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양기철 (주)하나감정평가법인 부회장) 지난해 12월 16일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금지 등 초강도의 집값 안정화 대책 이후 강남 집값은 하향안정세로 돌아섰다고 하나, 전세가 상승이 심상치 않다.
2020년 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전세가는 지난해 12월 0.58%에서 금년 1월 0.72%로 상승폭이 커졌다.
서울 아파트전세가는 지난해 7월(0.02%) 이후 계속 오름세이고 상승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지역은 매물 품귀현상마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인천, 경기 지역을 합한 수도권 전체도 비슷한 흐름이다.
통계에서 빠지고 있는 전세에서 반전세(상승된 전세금의 일부를 월세로 주는 것)로 전환된 것을 포함하면 전세가 상승폭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는 그 역사가 제법 길다. ‘전세제도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으로 강제로 개항된 부산, 인천, 원산의 일본인 거주 지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0~80년대, 공업화로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급증함에 따라 만성적인 주택부족에 시달렸던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은행문턱이 높았던 시절, 집을 짓는데 자금이 부족하였던 집주인의 애로와 거주할 집이 필요했던 세입자의 애로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세제도가 그간 서민의 주거안정에 많은 기여를 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셋집은 필수재, 대출강화로 집 못산 수요와 투기수요가 더해져 수요는 넘쳐나
전세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전세는 아무리 비싸도 선택해야만 하는 집 없는 서민들에게는 필수적인 재화이다. 자녀교육이나 직장출근을 위해서는 선택할 수 있는 지역적 범위가 좁고,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로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전세수요에는 매매수요와 달리 투기가 있을 수 없고, 철저히 시장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특징이 있는 전세가격이 요즘 왜 계속 오르는 것일까? 의외로 그 해답은 단순하다.
전세 수요는 많은데, 전세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세 수요는 왜 많은 걸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전세의 첫 번째 수요층은 집을 살 여력이 아직은 안 되어 전세로 살아야 하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 등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행복주택’, ‘청년임대주택’ 등의 이름으로 정부가 제도적으로 ‘공적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으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그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여 수요의 일부를 민간영역에서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전체주택 중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2015년 기준 한국 약 6.4%, 유럽 15~25%).
전세의 두 번째 수요층은 약간의 자금력 부족으로 집을 살 수가 없어 당분간 어쩔 수 없이 전세로 살아야하는 수요층이다. 대개 수도권에 거주하는(인기지역 대부분은 대출규제지역임) 결혼 10년차 정도 된 사람들로 잠재적인 매매수요 대기자들이다.
이들 수요층들은 지난해, 집값 상승기에 주택구입 기회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실수요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집값 잡자고 강화한 대출규제가 실수요자들의 주택구입을 더 어렵게 만든 ‘규제의 역설’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종전에는 집값의 60~70% 정도를 은행대출로 충당하였으나, 대출조건의 강화로 더 많은 자기 돈이 필요해 집을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주택자와 무주택자를 구분하여 차별화된 대출규제 정책이 필요했으나, 획일적인 대출규제(주택을 처음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규제지역에서도 LTV/DTI 적용을 완화할 필요가 있었음)로 집을 살 수가 없었던 사람들이 대거 전세수요자로 남게 되었다.
사회초년생들의 기본적인 전세수요에, 획일적인 대출규제로 집을 살 수 없었던 수요층이 더해지고, 고액의 전세세입자들이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갭 투자에 나선 투기수요까지 가세하다 보니, 전세수요가 넘쳐나게 된 것이다.
온전한 전세물량 자체가 줄어들고, 강한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전세 공급부족 가져와
전세공급(반전세나 월세를 제외한 온전한 전세) 사정은 어떠할까?
