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은 소수 고액 자산가나 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최근에는 노년층, 장애인 등 투자운용보다 재산관리가 필요한 계층을 위한 서비스로써 신탁이 주목받으면서 제도 개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3일 한국재무관리학회, 한국재무학회, 한국파생상품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정책심포지엄을 통해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신탁제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다. /편집자 주
(조세금융신문=고승주, 홍채린 기자) 신탁이 노년층과 피후견인의 버팀목이 되려면 자본시장법상 신탁 재산분류를 자산별에서 기능별로 바꾸고, 세제혜택 등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센터장은 3일 오후 2시 은행회관에서 열린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서의 신탁제도 개선 방안 정책심포지엄 – 신탁재산과 운용방식의 다양한 방안’ 주제 발표에서 “생전에 금전으로 노후를 설계하고, 사후에는 자녀에게 균형적인 분할을 하고 싶어도 신탁의 모든 회계처리가 재산과 금전으로 나뉘다 보니 유연하게 대응을 못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행 신탁업은 자본시장법 103조에 따라 ▲금전 ▲증권 ▲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 권리 ▲무체재산권(지식재산권 등) 7가지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종합은 250억, 금전은 130억원 등 재산 종류별로 높은 최소자기자본금을 요구하고 있어 업종장벽이 상당히 높다.
신탁을 목적별로 운용형, 관리형으로 바꾸고 재신탁을 도입하면, 다양한 신탁업자들의 참여를 유인하면서도 기관 간 협업을 통해 전문성까지 확보할 길이 열린다.
특히 관리형은 안전성이 높은 만큼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최소자기자본금을 완화할 여지도 생긴다.
신탁대리점까지 도입된다면, 보험처럼 신탁을 생활밀접형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다.
배 센터장은 신탁이 소수 고액자산가를 위한 서비스란 개념에서 탈피하려면 생활부양을 위한 관리형 신탁의 경우에는 전문성 확보와 더불어 원활한 접근성, 투자자 안전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허가제에 신탁 판매자를 포함하면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배 센터장은 “정부가 신탁법상 스몰라이센스를 부여해도 바로 뿌리내리기 어렵다”며 “자본시장법상 재신탁을 허용하고 대리점 제도 등을 통해서 신탁을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신탁 소비자의 접근성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접근성 차원에서 현재 동영상 촬영까지만 허용하는 비대면 금전신탁에 대해 IT기술을 통한 다양한 본인 인증 수단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노후보장형, 장애인후견 등 투자목적보다 관리형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홍보와 세제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 센터장은 “특정금전신탁은 본인 지시에 따라 운용되지만, 관리형 목적의 상품은 노후대비 측면이 있어 서로 다르다”며 “고객 접근성 확대 등을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후견인을 하겠다는 자녀가 부모 자금에서 찾아가게 되고, 인출된 돈에 대해 치매안전자금차원에서 정부의 부담이 커진다”며 “치매의 경우 지급청구인 기능, 노후케어 기능 등에 대해서는 가입절차를 정비하고, 부양 목적으로 가입되는 관리형 상품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부여해 유인하고,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보험과 신탁 간 결합을 통한 다양한 자산관리 솔루션 방안도 제시했다.
배 센터장은 “현재 자본시장법상 보험금을 선탁할 수 있는 것이 금전신탁”이라며 “생명보험 신탁이란 부분이 빠져 있는데 보험과 신탁이 결합해서 상품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2004년 수탁재산 범위를 포괄적으로 전환하면서 생명보험 신탁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정작 생명보험신탁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배 센터장은 “생명보험 신탁을 자본시장법 103조에 규정하는 것보다 미국처럼 금전을 신탁해서 수탁자가 보험을 매입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치매 관련된 것에 대해, 후견 관련 제도에 대해서는 신탁제도 상품을 만들어서 신탁시장을 높여보자는 점은 동의한다”며 “그러려면 민법상 성년후견제도부터 발전해야 한다. 신탁법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민법을 수행하는 법무부가 함께 나아가야 신탁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석환 금융투자협회 이사는 “다양하고 전문적 신탁업자의 출현이 필요하고 경쟁을 통해서 상품 개발에 배가될 수도 있다”면서 “신탁은 수탁입장에서는 고도의 신임이 필요하기에 최소 자본금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은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사회적 약자 관련해서는 2015년 복지형 신탁 이름으로 기존의 장애인신탁 등 우리나라가 일부 구조제도를 갖고 있다”며 “이와 연계해 중산층이 자기방어 측면에서 신탁제도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영표 신영증권 이사는 “생명보험 청구신탁은 매우 필요성이 높다”며 “아버지가 불가피한 사유로 부재한 상태에서 어머니 이름으로 보험금이 15억원이 나왔는데, 다른 분이 다 쓰게 되면 안 된다. 수익자를 신탁회사로 바꾸어 보험청구 단계에서 양도를 안 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 이사는 신탁의 후견 기능 관련 장애인 부양신탁의 첫 단추가 잘못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중증 장애인을 수익자로 신탁을 맡겨놓으면, 장애인이 쓰는 게 아니라 법적상속자가 쓰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배 센터장은 “실무적으로는 금전신탁은 운영형이라는 기존의 인식과 관리형 상품의 경험이 적다 보니, 관리형의 내용이 혼재되는 경우가 있다”며 “다양한 노후 자산관리 상품이 나오는데 관리형의 별도의 프로세스, 별도의 법체계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합동운영의 방식도 좋겠지만, 관리형 금전신탁 상품은 별도의 일본식처럼 별도로 규율하면 관리 효율성을 통해 소비자들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제도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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