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미양 한국분노조절교육협회 회장)요양병원에 모신 어머니를 뵙고 나온 밤거리는 조금 춥지만 그래도 불빛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도 시어머니처럼 나의 두 아들들의 부인에게 현명한 시어머니가 되어주어야지….” 늘 과함도 없고 부족함도 없으셨던 어머니와의 기억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신혼여행 다녀온 후 직장에 출근하는 첫날이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출근 전에 집안 청소를 하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 싶어 살그머니 거실을 비질하고 있었더니 방문을 여시고 “네가 계속해서 할 수 있으면 해!” 하시기에 얼른 올라가 옷 챙겨 입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의 기준은 늘 “이것을 내가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인가?”였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에게도 너무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었고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현명하고 단정했던 어머니도 시간의 흐름 앞에 노인이 되어가셨는데 노인에게 필연적으로 오는 병을 비켜가지 못하시고 몇 년을 힘들게 보내셨다. 그래도 여전히 품위있게 병과 맞서셨는데 지난 6월부터는 꼼짝을 못하시고 와병하게 되시자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많이 힘들어 하셨다.
아주버님은 먼 나라에서 근무하느라 어머니가 아프신 데도 제대로 모시지 못해 나중에 회한으로 남을까 취업도 미루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또 동서는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 주말이면 올라와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가셔서 형님 내외에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커졌다. 서로 미루기를 할 생각도 없고 의도도 없었지만 어느 틈에 아주버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신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가족에 비해 자녀들이 젊고 일단 일선에서 물러나 제 2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여서 온전히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홀로 남으신 아버지가 저렇게 거동을 못하게 되면 나도 저렇게 잘해드릴 수 있을까? 했었지만 결국 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그 때 떠오른 속담이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이었다. 그 속담이 얼마나 아픈 속담인지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방에서 마당을 바라보며 삶을 마무리 지으시기를 원하셨지만 계속되는 통증과 꼼짝 못하는 육체적 고통은 때로 그대로 간병하는 자녀들과 요양보호사에게 전해져 주변에 계신 분들도 발병하기 시작하자 전문적인 의료시설에 모시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말씀과 조언을 받아들여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모시게 된 것이다.
본인이 막상 병원에 간다고 하셨으면서도 병원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간간히 집에 다시 가시고 싶다고 하셔서 마음이 저렸지만 오늘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긴 무스탕 코트를 입은 나를 보며 “러시아 다녀왔느냐?”고 해서 “왜요?” 하였더니 “그 털옷 사러 갔다 왔나 했지”하며 예전처럼 유쾌한 농담을 건네시고 “빨리 집에 가서 집 잘 보라”고 당부도 하신다. “집 누가 떼매 가나 잘 볼게요.” 했더니 이가 빠진 얼굴로 함박 웃으신다.
그 웃음을 보고 나와서 인지 오늘 밤은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인가? 밤길을 걷는 마음이 가볍고 춥지만 불빛이 아름답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람은 당해 보기 전에는 그 고통의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노인 간병의 고통과 부담도 그 중의 하나인데 문제는 그것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이다. 노인 1명당 평균 2.6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간병 스트레스는 심신의 고통까지 불러온다고 한다.
그런데 중증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비용은 하루에 7만 5000원으로 한 달에 대략 225만원이 필요하고 병원에 모시면 비용은 이보다 더 증가하게 되므로 60대 부부가 생각하는 최소생활비 167만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61.7%의 노인 빈곤율은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로 결국 노년의 배우자나 노인이 된 자녀가 노인 환자를 돌보는, 노노(老老)간병 환자라는 말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병비 부담이 크다 보니 일단 간병을 직접 하긴 하는데 간병가족이 받는 심신의 스트레스는 매우 크다고 한다. 환자 보호자는 우울증에 노출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 본 적도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도 있고 배우자를 간병하지 않는 노인의 경우 사망률이 일반인의 1.08배였지만, 장애를 지닌 배우자를 간병까지 하는 노인의 사망률은 1.63배였다는 미국의학협회(AMA)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결과를 보면 간병이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 치부될 일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79살이고, 건강을 유지하는 건강 수명은 73살로 평균적으로 노년 6년은 병치레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뿐만 아니라 노인성 질환인 파킨슨병, 중풍, 뇌졸중 등 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 간병상태도 길어지고 있다.
이 같은 질병은 치료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고령사회에서 건강한 장수는 모두의 꿈이지만 ‘아픈 상태에서 오래 사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에 국가는 2008년 7월 1일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수발보험’이라고도 불린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사회적 연대원리에 의해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로 수급자에게 배설, 목욕, 식사, 취사, 조리, 세탁, 청소, 간호, 진료의 보조 또는 요양상의 상담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은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다.
또, 정부는 간병 문제 해결을 위해 2013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간병인이나 가족 대신 의료기관의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의 인력이 투입돼 24시간 전문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로 건강보험이 적용돼 간병비 부담도 적다.
간병인 구인 비용의 4분의 1밖에 들지 않아 이용자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지만, 중소병원 간호사 인력난이 심각해 지방은 간호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간호 인력 수급 문제 등으로 전체 의료기관의 20% 정도만이 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노인인구 700만 시대, 노년의 건강악화에 간병까지 맡아야 하는 노노간병 문제를 해결할 만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동시에 간병문제의 고통도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가족관계 변화는 간병의 고통을 더욱 부풀린다. 대부분 독자이거나 기껏해야 자녀수가 1~2명에 불과한 자녀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간병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겠다.
간병보험이 모든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요한 준비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6살 정도 길고, 치매 발병률도 1.7배 정도 높기 때문에 연금뿐만 아니라 간병자금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을 본인이 건강할 때 허물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머니를 병문안 오신 이모님 내외가 사시던 집을 내놓고 시니어타운에 들어갈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이미 팔순이 넘어 매일 식사준비 하는 것도 번거롭고 앞으로의 병치레를 위해 미리 건강할 때 들어가기로 했다는 두 분을 보며 나도 적절한 시기에 미리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자칫 본인과 자녀들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요즘 그런 생각이 절실히 든다. 올 때는 축복이었던 이 길이 갈 때는 왜 이토록 절망스러울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던 천상병 시인처럼 나도 아름답게 돌아가고 싶다.
[프로필] 김 미 양
• 한국분노조절교육협회 회장
• 교육학박사 • 에듀플랫폼 대표
• 인성교육, 생애주기에 따른 인생설계, 행복100세, 마음관리 강의
• 안양지청 예술치료전문 위원
• ‘달 모서리에 걸어둔 행복’ 저자
• 한국문인 등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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