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십 수년간 다니던 서점이 영업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참새 방앗간처럼 오며 가며 들러 지식도 채우고, 지칠 땐 에너지도 채우던 정든 곳인데 많이 아쉽습니다. 새 도약을 위해 리모델링 후 재개원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을 아직 포장도 풀지 않았는데 이것이 이제는 메모리얼 물품이 되고 말았네요.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오프라인의 아이템이 하나둘 사라진다는 소식은 어찌보면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변화인데 한구석 씁쓸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습니다. 유독 이곳을 자주 찾게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점의 BGM으로 항상 피아노 소나티네가 흘러나왔다는 것입니다. ‘소나티네’란 쉽게 말하면 ‘규모가 작은 짧은 소나타’인데 가볍고 부담스럽지 않아 책 읽는 공간에서 더없이 좋았습니다. 화려함이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고, 당시의 피아노 형태로 인한 특성이긴 하지만, 절제된 페달 사용덕분인지 음악이 무척 깔끔하기도 합니다.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단순함은 마치 때 묻지 않은 소녀의 순수함을 연상시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클레멘티 소나티네 피아노라는 악기를 배울 때 초보자에서 벗어나 처음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기억하시나요?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 그리고… 이번 호의 주제인 바로 ‘한여름 밤의 꿈’. 두 젊은 남녀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랑, 도피, 그리고 요정들의 개입으로 인한 뒤죽박죽 얽힌 떠들썩한 상황이 익살스럽게 펼쳐지는 한여름 밤, 숲속에서 펼쳐지는 꿈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줄거리 요정의 숲속에서 아름다운 처녀 헤르미나는 아버지가 정해 준 약혼자인 드미트리어스에게서 도망쳐 사랑하는 애인 라이샌더와 함께 달아납니다. 그러자 드미트리어스는 약혼녀 헤르미아를 뒤따라 숲속으로 찾아 들어가며, 또한 드미트리어스를 짝사랑하는 헬레나 역시 사랑을 좇아 숲속을 헤맵니다.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헬레나를 불쌍하게 생각한 요정의 왕 오베론은 헬레나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자기 아내 티타니아에게 쓰려던 사랑의 꽃즙을 그녀에게 바르도록 계획하죠. 하지만 서두르는 통에 그만 사랑의 꽃즙을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어스에게 바르게 되고, 두 남자 모두 헬레나를 사랑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일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지만 결국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성대한 결혼으로 마무리된다는 다소 엉뚱하고 재미난 내
대한민국에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되었습니다. 기대 반 걱정 반, 사뭇 긴장도 됩니다.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의 안보가 어느 때 보다 위험한 상황이고 보니, 뽑은 사람이나 뽑힌 사람이나 떨리긴 매한가지네요. 한 사람을 소개해 봅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 1887~1961) 오스트리아 태생이며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두각을 나타내어 브람스, 말러 등 당대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 협연을 할 정도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에 참전하여 팔에 총탄을 맞고 급기야 오른팔을 절단하는 비극을 당합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이후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하죠. 그러나 그는 왼손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면서 나무상자를 왼손으로 두드려가며 상상연주를 하곤 했답니다. 종전 후 빈으로 돌아온 파울은 약간의 침체기를 딛고,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에게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해 줄 것을 의뢰하였고 빈에서의 초연은 대성 공을 거두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파울 본인도 수많은 곡을 왼손만의 연주로 가능하게 편곡하였습니다. 현존하는 전설적인 왼손의 피아니스트
동서냉전의 시대를 마감하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는 나지막한 첼로의 선율로 평화를 환영하며 맞아들입니다. 그 음악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념과 공간, 세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이 이 음악 하나로 뭉쳐질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도 여겨집니다.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작곡가 바흐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작곡가로 바흐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대중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클래식 곡이 바흐의 음악이라는 사실에 저도 깊은 수긍이 됩니다. 바흐의 곡을 감상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크 음악의 절제적인 아름다움 덕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바흐스러운’ 따뜻함과 위로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바흐의 부인인 ‘안나 막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자신의 남편이 ‘하늘의 영감을 받아 음악을 작곡한다’고 했는데,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던 내면의 보석과도 같은 음악성에 대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저는 고민이 있거나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합니다. 바흐의 음악에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베토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네!” “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친구 페르디낭의 급보를 전해들은 베토벤은 비통한 심정에 빠졌다. 베토벤이 생존하던 시기의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일대 변혁기였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나 절대주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실시된 시기였는데, 이후 나폴레옹 전쟁(1799~1814) 와중에 빈도 프랑스군의 점령으로 왕족과 귀족이 헝가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도트와 친해지며 나폴레옹에 대해 듣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신봉해 마지않던 나폴레옹은 일개 포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최고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희대의 영웅이었다. 전제군주의 폐해에 깊이 공감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며, 민중의 편에 서서 자유의 정신을 간직한 나폴레옹. 그를 너무나 신봉하던 베토벤이었기에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통해 찬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1803에 작곡을 시작해 180
