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재회 기자)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보름 남짓 남았지만, 선거 전략과 구도조차 불투명한 졸속 선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농협법 개정안이 현직 회장의 셀프연임 이슈에 발목이 잡혀 사실상 폐기되었다.
문제는 이성희 회장의 출마 여부가 모든 선거 이슈를 빨아들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상적인 선거를 치를 물리적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젊고 유능한 후보들이 다 탑승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후보자의 알릴 권리나 유권자 조합장의 알권리가 차단된 졸속 선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선거나 자질 검증은 사라지고 다시 돌고 돌아 지역선거로 회귀하는 흐름이다. 직선제 하의 선거 구도와 전략, 유력 후보군의 장단점, 현직 회장의 선거개입 의혹 등에 대하여 진단해 보았다. <편집자 주>
대의원 간선제 하의 지역선거 전략과 구도 진단
지난 24대 중앙회장 선거는 대의원 간선제하에서 치러진 대표적인 지역선거다. 292명의 대의원 선거의 특징은 지역을 대표하는 모수가 작아 지역의 표 결집에 유리한 특성이 있다. 1차 투표 결과를 보면, 출신 지역의 표 결집 역량이 경쟁 우위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차 투표에서는 경기도 기반이 견고한 이성희 후보가 대구·경북(TK)의 지원을 받아 82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내용을 보면, 대부분 경기도(43표)와 TK(37표)의 절대다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경기도-TK 연합에 가깝다. 반면, 69표를 얻었던 유남영 후보는 호남표 결집을 통해 2위에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전체 호남표가 69개인데 이 표의 대부분을 흡수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남이 지역 기반인 강호동 후보는 1차 투표에서 56표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경남이 28표인 점을 감안하면, 강 후보가 얻은 56표는 이보다 2배 정도 많은 수치다. 이는 강 후보가 지역간 연합이 느슨했음에도, 절반 이상의 득표를 지역 분산(유력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을 통해 흡수했다는 의미다.
반면, 전국적인 득표력을 지닌 강호동 후보가 결선 투표에 오르지 못한 이유 역시 명확하다. 경남에 뿌리를 둔 2명의 후보가 마지막까지 경합하면서 지역표 결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만약, 강호동 후보가 최덕규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1차 투표에서 무난하게 1위로 결선에 올라갔을 것이다. 산술적으로 두 후보의 표를 합쳐도 100표 이상의 득표가 가능했던 상황으로 보인다.
2차 결선 투표에서는 지역 결집보다는 지역간 연합이 성패를 가른다. 이성희 후보가 경기-영남 연합에 힘입어 확산성이 부족한 호남의 유남영 후보를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유효 투표의 60.4%(177표)를 얻은 39.6%(116표)에 그친 유남영 후보를 이기고 중앙회장에 당선된 바 있다.
정리하자면, 대의원 간선제 하의 지역선거 전략은 “1차 지역결속·2차 지역간 연합”으로 결정되는 구조다. 첫째, 유권자 모수가 작아 지역표 결속이 매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이탈표를 최소화하면서도 지역간 합종연횡이 유효하다. 선거 때마다 금권선거 의혹 등이 끊이지 않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둘째, 지역의 결속력이 약하거나 후보의 지역 기반이 취약할 경우 그 지역은 연합의 주체가 아니라 연합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 선거에서 충청도 기반의 이주선 후보가 21표를 얻는 데 그친 바 있다.
같은 듯 다른 직선제 하의 지역선거 구도
지역선거 구도는 설령 유권자 모수가 3배 이상 늘어나는 조합장 직선제하에서도 크게 달라지기 어려운 구조다. 즉, “1차 지역결속·2차 지역간 연합”의 틀 안에서 선거 구도와 전략이 짜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선제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후보들의 지역 기반이 견고하다 해도 결선 투표가 지역 간 담합이 느슨해질 수 있다.
첫째, 직선제하에서 모수의 법칙이 작동하면 조직적인 표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입법로비 의혹 등으로 수위가 높아진 사법 리스크를 감수하며까지 금권선거를 밀어붙이기도 쉽지 않다. 하여, 지역선거 구도를 깨기는 어렵지만 최소한의 정책과 자질을 평가받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 따라서 차기 중앙회장 선거는 지역 기반이 견고하고 정책 역량과 자질을 지닌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부상하는 새로운 구도는 농촌과 도시다. 농촌소멸 위험 등으로 도농 조합간 성장 격차가 선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촌 현장에 어두운 도시 조합 출신보다는 농촌 조합 출신 후보가 중앙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간의 지역선거보다는 도농 후보간 세력 결집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세 번째 이슈는 출마가 무산된 현직 중앙회장의 선거 포지션이다. 그간의 선거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공정한 선거 중립을 표명하면서도 현직 중앙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관여해 왔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전 선거에서도 최원병 전 회장이 막후에서 TK 세력을 결집해 이성희 회장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희 현 회장 역시 캠프의 핵심 인사들이 이미 특정 지역 모 후보의 캠프에 합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즉, 현직 회장의 선거 포지션에 따라 선거판이 편편해질 수도, 기울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간선제 선거에서 경험한 것처럼 현직 회장의 지역 기반과 밀약한 후보의 지역 기반이 결합할 가능성도 있지만, 오히려 역풍이 불 가능성도 높다. 현직이 직선제 선거판에 어른거리면, 이를 비판하거나 자성을 촉구하는 표심이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현직의 선거 개입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선거구도로 보는 유력 후보들의 장단점은?
