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미양 에듀플랫폼 대표) 최근에 대학교 동문회에서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명예퇴직을 한 나에게 날이 좋을 때 떠나는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다. 대개의 경우 교사는 방학이 있어 좋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나에게 방학은 많은 사람이 움직여서 번잡하고 여행 경비가 비싸기도 하지만 한 학기 수업을 하고 나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집에서 쉬어야만 하는 기간이었다.
최근에는 단기방학이 늘고 있는 추세이기에 좋은 계절에 여행하는 것이 가능해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이동인원이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나에게 호젓하고 날 좋은 날에 하는 관광은 내 버킷리스트의 하나였다.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경비가 많이 드는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았기에 명퇴를 결심
하면서 스페인이나 발칸, 북유럽을 염두에 두고 떠나리라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 긴 기간을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패키지여행을 가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 어떻게 할까 탐색하던 차에 모교에서 보내오는 동문회보에 실린 동창회 주최 북유럽 여행이 눈에 번쩍 뜨여 주관자에게 문의하고 신청하였다.
막상 신청하자 동문들끼리 여행을 가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고 논문 심사 및 출간될 책 일정과 맞물려 떠날 수 있을까 염려하였으나 극적으로 모두 해결되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하였던 여행용 캐리어 바퀴가 망가진 이유도 있고 다른 때보다 일정이 긴 여행이라 최근에 나온 가벼운 소재의 캐리어를 주문하고 안내된 대로 짐을 꾸릴 준비를 하자 여행을 떠나는 설렘으로 며칠을 흥분하며 보냈다.
동문회에서 여행지에 대한 사전 안내가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함께 제공되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잘 읽지는 못하였지만 낯선 이국의 풍광으로 기대감은 높아졌다. 드디어 여행시 주의사항이 왔는데 북유럽 날씨에 대비하여 추위를 견딜 옷을 준비하고 비상약품 및 우비와 여권을 챙기라는 말에 드디어 떠나는구나 하니 여행을 가는 기분에 한껏 취할 수 있었다.
부치는 수화물 23Kg, 기내 캐리 8Kg을 꼭 엄수하여야 한다는 주의사항에 여행가서 입어야 할 옷들과 신발, 비상약품, 모자, 수영복, 노트북 등을 주욱 늘어놓고 정해진 가방 안에 넣기위해 들었다 놓았다 하는 과정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인생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하였는데 이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우리네 인생이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여행은 정해진 기간 내에 하는 것인데 어떻게 여행에 비유해? 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해도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행로는 우주의 질서에서 본다면 한바탕 여행에 비견하는 것이 생경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의 떠날 날과 돌아올 날을 정한다는 것과 돌아갈 때 가져온 것을 다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인생과는 다르지만, 누군가의 노래가사에 나오듯이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갈 때 옷이나 장신구 정도만 챙겼지 이번처럼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나이가 든다는 것이 염려가 많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잇몸이 문제를 일으켜서 혹시나 여행가서 탈이 날까봐 여러 번 치과에 가서 단도리를 하였고, 예측이 가능한 선에서 다양한 기후에 대비해 옷을 준비하였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무거운 노트북을 짐에 넣어 떠났지만 날씨는 너무 좋아 반팔 옷으로도 충분하였고, 다행히 치아는 무사하였고, 노트북은 쓸 일이 생기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나 매일 숙소가 바뀌는 일정상 가방 두 개를 밀고 다녀야 했던 내게 짐의 무게는 버거웠다. 거기에 또 돌아올 것을 대비해 가는 곳마다 지나치지 않고 쇼핑을 하다 보니 짐은 점점 늘어
가방에 있는 여유 공간을 모두 늘려 사용해야 했다.
물론 추가비용을 내면 짐은 부쳐주지만 정해진 무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오는 내내 지속되었다. 어떻게 보면 여행을 통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는 연습을 하게 된 좋은 점이 있다. 가방을 더 이상 채울 수 없다고 판단될 때부터는 좋은 것이 있어도 살 수 없었기에 덥석 무엇을 산 것을 후회하게 된 순간도 있었는데 우리도 살면서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했던 선택들 때문에 낭패를 봤으면서도 끝내 움켜쥐고 가야 했고 그러기에 다른 기회를 잃어버린 선택들과 정작 필요 없는 것을 끝내 가지고 다니느라 버거웠던 기억들이 교차했다.
처음에 잠시 망설이게 했던 선배들과의 여행은 생각보다 좋았다. 서로를 배려하며 했던 여행은 내내 서로를 편하고 즐겁게 하였기 때문이다. 예쁘다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며 맛있는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마음 덕분에 내내 행복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중도에 잘못하여 근육통이 와서 놀랐는데 등을 주물러주고 약을 발라주어 빨리 회복돼 문제없이 여행을 하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코펜하겐 바닷가에서의 환성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지나고 스웨덴의 고풍스럽고 단아한 스톡홀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고 교육으로 유명한 헬싱키의 중앙공원까지 이어졌다. 파란 물감을 뿌린 듯한 아름다운 하늘,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은 왜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지를 저절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곳은 내가 머물러 살 곳이 아니고 스쳐 지나는 여행지라는 사실…. 그러고 보니 여행과 내 삶이 다르구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저 바라보고 즐기고 떠나니 행복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가지는 많은 어려움이 펼쳐져 있었을 게다. 물론 그런 것들을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다. 인생의 많은 굴곡을 거치면서 살아 온 우리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그 많은 것을 대비한 여행 가방을 꾸린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너무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무거운 가방을 꾸리지 말자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많은 정보는 그 긴 시간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로 우리의 삶이 이렇게 돼야한다 저렇게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대비해야 할 것들 목록을 만들어 끝없이 불안해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쫓기듯이 사는 것이다.
부엌에 블록 칼꽂이가 있고 다양한 종류의 칼이 꽂혀 있는데 과연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 이번 여행에 작은 주머니칼로 잘라준 사과를 먹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라이프를 꿈꾸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미래에 대한 준비와 염려로 지금을 허덕거리며 살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한번 돌아보자. 그동안 잘 살아온 나에게 토닥이며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남은 생은 여행하듯 가볍고 즐겁게 살자.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짐만 챙겨들고 매일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을 즐기며 살자.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리면서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인생은 여정(旅程)이다. 목적지가 아니고)”
[프로필] 김 미 양
• 교육학박사 • 에듀플랫폼 대표
• 인성교육, 생애주기에 따른 인생설계, 행복100세, 마음관리 강의
• 안양지청 예술치료전문 위원
• ‘달 모서리에 걸어둔 행복’ 저자
• 한국문인 등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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