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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에 대한 대답

 

 

 

(조세금융신문=백작가(이승용) 책인사 대표) 글쓰기의 시작,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랑하는 제 아버지와

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리겠습니다. 저에게는 오랜 시간 잊을 수 없었던,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이었습니다. 습한 단칸방, 찢어진 장판, 바퀴벌레와 개미 떼, 가족들 간의 고성, 꽉 찬짐들…. 어느 한 순간 변해버린 저의 삶이 처음에는 처참했지만, 점점 그 삶에 익숙해져 가는 나 자신을볼 때가 가장 힘이 들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뭉쳐야 했던 가족이지만, 당연히 가족들 간의 관계도 좋아질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하며 지내왔던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그마한 지하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불행을 만날 때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고 합니다. 저 또한 당시의 아버지를 ‘우리 가족을 불행으로 몰아세운 장본인’으로 선정하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쌓아만 갔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리 가족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군에 입대한 후, 아버지까지 경제 사범으로 구속 수감되어 어머니 혼자 남게 되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군 생활을 1년 정도 남겨놓은 시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당시, 탈영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제게 일어난 일들을 탄식하였습니다. 아무리 원망했던 아버지였지만, 정작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매일 끓어오르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의무경찰로 복역했던 저는, 2~3개월에 한 번씩 1박 2일, 혹은 하루 정도의 외출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복역 중이던 의정부 교도소에 찾아갔습니다. 당시 의정부 교도소의 시설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내부 시설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면회 시설은 그야말로 낡고 폐쇄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듯이 깨끗한 아크릴판 넘어 재소자와 수화기로 통화하는 그런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두꺼운 아크릴판을 두고, 서로 크게 소리를 질러가며 이야기를 나눠야 했습니다.

 

처음 아버지 얼굴을 마주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수형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고, 애써 웃어 보이려 하는 모습이 제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원망했던 아버지였지만, 제가 원망했던 건 아버지가 아니라, 가난이라는 상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렇게 아버지에게 나의 답답함과 화를 투영했던 것입니다. 끝까지 눈물을 참으며 첫 면회를 마치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복도에 쭈그려 앉아 미친 사람처럼 통곡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는 그렇게 울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이상해 보이는 곳이 아니었기에 정말,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면회 시간은 3분 남짓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의 3분이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고 아쉬웠기에, 이에 대한 방책으로 교도소 측에서는, 면회소에 A4 크기만 한 회색 갱지와 펜을 구비해 놓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면회를 마친 후에는, 언제나 회색 갱지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못다한 말들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쭈그려 앉아 1시간 남짓 적어간 편지는, 촘촘한 줄 위에 내려쓰기 없이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6~8페이지씩 꽉꽉 채워 사식과 함께 아버지께 전달되었습니다. 그때는, 평소 아버지와 대화도 없던 제가, 어떻게 그 많은 양의 이야기를 적었는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때 제가 썼던 편지야말로 진정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다

 

당시 편지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다지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제 일상에 대한 내용이었고,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제 마음에 있던 말들이었습니다.

 

‘아버지, 기억하시죠. 제가 어릴 때 동해안으로 놀러갔을 때, 아버지께서 저를 등에 업고는 수영만으로 꽤 먼 거리에 있는 섬까지 가셨잖아요. 해수욕장이 점점 멀어질수록 겁도 났지만 아버지 등이 얼마나 넓고 단단하던지, 아버지 등에 폭 안겨서 바다 위를 헤쳐 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고, 어머니가 남의 집에 일하러 가시고, 저와 동생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을 때, 아버지를 정말 많이 원망했었어요. 아버지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을 텐데, 그때 가장 힘들고 외로운 사람은 아버지였을 텐데, 저는 우리 가족을 힘들게 만든 사람이 무조건 아버지라고만 생각했었어요. 아버지를 안아드리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그리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

 

그저, 아버지께 제 일상을 세세히 적어서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기억을 정확히 전달해드리고 싶었고,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쓰기도 그때의 편지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비록 평범해 보일지라도, 누군가는 공감하고 필요할 수 있는 일상의 기록, 지금 쓴 글과 같이 제 기억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경험의 가치, 솔직하고 투명한 제 감정의 전달…. 20대의 청년이었던 제가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와, 40대의 중년이 되어 당신에게 써 내려가는 이 글이,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다.”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는 제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두근거립니다. 제 가슴으로 쓴 이 글이, 당신의 가슴을 움직이길 바랍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인 당신의 글이, 작지만 커다란 한 권의 책이 되어, 또다시 누군가의 가슴을 움직여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은 이미, 글을 쓰고 있었고 마음을 내어 주고 있었습니다. 책의 본질은 그런 것입니다. 글쓰기는 문학이 되기 이전에, 우리의 일상이며 삶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프로필] 백작가(이승용) 출판 전문 교육기업 ‘책인사’ 대표

• 북콘텐츠 문화공간 ‘책인사 초심’ 운영
• 저서_《책, 읽지 말고 써라》, 《하루 1시간, 책 쓰기의 힘》, 《심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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