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양기철 (주)하나감정평가법인 부회장·감정평가사) 코로나, 수해로 국민피로도가 극심한 시기에 집값, 전셋값 상승으로 인한 고통까지 더해져 국민들은 집단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기감을 느낌 정부 여당은 2020년 7월 10일 및 8월 4일 두 차례에 걸쳐 ‘주택시장 안정화정책’을 발표했다. 과연 지금의 집값이나 전셋값은 정부 의도대로 안정될 수 있을까?
지난 약 30여 년간 부동산 실무현장에서 경험적으로 체득한 필자의 감으로는 당분간 거래절벽을 거친 후,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시장메커니즘(real estate market mechanism)'이 붕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근거, 복잡한 통계는 잠시 접어두고 그 이유를 상식선에서 살펴보자. 우선, 정책을 입안하는 정책당국과 일반 국민들(혹은 실무종사자들)의 부동산을 보는 시각차이가 크다. 인식의 차이가 크다 보니 현실적인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일반 국민들이 부동산을 보는 시각은 이렇다.
주택구입자 관심은 주거복지가 아니라, 내 집값, 새집, 살고 싶은 지역의 공급량
첫째, 집을 사는 사람들은 정책당국이 생각하는 ‘주거복지’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내 재산가치(집값)의 변동여부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집이 있는 사람이 추가로 구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애 처음 집을 사는 사람도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을 염두에 두고 산다. 우리나라 국민들 재산의 약 70% 이상이 집값이기 때문이다. 주택에 실수요란 없고, 투자수요(투기수요)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둘째, 대도시는 항상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산업(특히 IT 업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어 항상 대도시 주택수요는 넘치기 때문이다.
셋째, 새집, 좀 더 큰집(1인당 주거면적)에서 살고 싶은 대기수요자는 항상 넘친다. 기존도시 옆에 신도시를 만들면 신도시로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도시 사람들이 대거 신도시로 이전한다. 교육, 교통, 쾌적성 등 모든 도시 인프라가 기존 도시보다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주택보급률(주택수/일반가구수)’은 2018년도에 이미 100%를 초과한 104%이다. 그런데도 왜 항상 주택공급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일까? 아무리 집이 많아도 살고싶어 하는 집, 새집은 항상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현실적인 시각에서 지금의 집값 정책을 살펴보면 집값이 오르는 이유가 보인다.
공급대책 없는 수요억제 대책이 집값폭등 원인, 기존 주택이 매물로 나와야 집값 안정
우선, 수요공급 측면을 살펴보자. 집값이 오르는 것이 수요가 많아서일까? 공급이 부족해서일까? 보수정당은 공급이 부족해서라고 하고, 정부 여당은 투기수요가 많아서라고 한다. 둘 다 맞는 얘기다. 단기적인 상승은 투기수요가, 장기적인 상승은 공급부족이 원인이다. 따라서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은 단기처방이고, 공급을 늘리는 정책은 3∼5년 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장기정책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현 정부는 집권초기에 ‘전국주택보급률(104%)’의 허상에만 집착하여 국민들의 수요가 많은 곳, 새집 수요에 대한 장기공급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수요억제 정책에만 집중했다. 집값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자 불안감을 느낀 무주택자들(특히 30,40대)이 소위 “영혼까지 긁어모아 집사기”에 동참하면서 집값은 폭등하기 시작하였다.
수요억제 정책이라도 제대로 된 것일까? 특정 지역(강남, 분당 등) 집값이 오른다고 지역 기준 수요억제 대책을 실시하자, 풍선효과가 나타나 규제가 없는 주변 지역 집값을 끌어올렸다. 지역 기준이 아닌, 구입자를 기준으로 하여 다주택자 추가구입(지난 10년간 공급된 500만 호중 260만 호를 다주택자가 구입)에 대한 규제에 집중하되, 무주택자들은 집을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일률적인 대출규제로 현금부자들만 집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정작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대출규제에 막혀 집을 살 수 없게 되자 전세수요만 넘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규제위주의 정책을 살펴보자.
규제를 강하게 하면 집값은 안정될까?, 공급을 늘리기만 하면 집값은 안정될까?
