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1월 재선에 성공하자 최근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이전 바이든 정부가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근거해 실시 중인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자동차 보조금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같은해 12월 5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에 지대한 역할을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겸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은 미 국회의사당 방문 도중 전기차 세액공제 페지 여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모든 공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향후 트럼프 2기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가능성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특히 이로 인해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들 역시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와 함께 배터리‧태양광‧인버트 등 청정에너지 부품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가 마련한 AMPC(첨단제조 세액공제)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세금융신문은 배터리산업협회와 국내 업계 등을 통해 트럼프 당선 이후 우리 배터리기업들이 겪을 이슈와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국내 배터리기업들은 지난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한 IRA 및 AMPC 제도에 따라 미국 내에서 생산‧판매한 배터리 셀 및 모듈 등에 대해 현재 세액공제를 적용받고 있다.
실제 국내 각 배터리기업들이 공시한 사업보고서 등에 따르면 SK온의 경우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 정부로부터 총 6170억 3800만원의 세액공제를 받은 데 이어 2024년 3분기 누적(1~3분기) 총 3768억 7900만원의 세액공제를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도 2023년 6768억 7400만원, 2024년 3분기 누적 총 1조 1027억 2200만원의 세액공제를 각각 적용받았다. 2024년부터 세액공제를 받기 시작한 삼성SDI는 2024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누적 총 649억 2861만원의 세액공제를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세액공제 배경에는 우리 배터리기업들이 미국 상대로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공장 2곳을 보유한 SK온은 테네시주‧켄터키주에도 모두 3곳의 공장을 추가 증설하려 준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하이오‧테네시‧미시건주 등에서 배터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SDI는 2025년부터 인디애나주의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정부가 IRA 및 AMPC를 폐지할 경우 미국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 배터리기업들의 피해는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증권가 등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배터리산업협회 “트럼프 당선인, IRA‧AMPC 폐지 어려울 것”
배터리산업협회는 트럼프 당선인이 속해 있는 미국 공화당이 대통령에 이어 국회 상‧하원까지 장악해 IRA‧AMPC를 폐지할 가능성은 상당하지만 이를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김승태 배터리산업협회 정책지원실장은 “이전 바이든 정부의 상징적인 법률을 없애고 대규모 세제 감면에 따른 재정적자 상쇄 효과도 크기에 트럼프 2기 정부는 IRA 폐지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IRA 폐지는 입법사항이기에 극복해야 할 난관들이 많다”며 “먼저 ▲IRA에 의한 투자와 이에 따른 일자리가 공화당 우위 지역에 집중돼 해당 지역 공화당 의원들이 폐지에 소극적인 점 ▲공화당이 상‧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했으나 IRA 폐지를 강행할 만큼 충분한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는 점 ▲IRA 폐지를 위해선 상원에서 예산조정(budget reconiliation)이라는 예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예산조정은 2025년 종료 예정인 ‘조세감면 및 일자리법(TCJA) 연장 등에 활용해야 한다는 점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이같은 배경으로 트럼프 산하 대통령직인수위는 IRA 전부 폐지보다는 7500달러 전기차 세액공제만 없애는 부분 폐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아울러 GM(제네럴모터스) 등 미국 자동차 업계가 IRA상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존속을 여전히 희망하고 있는 점도 추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승태 실장은 “이같은 요소를 종합 고려하면 현재 상황에서는 IRA 완전 폐지보다는 부분 폐지에 힘이 실리고 있다”며 “부분 폐지 방식은 상원의 예산조정 절차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고 그 시기는 대략 2025년 4분기 중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 김승태 실장 “트럼프 2기 정부, 막연한 공포심보단 기회로 삼아야”
김승태 실장은 트럼프 2기 정부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보다는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정부‧업계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트럼프 1기 정부를 돌이켜보면 트럼프 당선인은 거래(deal)를 중시하면서 상대방 약점을 공략해 또 다른 것을 얻어내는 협상가 기질이 다분하므로 위협 요인에 과민반응하지 말고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트럼프 2기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통상 정책 가운데 대(對)중국 정책과 법인세 인하 정책은 오히려 우리 배터리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비책 마련 과정에서 우리 배터리기업은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줄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며 “우리 배터리기업들의 경우 미국이 보유하지 못한 첨단 제조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미국의 약점을 우리가 해소해 줄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적극 부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전기차‧배터리 굴기를 차단하고 자율주행, 스페이스X, AI, 로봇, ESS(에너지저장 장치) 등의 분야에서 한미간 협력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승태 실장에 따르면 한미 양국간 배터리 협력사업은 ▲공화당 우위 지역에서의 배터리 투자 및 일자리 창출 ▲중국과의 전략 경쟁 중 공급망 안정이라는 핵심자산 제공 ▲미국 국방안보와 에너지 독립을 위해 중국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른 안보 협력사업 가능 ▲우주항공 등 미래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 역할 등 네 가지 이점을 미국에 제공할 수 있다.