여러분은 요즘 어떤 성과들을 이루어내고 계신가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일정을 맞추어 밤샘 작업을 하고, 황금빛 미래를 꿈꾸며 일분일초를 쪼개고 또 쪼개어가며 열정을 쏟고 있진 않으신지요.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우리가 만든 계획대로, 성과대로 그대로 우리에게 좋은 결과물로 돌아오면 마땅하고 좋기 그지 없겠건만, 때론 열매를 거두어 따먹어야 할 타이밍이 제대로 우리를 비켜가기도 하지요. 삶의 아이러니! 오페라 ‘카르멘’은 프랑스에서 오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비제의 음악인생에서 최고의 열정과 눈물, 그리고 한숨이 집약된 결정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또한 비제의 ‘ 역작’이자 ‘ 유작’이라는 사실도…. 1875년 3월 3일 ‘카르멘’은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오페라의 내용이 당시 최하층으로 분류 되던 집시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과 그들의 사랑싸움 끝에 결국 주인공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으로 인해 초반에는 파리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층민들의 사랑과 죽음이야기가 오페라를 감상하는 수준높은(?) 관객들에겐 고상하지도, 대중적이지도 않게 느껴졌던 것이었죠. 초연 실패 후, 비제는
지난 겨울 안팎으로 너무 힘들었지요!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세계정세도 불안불안했고, 매년 그러하긴 합니다만, 국내에서도 지난해 유독정치와 경제문제 모두 서민들을 낙담시켜 삶이 고단하기만 했던 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추울수록 새봄이 반가운 법! 올해의 봄은 그런 의미에서 더 반갑고 따스하게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봄’이라는 단어는 ‘보다’라는 어원에서 유래했다는데, 마음의 눈으로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올해의 봄이 더욱 값질 것 같습니다. 햇살이 따스해지니 몸의 근육도 유연해지고, 따뜻한 기운에 덩달아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누는 대화속에서 간간이 미소도 지어지고, 미소를 짓고보니 ‘다 잘 될거야’에너지도 생깁니다. 우리에게 있어 계절의 변화라는 것은, 달라고 보채는 노력을 애써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거저주어지는 선물 같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막아보려 옷깃을 꽁꽁싸매고 움츠려 바람을 맞으며 지내던 겨울의 고난도, 봄이 가져다주는 포근함과 여유가 있기에 더욱 그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3월호의 클래식 주제는 '봄'입니다. 이번에는 어른아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랑하며 애청되고 있는 곡들을 추려보았습니다.
고별 교향곡에서 ‘파파 하이든’의 교향악 단원들에 대한 사랑과 리더십을 느껴본다. 연초에는 어느 조직이건 새로운 리더가 세워지기 마련이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특히 무엇을 가장 우선시 하여야 할까?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을 통해서 리더로서의 자세를 한 수 배워보기로 하자. 하이든은 1766년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 관현악단 부악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에스테르하지가문이라 함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에서 거의 국왕에 버금가는 대가문이었다. 한창 잘 나갈 때에는 부리는 사람만 최대 50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이든은 이러한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소속되어 행사 때마다 음악을 준비하고 연주하는 궁정악단의 악장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서 하이든에게 여러 장르의 작곡을 하도록 많은 과제를 내주곤 했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서 극장이 딸린 거대한 궁전을 짓고 매년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그가 애지중지하는 하이든의 악단. 자연히 후작의 긴 여름휴가에 동행해야만 하는 악단의 연주자들은 매년 여름을 포함한 약6개월간의 긴 기간동안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베토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네!” “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친구 페르디낭의 급보를 전해들은 베토벤은 비통한 심정에 빠졌다. 베토벤이 생존하던 시기의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일대 변혁기였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나 절대주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실시된 시기였는데, 이후 나폴레옹 전쟁(1799~1814) 와중에 빈도 프랑스군의 점령으로 왕족과 귀족이 헝가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 도트와 친해지며 나폴레옹에 대해 듣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신봉해 마지않던 나폴레옹은 일개 포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최고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 게 된 희대의 영웅이었다. 전제군주의 폐해에 깊이 공감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며, 민중의 편에 서서 자유의 정신을 간직한 나폴레옹. 그를 너무나 신봉하던 베토벤이었기에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통해 찬미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