 귀가했고, 아내가 준 찬물을 마셨다.

 

6. 새벽 2시 45분 가상자산 사이트에 A의 아이디가 접속됐다.

 

7. 사망추정시각 새벽 3시, A는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했다.

 

8. 검찰은 아내 B가 미리 사다 둔 니코틴을 이용해 음식물에 독을 넣어 A를 독살했다고 결론, 공소를 제기했다. 범행 음식물은 5월 26일 오전 미숫가루, 오후 흰죽, 5월 27일 찬물이었다.

 

 

◇ 3. 퓨어 니코틴을 몰래 먹일 수 있다고? 어떻게?

니코틴(C10H14N2)은 무색무취의 염기성 극독성 물질이다. 치사량 추정치는 30~60mg.

 

국내 알려진 니코틴 독살 사건은 세 개다.

 

2016년 남양주 독살 사건, 2017년 오사카 신혼 신부 독살 사건 그리고 지난달 대법이 깬 2021년 화성 독살 사건이다.

 

남양주 독살 사건은 음독살인으로 추정된다. 아내가 독살 방법을 알아본 것이 포착됐으며, 이후 니코틴을 구매,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니코틴을 먹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유죄 확정됐다.

 

오사카 독살 사건은 신부의 양팔에 정맥주사 흔적이 있는 것이 결정적 증거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시신이 화장돼 끝내 정맥주사가 결정적 요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유죄 확정됐다.

 

화성 사건의 경우도 음독 살인으로 추정했었다.

 

1심은 이틀간 아내가 세 차례에 걸쳐 ‘고농도 니코틴’을 섞은 음식물을 남편에게 먹여서 독살했다고 판단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마지막 음식물인 찬물만 독물이라고 판단했다. 미숫가루와 흰 죽을 먹고 복통을 호소했지만, 전문가 견해를 종합할 때 니코틴으로 인한 통증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법은 찬물마저 니코틴 독살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단, 니코틴은 음독 살인하기 결코 좋은 독물이 아니다.

 

고농도 니코틴은 타는 듯이 쓰고, 먹게 되면 구역질 등 척수반사가 즉각 발생한다. 척수반사는 회피할 수 없는 무조건 반사다.

 

또한, 신체 조직에 닿을 경우 화학적 화상을 남긴다.

 

비유하자면, 고농도 염산을 먹여 살해하는 것과 다소 비슷한 측면이 있다.

 

낮은 농도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어설픈 농도로는 피해자의 저항, 구토반사에 걸리며, 고농도에 달하면 화학적 화상 등 각종 범행 흔적이 남을 수 있다.

 

데보라 블룸은 퓰리처 상을 수상한 과학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미국 MIT 대학 나이트 과학저널리즘 책임자다.

 

그녀는 2015년 5월 25일 WIRED지 기고문 ‘니코틴과 살인자의 화학’이란 칼럼에서 보카르메 백작부부 사건을 들어 니코틴 음독살인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1850년 벨기에 보카르메 백작의 처남 살인 사건은 역사상 첫 니코틴 살인 사건이다.

 

보카르메 백작은 처남을 죽여 재산을 취하기 위해 사전에 헛간에서 수 없는 동물실험을 했다. 헛간 실험실에서 니코틴 치사량을 연구하고, 범행 당일 처남에게 니코틴을 먹였다.

 

니코틴을 먹은 처남은 영화에서처럼 우아하게 쓰러지지 않았다.

 

처남은 쓰디 쓴 니코틴을 내뱉으며 저항했고, 보카르메 백작은 처남을 강제로 부여잡고 독을 먹였다.

 

처남이 죽자 보카르메 백작은 미리 준비했던 식초로 처남의 입가 등을 닦았다. 고농도 니코틴으로 인한 화학적 화상을 중화하기 위해서다.

 

처남의 옷도 태워버렸다. 처남의 입에서 튄 니코틴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수사에 착수한 벨기에 경찰은 다수의 증거를 발견했다. 마당에 묻힌 무수한 동물시체, 보카르메 백작의 니코틴 실험실. 보카르메 백작의 몸 여기저기에서 남겨진 저항하는 피해자로 인한 상처, 그리고 피해자의 몸에 남은 방어흔과 구타 흔적.

