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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 칼럼] 하나의 근본 이치로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賜也, 女以予 爲多學而識之者與.”

자왈; “사야, 여이여 위다학이지지자여.”

對曰; “然, 非與.”

대왈; “연, 비여.”

子曰; “非也, 予一以貫之.”

자왈; “비야, 여일이관지.”

 

공자가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자공이 “그렇습니다.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의 근본 이치로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고 있다.” - 위령공衛靈公 15.2

 

지식을 축적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소위 16년의 교육 기간을 말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위한 대학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기간 공부를 하더라도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새롭게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기술과 지식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년간, 또는 수십 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결합하면 비로소 나만의 노하우와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준을 넘어서면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보다 중요한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꼭 내가 전공한 분야가 아니더라도 큰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요령을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생 영업을 하더라도 기술의 원리를 깨치고, 기술을 하더라도 영업의 원리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 꾸준한 호기심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나는 오직 이 분야만 알겠고 다른 데는 관심 없어’라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경험을 쌓더라도 업(業)의 근본 원리를 깨우치기가 어렵습니다.

 

제자 자공은 공자가 박학다식한 것이 어릴 적부터 지식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그렇지 않고, 하나의 근본 이치로 원리를 꿰뚫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하나로써(一以) 꿰뚫어(貫) 간다(之)”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정확히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경지”를 뜻하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이 바로 그것입니다.

 

《논어》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나오는데, 바로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연은 공자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칠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노력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인 자공에게 “너와 안연을 비교하면 어떠냐?”라고 질문했을 때 늘 자신감이 넘치던 자공조차도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겨우 둘밖에 알지 못합니다.”라고 안연의 총명함을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본인도 “하나를 들으면 둘은 안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했지만 말입니다.

 

단지 많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제자 자공은 다른 제자들보다 뛰어난 경제관념을 자랑했습니다. 공자는 선진편(11.18)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안연은 학문에 있어서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지만 어려운 처지였다. 반면 자공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물을 늘렸고, 예측을 하면 자주 적중했다.”

 

공자는 수제자인 안연의 가난한 삶을 걱정했고, 자공의 재테크 실력을 은근히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공자가 자신의 학파를 이어받을 사람으로는 안연을 꼽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누구보다 안연의 죽음을 애통해 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어받을 제자가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공자의 학문을 관통하는 이치는 바로 ‘인仁’입니다. 인은 남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렇게 어려워보이지는 않지만, 막상 실천이 어렵습니다. ‘인’을 단지 학문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제자 자공이 그랬습니다. 그는 이재에 밝았지만 언변에도 뛰어났기 때문에 외교가로서 노나라를 전쟁의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자공이 스승보다 낫다고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자공을 당연히 이를 부인했지만, 적어도 마음속에는 안연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수제자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자공이 말이 앞서고, 자신보다 못한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습니다. 오죽하면 공자는 자공에게 평생 가슴에 품고 살 좌우명으로 “기소불욕 물시어인”, 즉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라고 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입니다.

 

배움을 소화하고, 근본적인 이치를 깨닫는 것

 

안연이 요절하고 나서 다른 제자들 사이에서 순위 다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단지 공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후계자라고 자청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전에 공자가 수제자로 인정한 사람은 뒤늦게 거두어들인 어린 제자 증자였습니다.

 

증자는 초반에 공자로부터 ‘둔하다’라고 핀잔을 들을 정도로 안연처럼 일찍부터 싹수를 보인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증자는 늘 스승의 가르침을 복기하고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 앞에서 증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의 도道는 하나의 근본 이치로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고 있다.”

여기에서 ‘일이관지’가 또 한 번 등장합니다. 공자가 나가자,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증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스승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뿐입니다.”

증자는 스승이 말하는 ‘도(道)’를 충(忠)과 서(恕)로 해석했습니다. 이 또한 ‘인’과 같은 의미입니다. ‘충’은 마음(心)의 중심(中)이고, 서는 마음(心)이 같다(如)는 의미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남과 내가 같음을 알고 이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결국 상대방을 사랑하는 ‘인’으로 귀결됩니다. 증자는 이렇게 치열한 공부와 오랜 숙고를 통해서 ‘일이관지’의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삶을 한 번 돌아보시죠. 우리가 배우는 학문, 일하는 직장, 사업의 근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겉으로는 돈과 명예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즉 인(仁)의 정신이 있습니다. ‘인’은 나를 아끼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앞서 영업과 기술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근본에는 역시 고객을 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객에게 더 좋은 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제공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방법론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마음의 토대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이러한 근본 원리를 깨달은 사람과 아닌 사람은 ‘업’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인’의 정신을 깨닫고, ‘일이관지’를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치밀한 리더의 한 수》,《죽음 앞에 섰을 때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출간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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