단기적으로는 규제정책이, 장기적으로는 공급증가가 효과가 있다. 당장의 급한 불을 끄려면 강한 규제를 통해 투기수요를 차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충분한 새집 공급 혹은 '시장 매커니즘'을 통한 기존 재고주택 공급 없이 장기적인 집값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 새집 공급으로 집값이 안정되었던 적은 88올림픽 이후 집값이 폭등하자 지금의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산본)를 조성하여 주택 200만 호를 동시에 공급하였던 것이 유일하다. 이 정도 공급규모는 되어야 새집 공급으로 집값이 안정된다. 현재는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기존 재고주택 거래를 통한 공급 없이 새집으로만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을 수 없는 이유이다.
현재 집값정책 매물 잠김 현상으로 안정된 듯 보이다, 다시 상승할 가능성 커
그렇다면 입법절차까지 마무리된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2020.7·10 대책 및 8·4 대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 2020년 7·10 대책은 실수요자 우대, 투기수요억제 정책이다. 최초 주택구입시 3억 이하 취득세 감면 및 LTV·DTI 완화적용, 다주택자 및 법인소유 주택의 종부세 대폭인상(1∼3%→8∼12%), 다주택자 취득세 인상(3%→12%), 아파트 임대사업자 신규등록 폐지, 2년 미만 보유시 양도세 중과 등이 주요 골자다.
투기적 수요 유입차단, 실수요자 우대정책은 긍정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보유비용(종부세)을 강화한다고 하여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집들이 얼마나 시장에 나올까? 다주택자 보유 700만 채 중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갭투자자, 법인보유 물량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다주택자 보유주택의 방출로 인한 집값하락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다.
양도차익의 60∼70%를 세금으로 내면서 누가 집을 팔겠는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낮추어 퇴로를 열어주지 않는 한(비록 한시적으로라도) 대다수의 다주택자들은 버틸 만큼 버틸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많은 다주택자들은 버틸 여력 또한 충분하다.
수도권 26만 호 공급대책(2020년 8·4 대책)은 집값안정에 효과가 있을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 이외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물량을 그만큼 공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재개발·재건축 대상 아파트 용적률을 완화하고 증가된 용적률의 50∼70%를 환수하여 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은 실현 가능성도 낮다.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민간조합이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 당분간 관망하면서 매물 잠김 현상만 나타날 것이다. 거래가 없으니 안정세인 것처럼 착시효과만 나타나다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책방안은 무엇일까?
'주택거래허가제'로 투기수요는 차단하되, 거래세 낮추어 '시장매커니즘' 복원시켜야
‘시장매커니즘’을 복원시켜야 한다. ‘시장만능주의’도 위험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시장자체를 붕괴시킨다. '시장매커니즘'의 붕괴는 향후 3∼4년 후에 그 부작용이 나타난다. 투기수요가 문제라면 차라리 ‘주택거래허가제’를 실시하자. ‘토지거래허가제(1989년 합헌결정)’는 이미 하고 있는데, ‘주택거래허가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주택거래허가제'를 통해 다주택자들의 추가 주택구입은 엄격하게 제한하되, 양도세 중과규정은 폐지 혹은 완화하여 퇴로를 열어주어 다주택자 매물들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시장매커니즘'을 복원시켜야 한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집값은 모든 욕망의 결정체이다. 사람들은 절대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보유세(종부세)를 올려 보유비용이 늘어나도 거래세에 해당하는 양도세 중과가 지속되는한 매물은 나오지 않는다. 공급의 한 축인 기존 재고주택이 매물로 나오지 않는 한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
팔지 않고 버티면서 보유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전세금만 올릴 것이다. 전세금을 못 올리게 통제하면(전월세상한제) 뒤로 웃돈을 주어야만 전세를 얻을 수 있는 암시장이 형성되거나, 전세는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어 갈 것이다.
차라리 ‘주택거래허가제’를 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나머지 규제는 합리적으로 완화해야만 기존 재고주택이 매물로 나와 집값과 전셋값은 안정된다. 동시에 수도권집중 해소, 서울 접근성을 높여 서울의 주택수요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징벌적 세금정책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늦으면 늦을수록 민심만 더욱 싸늘하게 돌아설 뿐이다. 세금과 민심은 대체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프로필] 양기철 (주)하나감정평가법인 부회장
• 감정평가사/경영학박사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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