 

그렇지만 기소에는 이르지 못 했다. 어떤 독으로 죽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다.

 

당시에는 시체에서 니코틴을 검출하는 기법이 없었다.

 

수사당국은 당대 최고의 화학자 장 세르바이스 스타스(Jean Servais Stas)에게 시신에서 독성 검출을 요청했고, 장 스타스는 결국 시신에서 니코틴 검출법을 개발했다. 결과는 당연한 유죄 판결. 장 스타스의 검출법은 현대 독성학의 기초를 이루는 Stas-Otto 법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법의독성학자 제임스 위그모어 역시 데보라 블룸과 견해를 같이 한다.

 

그는 2020년 1월 17일 linkedin지 기고에서 보카르메 백작 사건을 언급하며, 니코틴은 강렬히 타는 듯한 쓴 맛으로 인해 음독 살인 도구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기고에서 한국의 2017년 오사카 독살 사건의 경우를 사례로 언급했다. 범인은 살해 2년 전 음료에 니코틴을 타서 여자친구에게 먹일 수 있는지 실험했다. 그러나 여자친구가 맛이 이상한 것을 감지하면서 주사기를 통한 혈액 투여로 범행방식을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 남양주 니코틴 살인 사건에서도 심리에 참여한 의사는 니코틴 음독 살인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는 물 1리터에 13ml 비율로 섞은 니코틴 수용액을 이쑤시개로 찍어서 혀에 갖다 댔다. 즉각 침이 흐르며 구역질 등 척수반사가 발생해 음독범행의 도구로 쓰기 어렵다며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그가 사용한 니코틴 용액은 1ml 당 500mg 또는 990mg이 들어간 고농축 니코틴이 아닌 1ml 당 1mg의 니코틴이었다.

 

2021년 화성 사건 심리에 참가한 의사들 역시 니코틴을 먹여서 죽이는 건 어렵다고 소견을 밝혔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법의학 사례에서는 주사기를 통한 혈액 주입 등 음독과 다른 형태의 범행이 발견된다.

 

미국 샌 오노어 원전 근로자 폴 커리는 1994년 첫 부인 린다 커리를 니코틴으로 살해한 후 2014년 새 아내를 같은 수법으로 죽여 보험금을 챙기려다 당국에 적발됐다. 독살 방법은 수면제로 무력화 시킨 후 주사로 혈액주입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혈액 주입도 완전범죄는 불가능했다. 주사바늘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패치를 통한 피부 흡수도 범행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범행 은폐는 가능하지 않다. 피부에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2020년 미네소타 전처 살인미수 사건도 완전범행에 이르지 못 했다. 범인 맥베인은 니코틴을 섞은 물을 전처에게 뿌려 살해하려 했다.

 

전처는 물이 이상해 핥은 결과 쓴 맛과 매운 맛을 느꼈고, 통증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담당 의사는 피해자에게서 중독 현상을 발견했고, 피해자의 소변에서 액상 담배 1회 용량의 10배의 담배 성분을 발견했다. 살짝 핥은 물과 피부 흡수만으로 흔적은 남았던 것이다.

 

 

◇ 4. 고농도 용액과 부실 수사

그런데 2021년 화성 사건의 니코틴 음독량은 지나치게 많았다.

 

7월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남편 니코틴 살해 판결, ‘코인과 아들’이 뒤집었다?”에서 패널은 화성 사건에서 피해자 위장에서 니코틴 2400mg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패널이 치사량의 세 배라고 말한 것을 보면 우유 1리터 두 팩 반분인 2400mg은 무리고, 240mg일 수 있지만, 일단 보도를 염두에 두고 음독살해를 조명하면 아래와 같다.

 

검찰과 2심 법원이 결정적 범행 도구로 잡은 것은 A가 마지막으로 마신 찬물이었다.

 

통상 물 한 컵은 200ml 용량이며, 여기에 물을 채울 경우 150ml~180ml가 들어간다.

 

성인은 한 모금에 약 30ml를 섭취한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물의 3분의 2는 남아 있었다고 했으니 A는 죽기 전 물을 한, 두 모금(30~60ml)을 마셨다.

 

겨우 니코틴 수용액 30~60ml을 마시고, 위장에서 240mg~2400mg 니코틴이 발견됐다는 것은 대단히 고농도의 니코틴을 섭취했다는 뜻이다.