우선, 온전한 전세물량 자체가 줄어들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금리가 낮아지거나, 집값이 안 오르면 집주인들은 수익률을 보충하기 위해서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 전세와 월세 비중이 7:3이었던 것이 2017년에는 5.5:4.5로 줄어들어 있다. 저금리 등으로 많은 전세가 반전세 혹은 월세로 전환되어서 온전한 전세물량 자체가 줄어들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금년까지는 2015~2016년에 인·허가된 주택의 입주로 신축 전세공급이 비교적 충분하다고 하지만, 내년부터는 만성적인 공급부족 현상이 예상된다. 전세수요가 많은 지역, 즉 학군수요와 일자리수요가 많은 지역에서의 전세물량 신규공급 방법은 재건축, 재개발인데, 지금처럼 강한 규제정책은 필연적으로 장기적인 전세주택에 대한 공급(신축주택의 약 30~40%가 전세물량)을 감소시켜 전세가를 끌어 올릴 것이다.
전세는 실수요 중심의 지역적 수요이므로 단순히 전국, 수도권 단위의 전체적 공급물량의 증가는 별 의미가 없다. 실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역에 공급이 늘어나야만 전세가는 안정된다.
거래세는 내리고, 다주택자 보유세는 올려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의 환류기능 복원시켜야
그렇다면 전세대란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집값과 전세가는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집값을 잡으려면 전세가가 오르고, 오른 전세가는 시차를 두고 집값을 끌어올린다.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어서 전세가 대책과 집값 대책이 별반 다르지 않다.
첫째, ‘전세자금지원제도’는 꼭 필요한 취약계층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전세가가 오른다고 정부가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면 전세금 대출액이 오른 전세가의 지지대 역할을 하여 전세가는 더욱더 오르게 된다. 시장원리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무분별하게 지원했던 전세자금 대출정책이 향후 전세대란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늦게나마 고액 전세금에 대한 전세자금 대출을 금지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둘째, 매매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거래세(양도소득세)를 낮추어야 한다. OECD자료에 의하면 2018년도 기준 우리나라 거래세 비중은 GDP의 1.92%로 OECD국가 중 1위이다(보유세 비중은 0.8%로 16위). 양도소득세를 제외한 취득세만을 부동산거래세로 생각하는 정부의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다주택자라고 하여 양도차익의 거의 50~60%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면 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다주택자들이 매매보다 자녀에게 증여를 선택하여 ‘부의 대물림’을 하는 이유이다. 금년 상반기까지가 기한인 ‘양도세중과유예조치’는 조금 더 연장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
거래세를 낮추는 대신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는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여유 있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1채 이상을 더 보유하는 것을 무조건 투기꾼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 공급자로서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정해 주되, 그에 합당한 보유비용을 물게 하면 되는 것이다.
2채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국민들은 2채까지는 다주택자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설문결과), 3채부터는 주택보유수가 늘어날수록 누진과세를 통한 무거운 세금부과로 한 사람이 과다하게 많은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주택의 공공재 성격을 고려하면 명분 있는 일이다.
시장질서 교란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고, 시장원리 작동되도록 해야
셋째, 시장 질서를 해치는 담합행위, 재테크라는 명목으로 주택쇼핑을 부추기거나, 집단으로 주택쇼핑을 다니는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두 채의 투기적인 고가의 거래가격이 대단지 전체 아파트 가격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주간아파트값변동률’ 발표는 월단위로 개선하여야 한다. 일주일 단위로 아파트가격 변동을 정확히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가격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간 단위로 주택가격 동향을 발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지난 12·16 대책이 투기수요를 잠재워 집값상승의 급한 불은 끄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동안 시장의 흐름을 왜곡시킨 비정상적인 부동산정책들을 정상화 시켜야한다. 그래야만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이 시장원리에 따라 물 흐르듯 넘나들 수 있는 환류기능이 복원된다.
시장원리는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오래, 깊게 누를수록 부작용의 폭발력은 그만큼 커진다. 억지로 눌러 거래절벽만을 가져오는 정책이 아닌, 시장기능이 작동되도록 물꼬를 터 주어야 전세가 및 집값이 안정된다.
전세대란이 닥쳐오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중장기적인 정책을 서두를 때다.
[프로필] 양기철 (주)하나감정평가법인 부회장
• 감정평가사/경영학박사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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