김승태 실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등 대중 강경 인사들을 다수 지명한 만큼 향후 미‧중 관계는 새로운 긴장과 도전이 예상된다”며 “60% 관세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BYD 등 중국 전기차 기업의 미국 진출이 원천 봉쇄되면서 미국 기업들 또한 중국 시장에서의 보복 조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 배터리업계, 정부 지원 건의…“중국 저가 공세 대응 위한 보조금 등 필요”
앞서 지난 2024년 11월 1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자동차 업계 및 배터리 업계와의 간담회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업계로부터 건의사항을 취합했다.
당시 배터리산업협회 및 업계는 정부에 보조금 등 파격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우리 배터리기업들의 경우 트럼프 2기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추진하려는 고율 관세, FEOC(해외우려기관) 등으로 인해 큰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감소)과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배터리 소재인 양극재‧음극재 등을 제조하는 주요 공급망 기업들이 가동률 저하, 영업이익 급감 등의 어려움을 겪는 만큼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전기차가 내연차와 경쟁할 수 있는 원가‧기술 혁신에 대한 지원 확대도 요청했다.
김승태 실장은 “트럼프 2기의 대중국 규제에 대비하고 배터리 공급망 안보를 강화하려면 공급망 기업을 상대로 미국‧일본과 같이 한시적 생산보조금 및 수요기업 구매보조금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 업계, 신중한 움직임…“트럼프 2기 정부 수립 후 발표하는 정책 확인 필요”
한편 업계는 트럼프 2기 정부의 IRA‧AMPC 규제 추진 등에 대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현재까지 IRA‧AMPC 규제와 관련해 아직 세부적인 내용은 아무 것도 발표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현재까지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이 지원받은 금액도 크지 않은 편”이라며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이 오는 1월 20일인 만큼 이후 발표하는 정책을 확인한 뒤 보다 확실한 대응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또 “우리 배터리기업들이 주로 투자한 미국 내 지역들은 공화당 의원들이 속한 곳이 대부분이라 IRA‧AMPC를 쉽게 폐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서야 트럼프 당선인의 IRA 폐지 등이 큰 이슈지만 미국 내에선 불법 이민, 고물가 등이 더 큰 이슈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아직까지 트럼프 당선인의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예단하기에는 이르다”며 “국내 정치권 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권 또한 정책 발표에 앞서 과장되게 부풀리는 측면이 있다. 대부분 큰 피해를 우려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우려할 만한 사안은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는 만큼 당장 향후 업계 현황 등을 전망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업계 내 전문가는 “배터리기업 중에서도 투자 규모가 상당한 곳은 투자 규모 축소, 생산 계획 지연 등 점진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IRA가 당장 폐지된다고 해서 일시에 투자 철회 등을 시행할 수 없기에 투자 축소 등 속도 조절을 통해서 피해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뒤이어 “최근 발생한 국내 정치적 불안요인과 이에 따른 환율 폭등 등과 같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함에 따라 우리 배터리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향후 국내 정치적 불안 요인 해소된다면 정부는 즉시 배터리산업을 포함해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불확실성이 큰 산업 위주로 다시 한 번 집중 점검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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