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재회 기자)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1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수면에 잠겨 있던 후보들의 공약들이 형체를 들어내고 있다. 지역선거 기반의 전략과 구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책 선거가 주변 변수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막판 들어 후보들의 정책이 화두로 거론되는 빈도가 높아지는 등 이전 선거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아마도 조합장 직선제로 표층이 넓어지면서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 평가하는 표심이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러 공약 중에서도 상호금융 분야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농축협 경영이 상호금융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분석한 결과, 후보들의 상호금융 공약은 크게 '추가정산 1조 원 ▶도농상생 ▶상호금융 독립법인화'로 구분하고 유력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 분석해 봤다.
가장 큰 문제는 후보들의 공약이 유사해 변별력이 없거나 선거 때마다 재탕, 3탕으로 등장하는 공약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선거 구도가 3강으로 좁혀진 만큼, 상호금융 공약은 강호동, 송영조, 조덕현 후보를 중심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추가정산 1조 원” 가능한가?
△강호동·송영조, 상호 '자산운용체제' 혁신
△조덕현, 실천 방안 미흡
상호금융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양치기 소년 공약이 바로 추가정산 1조원이다. 지난 중앙회장 선거에서도 거의 모든 후보가 추가정산 1조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성희 현 회장의 재임 기간에 한정하면, 추가정산 1조 원은 사실상 공수표에 가깝다. 매년 5,000억원씩 추가정산을 시행해 왔으나, 작년에는 추가정산도 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되었다. 추가정산은커녕 아예 추가정산 제도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 없이 거의 모든 후보가 추가정산 1조원을 들고나왔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 힘든 게 현실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추가정산이 농축협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공약에 대한 후보들의 실행계획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면밀히 점검해 봤다.
먼저, 합천율곡농협의 강호동 후보는 지속 가능한 추가정산 정책을 강조하며 추가정산 1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특별회계의 운용수익률은 최근 몇 년간 2%대에 머물고 있는데, 이를 1%만 끌어 올려도 추가정산 1조원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취임 즉시 특별회계 수익력 복원프로젝트를 가동해 기존의 자산운용 체제를 혁신하겠다는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상호금융 자산운용본부에 조직과 인력 방화벽을 높이 세워 전문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시장과 견줄 수 있는 운용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송영조 후보는 추가정산 1조원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이를 위해 특별회계 운용수익률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약속했다. 실천 방안으로는 자산운용본부를 자산운용분사로 분리하고 조직과 인력 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또한, 조합장과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자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해 수익률 관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조덕현 후보 역시 강호동 후보나 송영조 후보와 마찬가지로 추가정산 1조원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이를 위해 안정적인 운용수익 확보와 합리적인 수익 환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수익률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추가정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리하자면, 추가정산 1조원 공약은 후보들의 상호금융 공통 공약이다. 강호동 후보와 송영조 후보는 제도 및 조직 혁신을 통해 농협의 조직 문화가 자산운용에 희석되는 관행을 차단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실행계획 측면에서는 강호동·송영조 후보가 조덕현 후보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전 선거에서도 추가정산 1조원과 이를 위한 제도개선을 공약했으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약속이 지켜진 적이 없다. 후보들의 공약을 면밀히 검토해 부실하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공약을 걸러내야 하는 이유다.
◆ 상호금융 분야의 도농상생 공약은?
△상호금융 ‘도농상생예치금’ 신설...지원방안 마련
△농협은행 연계, 농촌조합 대도시 복합점포 개설
△도농상생기금 2조원 조성...중앙회 기금 확대
이번 선거에서 화두로 부상하는 이슈 중 하나가 도농상생인데, 유독 상호금융이 이러한 현안을 정책이나 제도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높다. 3강 구도 하에서 후보들이 도농 균형발전과 관련된 공약들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후보들이 제시한 여러 도농상생 공약 중에서 대표 공약을 선별해 비교, 평가해 봤다.
먼저, 강호동 후보가 제시한 공약 중에서는 ‘도농상생예치금’을 신설해 농촌 조합에 도농상생금리를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겠다는 공약이 눈에 띈다. 구체적으로, 정기예치금의 일정 부분을 도농상생예치금으로 분류해 농촌 조합이 금리 혜택을 체감할 수준의 상생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기예치금 금리조정은 중앙회가 대상 조합을 선별해 인위적으로 결정되는 방식이다.
이를 개선해 도농상생금리로 제도화하겠다는 공약은 파격적인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호금융이 도농상생을 제도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근본대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고, 현직 회장의 대표적인 미이행 공약인 ‘추가정산 1조원’처럼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송영조 후보는 신용사업 활성화를 지원하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농협은행과 연계한 대도시 복합점포 개설’을 통해 농촌 조합의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도시 은행 점포를 신용 공제 업무나 지역 특산물 판매를 확대하는 채널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농촌 조합이 대도시 영업 점포를 활용해 경제사업 판매 채널을 확대하는 것은 경제사업 활성화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접근으로 보인다. 다만, 공제 등 신용사업 영역의 복합점포 개설은 은행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면밀한 규제 검토와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조덕현 후보는 주로 도시 조합이 농촌조합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공약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 ‘도시-농촌 이익공유제’ 공약은 구체성이 떨어져 ‘도농상생기금 2조 원’ 조성을 대표 공약으로 선정하였다. 도농상생기금은 도시농협의 참여 유인이 높아지면서 나름 정착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기금의 규모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번에 좌초된 농협법 개정안이 이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를 담고 있으나, 현재는 물거품이 된 상태다. 도농상생기금에 대한 제도화와 같은 근본 대책이 빠져 아쉽다는 평가다.
세 후보의 도농상생 공약은 공략 포인트와 접근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 평가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도농 상생의 관점에서 상호 정기예치금 금리의 제도화가 중요한 현안이라면, 강호동 후보의 공약이 득표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농협은행과의 사업적 협력이 중요하다면 송 후보 공약이, 기금 조성이 중요하다면 조 후보 공약이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강호동, 금융지주 조합공개...조기 독립법인화 추진
△송영조, 상호 자산운용본부 분사 추진
△조덕현, 관련 공약 미제시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문제는 계륵과 같은 공약이다. 선거 때마다 매번 단골손님을 등장하지만, 어떠한 진전도 보인 적이 없는 대표적인 공약(空約)이다. 그 이유는 독립법인화에 필요한 소요 자본을 조달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송영조 후보는 자산운용본부를 분사하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엄밀히 따지면 협소한 의미의 독립법인화 공약으로 볼 수 있다. 의미 없는 공수표를 남발하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접근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면, 조덕현 후보는 관련 공약이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독립법인화 문제가 실효성이 없거나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시선을 끄는 공약은 강호동 후보의 ‘금융지주 농축협 공개’를 들 수 있다. 상호금융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문제는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이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중앙회가 100% 보유하고 있는 금융지주 지분에 농축협이 2대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농축협의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엄밀히 따지면, 상호금융 독립법인화로 가는 사전 단계로 보인다.
중앙회 중심의 경영구조에 농축협이 들어오는 지배구조가 너무 파격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협동조합의 소유와 통제 원칙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많다. 난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 만큼, 숙원사업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끝으로, 지역간 합종연횡이 판세를 가늠하는 농협 선거에서 정책 선거가 이슈로 부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조합장 직선제 도입으로 표심이 넓어진 만큼, 정책과 비전이 평가하는 집단 지성이 작동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후보들의 정책과 자질 평가가 퇴행적인 지역선거 문화를 밀어내는 원년이 될수 있을지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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