이번 중앙회장 선거의 판세를 가르는 변수는 크게 ▶지역 기반과 지역간 담합 강도 ▶ 지역 이탈표의 자질평가론 ▶도시·농촌간 세력 경합이다. 3강 구도로 거론되는 3인의 후보들에 대한 장단점을 살펴보았다.
이번 선거는 선거활동 기간이 짧아 잠재 후보가 부상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경남 합천율곡농협 강호동 조합장, 부산 금정농협 송영조 조합장, 동천안농협 조덕현 조합장이 경합하는 3강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 모두 오랜 세월 농협에 몸담아 온 인사들이기 때문에, 조합장의 경륜이나 경영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주변 변수에 불과하다.
먼저, 경남 기반의 강호동 조합장은 장단점이 명확한 후보에 속한다. 가장 큰 장점은 농협법 이슈가 불거지기 이전부터 선거판에 등판해 어느 후보보다 현장의 접점이 넓다. 또한, 이번 선거가 2번째 도전인 만큼 전국적 인지도가 높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지난 중앙회장 선거에서 결선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3위를 차지해 득표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만약, 직선제하에서 느슨한 수준의 지역선거가 전개된다면, 지역 분산에 따른 이탈표 수혜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도농상생 선거구도 역시 강호동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현직 회장이 도시농협 출신이기 때문에, 차기 회장은 농촌에서 나와야 한다는 여론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강호동 후보가 지닌 단점도 명확하다.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이 견고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여러 후보가 출마하면서 지역 결속력이 약화된 상태다. 지난 선거에서도 강력한 주자로 평가받았지만, 최덕규 후보가 지역 표를 잠식해 3위에 머문 경험이 있다. 지역 내 통합을 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앉고 있다.
부산 금정농협의 송영조 조합장은 현 농협중앙회 이사를 역임하고 있어 농협 경영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도농 선거구도 측면에서도 도시농협을 대표하는 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다른 후보에 비해 높다는 평가다. 지역 기반이 견고한 영남 출신 후보인 것도 지역선거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송 후보의 단점도 명확한데, 강호동 후보와 출신 지역이 겹치는 문제다.
영남의 틀 안에서 경남과 부산에 뿌리를 두고 두 후보가 경주한다면, 다른 지역으로 지지세를 확산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송 후보는 영남의 후보 단일화 이슈, 현직 회장의 지지 기반인 경기도와 연대 여부 등이 성패를 가를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충청 기반의 조덕현 조합장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선거 막판에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농협 내에서는 최근 이성희 회장의 캠프에 몸담았던 핵심 인사들이 조덕현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이성희 회장이 충청도 기반의 조덕현 후보를 지원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선거 구도에 영향을 미칠 변수임이 분명하다. 현직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충청은 지역 기반이 취약해 연합의 주체보다는 연합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으나, 현직 회장의 세력과 지역이 붙는다면 충청도가 영남과 대결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반면, 가장 큰 단점은 현직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사게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파만파로 번지는 현직 회장의 선거개입 의혹
이번 선거에서 불거질 수 있는 사법 리스크는 선거 중립의 의무가 있는 현직 회장이 선거판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이성희 회장은 초유의 입법로비 의혹을 촉발해 농축협 지원을 위한 농협법을 무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농협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회장 캠프 인사들이 특정 후보의 캠프로 이동하거나 지원한다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현직에 있는 임직원이 직을 유지하며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거나 선거 기획 등에 참여하는 행위는 위탁선거법 제31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측은 “회장님은 선거에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상태고, 실제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농협의 막후 정치는 현직 회장이 차기 회장을 특정해 지원함으로써 퇴임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막후 정치의 폐해는 이미 과거 선거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최원병 전 회장이 현 회장인 이성희 후보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협의 정치조직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던 경험이 있다. 입법로비 의혹, 이권청탁 정황 등을 농협에 대한 사법 리스크 수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농협 내에서 현직 회장의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리스크관리가 필요하다는 경고음이 쏟아지는 이유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이번에도 정책 선거 이슈는 사라지고, 퇴행적인 지역선거가 판세를 결정하는 흐름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조합장 직선제의 장점인 자기 검열 기능이 살아난다면, 고질적인 지역간 담합이나 금권선거 풍토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책과 비전으로 평가받고 인물이 지역을 밀어내는 건전한 선거문화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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