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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유천하(周遊天下) 자전거여행] 북베트남 하장 오지 E-바이크 여행

베트남 처녀들과 ‘사이공의 흰옷’을 부르다
노막패스 챌린지 2000km 자전거 도전
소수민족 오지 마을길 달리며 주유천하

 

(조세금융신문=박정규 기자) 

 

“집안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당신은 전장으로 달려가라.”

아기 업고 총멘 여인들, 아이 보는 남자들

 

 

한 다발의 삐라와 신문 감추어진 가방을 메고

행운의 빛을 전하는 새처럼 잠든 사이공을 날아다닌다.

_노래 ‘사이공의 흰옷’ 중에서

 

1960년대 베트남 사이공에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청년들의 학생운동을 다룬 ‘사이공의 흰옷’. 이 소설은 80년대 중반 한국에 소개돼 당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시인 레안쑤언이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 응우옌티쩌우에게 헌사한 시 ‘사이공의 흰옷’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감옥에 갇힌 쩌우가 머리핀으로 감방의 벽에 쓴 자작시 ‘흰옷’이 그 모티브다.

 

지난 3월 2일 밤 베트남 하노이의 맥주 전문점 핀 가든(Phimh Garden). 20대 초반 베트남 처녀들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했다. 몇 순배의 술잔을 들이켠 선배 기자가 일어서서 베트남의 혁명가요 ‘사이공의 흰옷’을 부르기 시작했다. 두 처녀와 뒷좌석 총각들의 눈빛은 금세 공감으로 변했고 바통을 이어받은 후배 기자가 ‘꽃다지’의 ‘민들레처럼’을 불렀을 땐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현지 처녀들이 두드리는 젓가락 박자에 맞춰 ‘사이공의 흰옷’을 부르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예측 못 할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 해외여행, 그래서 여행은 늘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참 중요하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이들의 지난 5박 6일간의 여정은 열아홉 명의 반백 소녀들, 희끗희끗 백발이 보이는 청년들과 함께 베트남 최북단 오지 하장에서 펼쳐졌다.

 

그들은 베트남 북부 오지 2000km를 E-바이크로 탐험하는 노막패스 챌린지(캠프비엣/투어코치) 가운데 범피루트(Bumpy)에 도전하는 팀이었다.

 

범피루트는 오지의 산악 고개와 가파른 지형을 자전거로 넘으며 베트남 소수민족 마을들을 탐험하는 코스다. 그렇다고 전문 라이더들만 가는 어려운 길이 아니다. 비포장 시골길을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는 정도의 자전거 실력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참가할 수 있다. 전기동력 ‘E-바이크’로 여행하기 때문이다.

 

 

이들 50~60대 열아홉 명 E-바이크 여행팀이 첫날 방문한 코스는 옌민에서부터 승망(Sung mang)을 거쳐 메오박에 이르는 산들길 약 42km. 돌산 사이로 만들어진 천혜의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 자는 없었다. 안개가 자욱해 말 그대로 수묵화가 된 오지에서 만난 소수민족 아이들은 이들을 향해 연신 ‘헬로우~’를 외쳐 댔다. ‘신짜오~(안녕)’라고 화답하는 라이너들의 목소리에도 화사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새 생명을 잉태해 해산달이 다가온 듯한 앳된 얼굴의 몽족 소녀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녀의 눈망울이 워낭소리처럼 맑고 깊다. 열다섯, 열여섯 살이면 대부분 시집을 간다는 몽족이었다. 허름한 집 내부의 칸막이 없는 공간에서 부모 부부와 자식 부부들이 같이 생활하다 보니 부모들은 종종 자식 부부 둘만의 사적인 시간을 주기 위하여 들로 산으로 마실을 나간다.

 

 

 

다음날의 여행을 위하여 호텔 프런트에 세탁물 서비스를 맡긴 일행들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7천원짜리 베트남 보드카 잔을 치켜든 팀원들 사이에서 지원 스탭 청년 후이(Huy, 27세)가 큰 목소리로 건배사를 외쳤다. 후미 지원 버스 트럭 차량과 함께 식수, 망고, 오렌지, 옥수수 등 현지에서 구입한 먹거리를 라이딩 팀에게 공급하고, 안내하며 캐어하는 스탭 가운데 한 명이다.

 

Một(몯) hai(하이) ba(바) zô(죠).

hai(하이) ba(바) zô(죠).

Hai(하이) ba(바) uống(우엉).

하나 둘 셋 건배.

둘셋 건배.

둘셋 마셔! 라는 뜻의 베트남 건배사다.

 

식당이 떠나갈 듯 외쳐되는 그의 건배사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이튿날 아침 8시. 호텔 앞 주차장에서 간단히 준비운동을 마친 팀원들은 힘찬 페달질을 다시 시작했다.

