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사람은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어른을 공경하고, 언행을 삼가고 믿음이 있으며, 널리 사람들을 소중히 하면서 인(仁)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실행하고도 여력이 있다면, 학문을 배우도록 해라.” _학이(學而) 1.6
공자가 강조한 인(仁)의 개념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나를 수양하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효(孝)’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결국 가족뿐만 아니라 친지, 이웃, 대중에게도 인(仁)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안에서 새는 물이 밖에서 샌다는 말도 있습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통해서 나를 갈고 닦고,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 _ 《대학》 중에서
공자가 진정으로 열망하고, 추구하는 군자는 바로 인(仁)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임금도 부모처럼 여깁니다. 공자가 14년간의 주유천하를 하는 와중에 마지막 행선지로 위나라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이때 그는 10대 제자를 꼽아서 주변에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10대 제자가 되는 영광을 얻었을까요?
인(仁)의 성취를 위해서는 덕행이 우선입니다
그가 꼽은 항목은 덕행, 언어, 정사, 문학 방면인데 이중에서 덕행을 제일 우위로 여겼습니다. 인의 성취는 곧 덕행을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덕행’으로 꼽은 네 명의 제자가 바로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입니다. 이중에서 민자건의 효심은 그야말로 공자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아쉽게도 《논어》에는 민자건에 대한 이야기가 다섯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먼저 공자가 직접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선진편 11.4).
“참으로 효성이 지극하구나, 민자건이여! 사람들은 부모와 형제가 그를 칭찬하는 말에 비난하지 못하는 구나.”
부모와 형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민자건을 칭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훌륭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이 칭찬을 하다보면 누군가는 과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데, 아무도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인품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민자건에 대한 효심은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계모, 그리고 배다른 형제 두 명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마치 신데렐라의 주인공처럼 그는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계모는 두 아들에게는 솜옷을 입히고, 민자건에게는 갈대꽃으로 만든 겨울옷을 입혔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당연히 추위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괜히 집안에 분란을 일으킬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그의 허술한 겨울옷을 보고 대노해서 계모와 헤어지려고 했습니다. 이때 민자건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면 아들 하나가 추우면 되지만, 안 계시면 아들 셋이 떨게 됩니다.”
정말로 천사표 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계모도 그의 효심에 감동해서 이후로는 아들들을 공평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일부 극화된 면도 있겠지만, 그의 효심이 대단하다는 것은 공자의 입을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이렇게 마냥 착하고 순하게만 보이는 민자건이지만 중요한 순간에 할 말은 다했습니다. 노나라의 세도가인 계손 씨에서 그를 스카우트하려고 하자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자꾸 귀찮게 하면 달아나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즉, 그는 왕을 농락하는 세도가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고, 스스로 학문을 닦는 것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효(孝)는 인(仁)의 기본입니다
자신을 잘 수양하고, 효를 갖춘 사람은 ‘인(仁)’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어》에는 효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부모가 생존할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는 예로써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위정편 2.5). 꼭 ‘예’라는 형식보다는 부모의 뜻과 행적을 잘 살피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3년 상’의 유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자의 부모에 대한 지극한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아(宰我, 기원전 522년~458년)입니다. 재아는 3년 상은 너무 길고, 1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양화편 17.21). 3년 동안 군자가 예와 음악을 행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또한 새 곡식이 나고, 불을 피울 나무도 바꾸는데 1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했지만, 공자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하거라.”
공자의 논리는 아이가 부모 품을 벗어나는데 적어도 3년은 걸리기 때문에, 아낌없는 부모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바로 ‘3년 상’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공자는 “재아는 부모로부터 3년 동안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탄식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시대에 3년 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나 그만큼 부모의 은혜를 오랫동안 기억하라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사랑, 즉 인(仁)을 베풀겠습니까?
누구보다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자가 ‘효도’를 먼저 갖추라고 이야기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효(孝)가 바로 덕행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도서 선정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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