 

적어도 1ml에 999mg 내지 1ml에 500mg 수준의 초 고농도 니코틴을 섞어야 가능한 수치다.

 

그런데 아내 B가 A 사망 전 구입했다고 니코틴 용액은 이러한 초고농도가 아니었다. B가 농축 니코틴을 제조했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초고농도 니코틴을 받았다는 증거도 없었다. 애초에 경찰은 증거 확보 과정에서 초고농도 니코틴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니코틴은 음용했을 경우 15분 내 증상이 발생, 30~66분 내 최고농도에 다다른다.

 

찬물 음용시기는 새벽 1시 30분~2시 사이인데 새벽 2시에 니코틴 수용액을 마셨을 경우 2시 15분에 증상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강한 통증이 발생해야 했다. 위장에서 발견된 초고농도 니코틴 용액을 감안할 때 통증은 더 강하고, 음용 후 사망에 이르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새벽 2시 45분 피해자 A의 스마트폰을 통해 피해자 A의 아이디로 가상자산 거래소에 접속 로그가 포착된다. 검찰 설명대로라면 죽음의 말미에서 A는 몸부림이나 119 번호를 찍는 대신 코인 시세를 확인했다는 뜻이다.

 

또한, 2021 화성 사건은 지나치리만큼 범행 은폐와 거리가 멀었다. 남편의 부검을 요청한 것은 아내 B였다. 2017년 오사카 사건에서 범인은 부검 회피와 증거 은폐를 위해 시신을 재빨리 화장하려 했다.

 

B는 자기가 산 니코틴 용액을 그대로 집에 두고 있었으며, 범행 도구로 지목된 찬물도 그대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 찬물을 분석해 니코틴이 담겨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검찰은 미숫가루, 흰죽, 찬물 셋 중 하나는 걸리겠지 식의 공소를 제기했다.

 

2심에서 한 차례 걸러졌고, 끝내 3심을 뚫지는 못했지만, 대법도 아슬아슬했다.

 

원심의 30년 선고로 인해 여론은 맹렬한 기관차와 같았다. 그 오심을 간신히 멈춰 세운 셈이었다.

 

 

◇ 5. 우리는 어째서 ‘왜’를 묻는가

아내가 니코틴을 샀다. 남편이 니코틴으로 죽었다.

 

아내가 범인일 수 있다. 2021년 화성 사건의 경우 A가 자살했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A와 아내 B간 관계가 안 좋은 정황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고농도 니코틴을 아무 흔적 없이 어떻게 먹였는지에 대한 증명은 없다. 오로지 니코틴을 산 아내와 초고농도 니코틴으로 죽은 남편, 두 가지만 명확할 뿐이다.

 

우리는 때로 몇 안 되는 껴맞춘 사실을 통해 쉽게 범행을 단정 짓고 벌을 주자고 목소리를 올린다. 우리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검사와 판사는 그럴 수 없다.

 

부실한 추정으로 범행을 단정 짓는 것은 사법실패, 사법살인이기 때문이다.

 

현대 형사 법학에서 까다로울 정도로 ‘언제’ ‘어디서’ ‘아내가’ ‘어떻게’ ‘무엇으로’ ‘왜’를 요구하는 이유는 결코, 결단코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드레퓌스 사건 등 역사상 무수히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온, 사법 실패 또는 사법 살인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 인류가 하나하나 보완하고 덧붙인 결과가 오늘 날 전 세계 형사재판의 근간을 이루는 무죄추정의 원칙이자 대한민국 헌법 27조다.

 

2023도3477 대법 판시 사항은 아래와 같다.

 

“컵의 용량, 물의 양, 피고인이 넣은 니코틴 원액의 농도와 양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생체시료에서 검출된 니코틴과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니코틴 제품의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다. 압수된 니코틴 제품 중 사용분에 포함된 니코틴 함량은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추정량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

 

“(범행을 하려면) 니코틴의 치사량, 구할 수 있는 니코틴 원액 내지 희석액의 농도와 사망의 결과에 이를 만한 투입량, 투입 방법 등에 대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하다.”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사전 범행 준비·계획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피고인이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피해자로 하여금 음용하게 하였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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