 

오늘의 코스는 메오박(Meo Vac)에서부터 마피랭(Ma Phi Leng)을 거쳐 동반(Dong Van)에 이르는 약 45km. 깎아지른 산길과 산길, 들길과 마을길을 이어 마을들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길을 이었다. 마피랭은 16개 소수민족의 청년들이 힘을 모아 6년에 걸쳐 닦은 국도로 약 200km에 달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과 피를 바쳐 닦은 길이기에 그들을 기리는 의미로 ‘행복의 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음날 동반(Dong Van)에서 탐마고개(Tham Ma)를 거쳐 옌민(Yen Minh)에 이르는 55km의 라이딩 코스는 아찔하기도 하고 20여 km의 다운 힐에 신이 나서 샤우팅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살아있는 돌탱이 길을 거쳐 엄숙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마을을 지나 도착한 조그마한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소를 잡아 분배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어서 몽족왕궁(Nha Vuong/Dinh Vua Meo)이 있는 사핀마을(Sa Phin)에 도착했다. 꽃을 들고 팀을 반기는 소수민족 어린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수줍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해 마을길을 대빗자루로 쓸고 있던 아낙들과 촌부의 울력(마을 협력 일) 모습도 정겨웠다.

 

5일 차 옌민에서 깐띠고개(Can Ty)를 거쳐 땀 선(Tam son)에 이르는 57km의 자전거 여정도 이국적인 풍광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깐티 협곡을 지나 몽족마을에 들어섰다. 몽족은 본래 중국 장강 유역에서 살았으나 중국의 탄압으로 남쪽으로 밀려났고, 라오스 태국 메콩강 유역 등에서 흩어져 살다가 또다시 일부는 베트남 민족에 밀려 북베트남의 하장으로 까지 스며든 소수민족이다.

 

힘에 밀려 문명과 단절된 하장 협곡 깊은 오지로 쫓겨나야 했던 그들. 철저히 고립된 그들은 포식자들은 피했으나 굶주림과 싸워야 했을 터이고 천수답(天水沓)에 의존하여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

 

척박한 땅 바위틈 한 뼘 한 뼘의 땅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인생에서 지족자부(知足者富)의 지혜를 터득하지 못했더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대한 감사함이 없었다면 얼마나 고달픈 삶이었겠는가?

 

“감사가 없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혁명가이자 시인인 박노해의 말이다. 하장 오지에서의 여행 내내 머리를 맴돌던 화두였다.

 

특히 룽땀(Lung Tam) 삼베 마을에서 삼베 천에다 염색제를 이용해 몽족 전통문양을 새겨 넣던 96세 할머니의 굽어 휜 두 손과 온화한 미소를 보면서 느꼈던 자성이다.

 

곡식을 심을 수 있다면 협곡 낭떠러지 깎아지른 절벽 위 바위틈 한 뼘 땅도 개간해 씨를 뿌리는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경외감이기도 하다.

 

남담(Nam Dam) 자오족 마을에서의 숙식은 하이라이트였다. 그날 밤 숙소에서 벌어진 ‘성인의식’을 주제로 한 자오족 전통공연은 한국의 지신밟기와 사물놀이, 강경탈춤 등을 혼합한 듯한 모습이 연상되었다. 스페인에서 여행 온 젊은 남녀 청년들, 자오족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강남스타일’과 ‘아파트’를 부르며 어깨동무 춤을 출 때에는 팀원 모두가 애국자가 되었다.

 

 

 

마지막 날 땀 선(Tam son)에서 출발하여 헤븐 게이트, 박숨패스(Bac Sum)를 거쳐 다시 하장(Ha Giang)에 이르는 마무리 라이딩 코스 38km는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자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살았을 정도로 깊은 오지에서 만난 그들과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몽족과 자오족 여인들의 얼굴 위로 아이를 업고 총을 멘 베트남 여인들의 다부진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집안일은 우리 여자들에게 맡기고 당신은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전장으로 달려가라.’

 

대나무로 만든 담뱃대를 입에 물고 마을 어귀에서 들일 산일 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빈둥거리는 남편들. 산일 들일 농사는 아내들의 몫이요. 남편들은 그늘에 앉아 아이들을 돌보는 일상…. 그러나 전장에서는 달랐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남자들이었다.

 

“뒷모습은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사진과 글이 참 예쁜 산문집 ‘뒷모습’에서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가 했던 말이다.

 

얼굴에 핀 몽족 여인들의 수줍은 미소와 닭을 마치 소중한 반려견처럼 가슴에 품고 있던 아이들, 그리고 느릿느릿 워낭을 울리는 소를 몰고 가는 촌부의 뒷모습들이 함박웃음처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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