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손영남 편집국 부국장) 한숨이었던 것 같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한 기사를 접한 직후 터져나왔던 그것.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기사였다. 그저 우리 일상의 한 단면을 스케치한 것이었으니까.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최근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강아지 캐릭터 관련 상품을 파는 팝업이 모 백화점에서 열렸는데 그를 위해 새벽 4시부터 줄을 서가며 기다린다는 그런… 크게 주목할 만한 일도, 누군가에게 욕을 먹어야 할 사건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하루의 시작인 그 순간, 원치 않던 한숨을 끌어내게 만든 건 그 기사에 주렁주렁 매달린 댓글들이었다.
‘부모 등골 빼먹는 것들, 한심하다.’, ‘요즘 젊은 것들 매번 돈 없다 툴툴대더니 저런 쓸데없는 짓 하느라 저 모양이지.’, ‘정신 나간 것들, 부모들은 지 자식이 저러는 걸 알까,’ 등등 비난 일색의 내용들이 가득이었다. 개중엔 욕할 일이 아니라며 옹호하는 내용도 눈에 띄었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왜 그러는 걸까? 요즘이니 지 부모니 하는 걸로 미루어 보건대 댓글의 작성자들 상당수는 기성세대의 한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의 눈엔 겨우 장난감 따위를 사자고 잠도 설쳐가며 요란을 떠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상식 이하의 비난을 감수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아마 그런 모양이다. 자신들은 먹을 거 못 먹고 사고 싶은 거 못 사가며 아끼고 모아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땅도 샀는데 왜 요즘 젊은 것들(?)은 그런 절약 정신 없이 흥청망청 사나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안타까움의 표출일 테지만 그러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문득 묻고 싶어진다. 코끝을 에이는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 씰을 사려고 우체국 앞에서 발을 동동거려본 기억은 없었냐고? 올림픽 기념주화 하나 사자고 새벽부터 은행 앞에서 죽쳐본 적은 없었냐고? 그때의 당신은 젊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차도 샀다고 말할 테지만 그거야말로 오만한 생각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누군들 집 사고 차 사고 싶지 않을까. 문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요즘 20대들이 누구처럼 먹을 거 안 먹고 살 거 참아가며 악착같이 모아 한 달 평균 100만원 정도를 저축한다는 가정하에 서울 시내의 일반적인 아파트를 사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00년으로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더 암울한 건 이에 소요되는 기간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이다. 인간의 수명이 150세로 늘어난다면 죽을 때쯤에야 가능할 일인 셈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간신히 살 수 있는 것이 집이라는데 누가 그 수고를 감당해낼까.
100년을 아끼고 모아도 제 돈으로 집 장만은 무리인 세상
요즘은 좀 시들해졌지만 한때 ‘YOLO’ 바람이 거세게 분 적이 있었다. 대략 10여년 전쯤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 배경이 바로 급등하는 집값 때문이라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못 살 집이니 차라리 그 돈으로 인생을 즐기자는 것.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청춘들은 땀 흘리고 노력해 집 장만의 꿈을 이루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 대출이다. 오죽하면 자가를 마련한 이들이 자신들은 은행에 월세를 내고 산다는 농을 다 할까. 그렇게 받은 대출로 집을 사서 꾸준히 갚아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게 자신의 것이 되는 일이란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다들 그렇게 해왔다. 평균적인 서민이라면 대출 없이 집을 산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게 힘들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대출의 문턱을 높이고 있는 탓이다.
오는 7월부터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시행된다. 모든 금융권 가계대출에 1.0~1.5%포인트의 스트레스 금리를 반영해 대출 가능 금액을 축소하는 방식인데, 시행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빌리는 이들의 소득에 따라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 내에서 대출을 시행함으로써 은행의 부실화를 막고 무분별한 부동산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치솟는 집값을 막아보겠다는 의도다.
전체적인 내용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다. 빌려주는 쪽도, 빌리는 쪽도 서로 간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니 합리적이라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말들이 많은 걸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런 부동산 정책에 큰 관심이 없다. 어쩌다 보니 운 좋게도 집을 마련했고 그 과정에서 대출을 받긴 했지만 크게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보니 금리가 어떤 지도 모르고 그저 매달 급여통장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가나 보다 할 뿐인 탓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10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대출 한 푼 없이 전액 현금으로 사는 이도 있고 집값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비율로 대출을 받아야 간신히 한 몸 뉘일 집을 살 수 있는 이들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 지점이 껄끄럽다는 말이다. 통계 하나를 보자. 올해 4월 서울에서 소유권이전등기(매매) 신청이 접수된 집합건물의 거래가액 대비 채권최고액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노원구로 63.5%를 기록했다. 이어 금천구(62.9%), 은평구(62.5%), 강북구(62%) 등의 순이다. 인천 서구(76%)와 경기 화성(71%), 평택(70%) 등은 70%대를 넘어섰다.
채권최고액은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으로, 1금융권 기준 대출금의 120% 수준이다. 즉 비율이 낮을수록 집을 살 때 돈을 적게 빌렸다는 의미다. 반면 송파구(42.6%)와 서초구(44.8%), 강남구(45.9%)는 비율이 낮았다.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답게 대출에 크게 기대지 않고 집을 사들였다는 뜻이다.
이에서 확인하듯 기본적으로 재산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출의 절실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출의 문턱이 높아질수록 평범한 서민들의 집 장만은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번에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 3단계’로 한숨을 내쉬게 될 사람이 누구일지가 명확한 이유다.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1.5%의 가산금리가 적용되는 수도권 지역에서의 주택 매매는 기가 꺾여야 한다. 반대로 연말까지 0.75%의 가산금리가 유지되는 비수도권의 주택 시장은 수도권에 비해 좀 더 활발한 모습을 띠어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전문가들이 내놓은 예상은 한결같다. 수도권의 보합, 지방의 위축이 그것. 대출이 줄어든다 해도 여력이 있는 계층이 다수인 수도권, 특히 강남 등 주요 지역은 대출 의존도가 낮아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반면 실거주 목적을 지닌 지방 실수요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와 선뜻 구매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5년 3월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은 6만 8920가구에 달하며, 이 중 76%인 5만 2392가구가 지방에 집중돼 있다. 비어있는 집조차 구매하기 힘든 재정여력을 지닌 것이 비수도권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출 규제까지 더해지면 상황이 악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규제가 수도권과 지방의 주택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쯤 되면 이 정책이 마냥 합리적인지를 의심치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정책 발표 후 부동산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스트레스 DSR 3단계의 차별 적용 혹은 지방에 한해서는 스트레스 DSR을 완화하거나 3단계 적용을 완전히 유예해야 한다고 말하는 지금이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정책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법은, 그리고 정책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고들 한다. 소위 말하는 절대적 형평이다. 이를 통해 조직 내의 불만을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절대적 형평의 가치는 커질 테지만 그게 언제나 옳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추가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을 두고 공평성 위배 운운하지 않는 것이 한 예다.
좋은 제도는 누구에게나 공평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기회를 제공받기 힘든 이들에게도 눈을 돌리는 아량을 가진 것이라 믿는다.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을 앞둔 지금, 벌써부터 한숨을 내쉬고 있을 이 땅의 많은 서민들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아주기를 바라는 게 그토록이나 과한 욕심일까. 청년들이 새벽 4시에 길거리를 서성이는 이유를 곱씹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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