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이후 집을 산 새로운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기존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법원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세입자 보호를 위해 계약갱신요구권이 행사된 이후에 집을 취득한 집주인은 실거주 목적이어도 기존 갱신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지만,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이를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22일 법조계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서울동부지법은 이같은 정부의 유권해석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세입자는 작년 10월 초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고 해당 주택을 구입한 새로운 집주인은 그보다 늦은 그달 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새로운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실거주 목적으로 매수했으니 임대차 기간이 끝나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고, 계약기간이 지나도 세입자가 퇴거를 거부하자 건물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세입자가 해당 주택을 인도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주택이 양도된 경우 양수인은 주택의 소유권과 결합해 임대인의 임대차계약상 권리와 의무 일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며, 갱신요구거절권 또한 승계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의 유권해석과 완전히 상반된 판결이다.
국토부와 법무부는 작년 9월 11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서 "임차인이 갱신거절사유가 없는 기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후 소유권을 이전받은 매수인은 본인의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할 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유권해석대로라면 새로운 집주인은 이미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집을 취득한 것이니 기존 세입자의 계약을 갱신해 주고 나서 2년 뒤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법원 판결에선 이 유권해석이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은 정부의 유권해석에 대해 "행정청의 행정해석이 법원의 법 해석 권한을 기속하지 않고, 행정해석의 내용을 살펴봐도 법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 따를 것이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삼권분립의 원칙도 언급했다. 정부가 유권해석을 내렸다고 한들, 하나의 참고자료 정도만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판결은 피고인 세입자가 항소를 포기해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선 이와 정반대로 세입자의 손을 들어주는 건물인도 소송 판결이 났다.
이 사건에서도 세입자는 작년 10월 중순 기존 집주인에 계약갱신을 요구했고 새로운 집주인은 그보다 늦은 그달 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집을 취득했다.
동부지법과 사실관계가 거의 같지만 다른 판결이 난 것이다.
법원은 "실제 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이 가능한지는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요구할 당시의 임대인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법원은 "임차인이 계약갱신 의사를 표시하면 바로 그 효과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즉, 이미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적법하게 행사했다면 계약은 이미 갱신됐고, 새로운 집주인은 그런 상황을 물려받았기에 다시 그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 사건은 기존 1심을 뒤집은 항소심 판결인 것으로 전해졌다. 1심 판결에선 새로운 집주인이 승소했다는 것이다.
첨예한 사안에서 법원의 판결이 엇갈림에 따라 적어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집주인과 기존 세입자간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를 두고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각종 분쟁에 대한 판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법원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임대사업자라면 국토부 등이 나서서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주택에선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간 소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동부지법의 판결에 대해선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확정적인 법리가 인정되는 것은 대법원 확정판결"이라며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새로운 집주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와 관련한 문항을 선명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