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0 (화)

  • 맑음동두천 -5.4℃
  • 구름조금강릉 1.3℃
  • 맑음서울 -3.8℃
  • 맑음대전 -0.7℃
  • 맑음대구 3.6℃
  • 구름조금울산 4.0℃
  • 구름조금광주 0.0℃
  • 구름조금부산 6.0℃
  • 맑음고창 -1.3℃
  • 구름조금제주 4.6℃
  • 맑음강화 -6.4℃
  • 맑음보은 -1.4℃
  • 맑음금산 -0.9℃
  • 구름조금강진군 1.7℃
  • 구름조금경주시 3.8℃
  • -거제 3.6℃
기상청 제공

[전문가 칼럼] 계단과 골목이 가득한 재생된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 리스본

 

(조세금융신문=장기민 한국외대 도시·미학 지도교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유럽의 변방’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도시다. 파리나 런던처럼 대륙 중심의 화려함을 뽐내지도 않고, 바르셀로나처럼 관광 인프라가 폭발적으로 확장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변방성은 리스본만의 색을 만들었다. 태양이 낮게 비추는 언덕 위, 수백 년의 시간을 담은 계단과 골목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담은 책장이다. 리스본의 재생은 바로 이 계단과 골목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쓰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래된 도시를 ‘다시 이야기하기’

 

리스본은 18세기 대지진과 쓰나미, 화재를 겪으며 거의 전 도시가 무너졌다. 이후 복원과 재건을 반복했지만, 20세기 중반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과 경제 침체로 쇠락했다. 다른 도시들이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된 건물을 허물 때, 리스본은 골목과 계단을 그대로 남겼다. 대신 그 낡음을 ‘리스본다움’이라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알파마(Alfama)의 구불거리는 골목과 언덕길, 바이샤(Baixa)의 18세기 재건 건축물, 바이로 알투(Bairro Alto)의 밤문화 거리 모두 보존의 대상이자 재생의 무대가 됐다. 시 당국은 빈집을 청년 예술가의 작업실로, 버려진 창고를 커뮤니티 센터로 개조했다. 재생의 핵심은 ‘깨끗한 새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 위에 현재를 덧입히는 방식이었다. 마치 오래된 책의 본문 위에 새로운 문장을 주석처럼 써 내려가는 작업이다.

 

변방을 스타트업 무대로

 

리스본은 ‘변방’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불리함이 아닌 기회로 바꿨다. 2016년부터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콘퍼런스 ‘웹 서밋(Web Summit)’은 리스본을 글로벌 스타트업 지도의 전면에 올려놓았다.

 

 

특히 항만 재개발 구역이 주목받았다. 한때 어선과 화물선이 드나들던 창고 단지는 IT기업, 디자인 스튜디오, 스타트업 사무실로 변신했다. ‘LX 팩토리(LX Factory)’는 대표적인 사례다. 19세기 섬유공장이었던 이곳은 카페, 서점, 예술공방, 코워킹 스페이스가 모인 복합문화지구가 됐다. 낡은 벽돌 건물과 철골 구조물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창의적인 공간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여기에 저렴한 임대료와 쾌적한 기후, 양질의 인프라가 결합하면서, 전 세계의 디지털 노마드와 창업가들이 리스본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 산업 재생의 성공은 ‘낡음이 산업 경쟁력의 약점’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시간과 재료를 살리는 법

 

리스본의 디자인 전략은 ‘시간의 흔적’을 감추지 않는 데 있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아줄레주(azulejo) 타일 벽화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항해 시대의 이야기, 종교적 신화, 일상의 순간을 담은 역사적 기록이다.

 

현대 건축가들은 이를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현대적인 해석을 덧입힌다. 새로 지은 건물 외벽에 전통 타일 패턴을 레이저 커팅한 금속 패널로 입히거나, 버려진 철교의 골조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안에 도서관과 카페를 넣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낡음과 새로움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미를 강화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속도를 줄이는 도시 전략

 

리스본의 재생은 ‘빠른 확장’이 아니라 ‘속도의 제어’를 전략으로 삼았다. 고층 빌딩 대신, 트램과 전기 자전거, 도보 이동 중심의 교통망을 정비했다. 태양광 패널 보급, 해안선 생태 복원, 지역 농산물 시장 확대 같은 정책은 도시의 자급력을 높였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서 리스본은 ‘재생’을 방재의 원칙으로 확장했다. 태그스강 하구의 홍수 위험 지역에는 방조제를 높이는 대신, 수변 산책로와 생태 습지를 조성해 재난 대응과 시민 여가를 결합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대응이 아니라, 도시민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재생 전략이다.

 

 

장소성이 만든 정체성

 

리스본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계단과 골목’이라는 평범한 구조물이다. 언덕 위로 이어지는 계단은 도시의 수직 동선을 만들고, 골목은 예측할 수 없는 시선을 제공한다. 이 단차와 곡선은 현대 건축이 흉내낼 수 없는 공간적 서사다.

 

관광객은 계단 끝에서 내려다본 붉은 지붕과 푸른 강, 그리고 골목 모퉁이에서 마주치는 작은 카페에 매료된다. 주민에게는 일상적이지만, 외부인에게는 유럽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리스본은 이 ‘평범한 독창성’을 재생의 중심에 두었고, 그것이 곧 도시의 정체성이자 산업 자산이 됐다.

 

리스본은 ‘유럽의 변방’이 도시 재생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중심부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소모되지 않는 덕분에, 낡음을 지키고 새로운 기능을 덧입힐 시간이 있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도시의 미래는 반드시 새것이어야 하는가?” 리스본의 답은 ‘아니오’다. 미래는 과거와 단절한 공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결을 존중하며 그 위에 현재를 덧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생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의 길이라는 것이다.

 

리스본의 계단과 골목은 단순한 경관 요소가 아니라, 낡음을 다시 쓰는 방법을 압축한 상징이다. 도시 재생은 기술과 자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곳의 빛, 바람,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이 함께 엮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리스본은 그 섬세한 방식을 알고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배움은,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선 다른 도시들에게도 충분히 유효하다.

 

 

[프로필] 장기민 한국외대 도시·미학 지도교수

•(현)서울창업기업원 기업경영위원장

•(현)한국경영환경위원회 위원장

•인하대학교 경제학, 도시계획학 박사

•국민대학교 디자인학 석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