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국세청 6급이하 승진 사태] 무너진 승진율 6%…출구는 없다? <中>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6급 이하 직원은 국세청 총원의 92%에 달하는 몸통이자 팔다리다.

 

국세청 세무공무원들이 본부 인사기획과 설명을 믿지 않으려 하는 건 어느 정부든 기본 6%의 승진율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예단하기 전, 과거 총원과 승진율이 어떻게 고꾸라졌다가 회복했는 지는 아래와 같다.

 

 

2005~2023년까지 두 번의 승진율 급락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2008~2012년)의 2008년 3.6%.

 

그리고 윤석열 정부(2022~2026년)의 2023년 4.3%.

 

두 정부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전 정부가 후하게 정원도 늘려주고 승진도 챙겨줬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2003~2007년)는 정부 내내 국세청 총원 3196명을 늘렸다. 2006~2007년 승진율은 6% 대지만, 2005년에 승진율을 13.9%나 당겨줬다.

 

문재인 정부(2017~2021년)는 인원도 1625명이나 늘려줬다. 연평균 승진율은 8.4%에 달했다.

 

그런데 이명박, 윤석열 정부별 상황과 대응은 전혀 달랐다.

 

이명박 정부는 2007년 첫 2만명 깃발을 꼽았던 국세청 총원을 2009년 1만8350명으로 똑 부러뜨렸다. 실로 벼락 감축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다음 발걸음은 대단히 기묘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국세청 세무공무원 1666명을 감축하더니 2010년 도로 1654명을 도로 되돌려놨다.

 

정확히는 증원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2005~2007년 3200명 가까이 증원한 이유는 ‘2008년 근로장려금 시행’ 때문이었다. 일하는 저소득 근로자 가구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제도다.

 

2008년 세무서 소득지원과가 생기고 그해 근로장려금 신청을 받아, 돈을 지급하는 시점이 2009년이었다. 이렇게 가기로 2006년 법으로 확정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근로장려금은 그대로인데 몸은 줄이라는 엇박자 지시를 내렸다(2009년 1666명 감축). 몸에 무리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근로장려금도 폐지하면 되지만, 이건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근로장려금은 보수 정당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저소득자 복지 정책이다. 그런 정책을 폐지하면 노인 기초연금 폐지 정도의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결국 2009년 1만8350명까지 내려갔던 국세청 총원은 이명박 정부 말인 2012년 2만34명까지 올라갔다.

 

뒤끝은 있었는지 승진율은 6%대 전후로 좀 짰지만, 그래도 3%대까지 고꾸라지는 일은 다신 없었다.

 

박근혜 정부(2013~2016년)는 말만 정원 감축 드라이브였지, 뒤에서는 지역 표심을 챙기기 위해 근근이 신설 세무서를 만들고, 본부‧지방국세청 감축만 기웃대다가 4년 내내 128명 찔끔 감축에 그쳤다.

 

 

◇ 윤석열 정부식 ‘10분의 1형’

(군단원 10명 당 1명을 때려죽이는 로마군의 형벌, 데키마티오(decimatio))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감축은 성격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인원 확대는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순전히 조직확대 차원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신규 과업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근로장려금 확대(2017년 1.8조원→2020년 5.1조원), 전 국민 고용보험, 체납징세 강화, 종교인 소득 과세 시행 등이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은 인천지방국세청 출범, 은평‧기흥‧수성‧양산‧구리‧연수‧광산‧남부천‧동화성‧계양‧부산강서세무서 신설, 광양‧달성 세무지서 신설 등이었다.

 

이 상황에서 국세청 인원을 줄이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맥주 백 잔에서 소주 한 잔 분량씩 빼는 것이다.

 

 

위 계획을 보면 국세청은 2022년에 이미 157명을 줄였으며, 2023년 340명(목표치), 2024년 173명(목표치), 2025년과 2026년 각각 205명씩을 줄일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의 벼락 감축보다 윤석열 정부의 살살 감축이 더 무서운 것은 ‘삶은 개구리 증후군’처럼 점진적으로 커지는 위험에는 마비되기 쉽다는 것이다.

 

빠져나올 방법도 마땅하지가 않다.

 

정부 18개 부처가 있다지만, 1~2만이 넘는 덩어리가 큰 집단은 법무부(검찰 포함), 경찰, 소방공무원, 국세공무원, 교육공무원(학교 교사) 등 몇몇 집행조직 정도다.

 

이런 덩어리가 큰 곳에서 빠져줘야 보고서 제출할 때 보여줄 것도 있다.

 

그런데 국회예정처 ‘2024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법무부 정원(검찰 포함)은 26명 늘었고, 경찰청은 98명, 소방청은 29명 늘었다.

 

법무부는 성역이고, 경찰‧소방은 10.29 이태원 참사‧마약 수사와 여름철 수해‧안전이라는 명분이 있다.

 

덩치 큰 집단 중 인원감축 바람을 맞는 건 교사들과 국세공무원 정도이며, 다른 덩치들이 빠진 바람에 감축 보고서 상단에서 이 둘은 빠질 수가 없다.

 

2024년 총선‧레임덕 등 변수가 있다고 하지만 알 수는 없다.

 

그들은 한 번도 칼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휘두르지 않는 법도 모를지 모른다.

 

 

<국세청 6급이하 11.6인사 사태와 관련 분석기사는 上, 中, 下편으로 연재됩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데스크칼럼] 관치금융의 덫에 걸린 농협금융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최근 농협금융지주와 대주주인 농협중앙회가 NH투자증권 사장 인선을 놓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여기에 금감원까지 가세하면서 관치금융에 대한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의 연임 도전과 관련이 있다. 정 전 사장은 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일으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장본인이다. 여기에다, 폐쇄적인 조직운영, 개인 사법리스크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6년간 장기 집권에 성공한 저력을 보였다. 그러나 증권사태가 범농협 차원의 규제 리스크로 확산되는 가운데 정영채 전 사장이 4연임에 도전하자, 대주주인 농협중앙회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쟁점을 살펴보면, 농협중앙회는 이번에는 농협 출신 인사를 추천해 NH투자증권의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자본시장 전문가를 앉혀야 한다고 반발하면서 농협중앙회와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이석준 지주회장의 말도 일리가 있고, 범농협 차원의 리스크관리가 중요하다는 대주주의 판단도 일리가 있다. 참고로,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소유한 1인 최대 주주다. 문제는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