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제갈량은 ‘편집광’이었다. 그의 치밀한 전략과 계책, 그리고 안배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유비나 방통, 법정처럼 적당히 즐기면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기보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사안을 처리했다.
그는 깐깐하고 꼼꼼했다. 자신과 같이 고명대신으로 유비의 유언을 들었던 이엄이 4차 북벌 때 군량미를 제때 공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배를 보냈다. 1차 북벌 때 위연이 자오곡을 통해 5000명의 병사로 장안을 습격하자는 대담한 계획을 제안했을 때도 승인하지 않았다.
평소에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했을 때 승률이 70%도 안 되었다. 이러한 엄격하고 꼼꼼한 성향 때문에 약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촉나라는 잘 유지되었다. 백성과 부하들은 숨이 막힐 만도 한데 제갈량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을 헌신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5차 북벌 시에 사마의는 촉나라 군대의 군세가 워낙 강하자, 방어로 일관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다만, 사신이 찾아오자 첫 번째로 물어본 질문은 공명의 안부였다. 사신은 아무 생각 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새벽에 일어나시고 밤이 늦어야 잠자리에 드십니다. 스무 대 이상 매를 때릴 일은 모두 몸소 맡아 하시며, 잡수시는 것은 하루 몇 홉도 되지 않습니다.”
이를 듣고 사마의는 자신의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명이 먹기는 적게 먹고 하는 일은 많으니 어찌 오래 버티겠는가!”
이렇게 일만 하는 제갈량을 걱정하여 곁에 있던 주부 양옹(楊顒)이 밑에 사람들에게 업무를 위임하고 푹 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자 공명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나도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선제의 당부가 무거우니 한 사람에 맡길 수가 없구나. 그 사람이 나같이 마음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하고 있을 뿐이다.”
제갈량이 업무 위임을 하지 않는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시 촉나라의 상황과 그의 세심한 성격을 미루어 봤을 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처지인데, 어떻게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업무를 맡길 수 있겠는가?
특히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촉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더욱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백성과 병사들을 세심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촉나라는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5차 북벌 때, 사마의가 계획한 지구전이 성공하고, 촉나라의 ‘큰 별’이 떨어지고 만다. 그해 8월 제갈량은 군중에서 사망했다. 향년 53세였다.
2016년 3월 21일, 실리콘 밸리에도 ‘큰 별’이 떨어졌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명저를 남긴 앤디 그로브가 7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귀환과 더불어 위대한 경영진 교체라고 불리는 앤디 그로브의 인텔 최고 경영자 취임(1979~2005)은 지금의 인텔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헝가리계 미국인으로 미국에 망명할 때 단돈 20달러만 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뒤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고, 무려 30여 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앤디 그로브는 제갈량과 같이 임원들의 모범적인 헌신을 강조했다. 사무실에서 임원들도 일반 직원들과 같은 책상 그리고 주차장을 사용하도록 하고, 출근 시간을 8시로 칼같이 지키게 했으며, 일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잡담하는 것도 금지했다. 당시 자유로운 실리콘 밸리의 문화와는 이질적인 분위기였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텔의 ‘평등 문화’는 직원들이 경영진이나 임원들에게도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만들고 계급 문화를 없앴다는 평을 받았다. 업무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했지만, 통찰력과 결단력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일본 업체들의 공세가 한참 이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하고, CPU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인텔은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성공은 만족을 낳고, 만족은 실패를 낳는다. 과거와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 미래의 생존 근거를 잃게 된다. 항상 긴장하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제갈량은 늘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출사표》를 통해서 후계자를 지정했다. 바로 시중과 시랑인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이다. 문과 무를 갖춘 강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완은 강유와 더불어 다시 북벌을 추진하기 직전 아쉽게 세상을 떠났고, 비의가 상서령과 대장군이 되어 전반적인 나라 운영의 책임과 병권 갖게 되었다.
특히 그는 무리한 북벌을 진행하려는 강유를 잘 컨트롤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도 때가 무릇 익자 대대적인 북벌을 준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한중에서 벌어진 연회에서 촉나라에 귀순한 위의 장수에게 살해당했다.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촉나라의 수명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비의가 죽으면서 촉나라는 진지가 내정을 맡고, 강유가 군사권을 맡으면서 촉은 중심축을 잃게 되었다. 진지는 북벌의 지지자가 아니었고, 많은 신하가 북벌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렇게 조정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강유의 북벌은 더 힘들게 되었고, 결국 위나라의 대공세를 받아서 촉은 멸망했다.
촉나라가 결국 망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촉나라는 물자가 풍부하고, 살기 좋은 무릉도원 같은 곳이지만, 결국 고립된 지역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물적, 인적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능력 있는 비관주의자가 사라지고 능력 없는 낙관주의자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능력 있는 비관주의자는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 강유이고 능력 없는 낙관주의자는 황제 유선과 환관 황호다.
촉나라는 제갈량 사후에도 그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장완, 비위, 동윤의 뛰어난 국정 운영 능력으로 나라를 안정적으로 잘 통치했다. 진수는 정사 《삼국지》에서 이들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장완은 무거운 위엄이 있고, 비의는 드넓은 아량을 지녔다. 모두 제갈량의 정신을 이어 그를 따르려 개혁을 하지 않으니 변경은 아무 변고가 없고 평화로울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수명을 늘리고,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경영진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물론 단순한 위기의식으로는 부족하다. 철저하게 그 원인을 분석하고, ‘능력 있는 비관주의’로 무장한 경영진이 이를 개선해야 한다.
능력 있는 비관주의란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정확히 계획하는 것을 말한다. 두려움을 인지하고 그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를 피하지 않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막연히 ‘잘 될 거야’라는 낙관주의는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다. 결국 마케팅 전략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막연한 낙관주의보다 차라리 능력 있는 비관주의가 되어야 한다.
[프로필] 나단 작가
•저서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저서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 도서 선정 ·저서 《공부의 품격》 출간
•대기업 반도체 부서 마케팅 관리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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