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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대중 골프교실⑫] 최초의 캐디는 누구일까? <上>

<연재순서>

 

1. 캐디는 무슨 일을 할까?

2. 그래서 얼마나 벌까?

3. 골프장에서 캐디가 정말 필요한 이유?

4. 왜 캐디가 부족할까?

5. 캐디에도 종류가 있다.

6. 어떻게 하면 캐디가 될까?

7. 캐디교육의 새로운 트랜드(Trend): 인턴 캐디 제도

8. R&A 골프 룰(Rule)로 본 캐디

9. 캐디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골프 룰(Rule)

10. 캐디는 언제부터 있었나?

11.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

12. 최초의 캐디는 누구일까?

13. 가장 유명한 캐디는 누구일까?

14. 캐디 고용보험 시행이 골프장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15. 앞으로 캐디가 나아갈 방향은?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왜 “볼(Ball)”이라고 소리칠까?

 

처음 골프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볼”이라고 소리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것이고, 왜 볼이라고 소리쳐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있을 것이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볼(Ball)”이 아니라 정확한 표현은 “포어(Fore)”다.

 

지금은 “포어”라고 소리치는 이유가 옆 홀이나 앞으로 볼이 가서 다른 골퍼가 그 볼에 맞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경우에, 볼이 그쪽으로 갈 수 있을 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포어”라고 크게 소리쳐서 주의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라운드 중에 “포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고, 이 말을 들으면, 볼이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니, 일단 주위를 살피고 볼에 맞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초의 캐디는 앤드류 딕슨

 

역사적으로, 최초의 캐디로 기록된 사람은 앤드류 딕슨(Andrew Dickson)이다. 앤드류 딕슨은 1681년 스코틀랜드의 리스 링크스(Leith Links[i])에서 열린 영국과 스코틀랜드 골퍼들의 골프경기(the Duke's golf match)에서 어린 나이에 제임스 7세(James Ⅶ) 요크 백작(Duke of York)의 포어 캐디(Fore-caddie)가 되었다고 한다.

 

요크 백작이 경기 중에 볼을 치면, 앤드류 딕슨이 미리 볼이 올 곳에 가서 볼을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 때, 가설이 등장한다. 포어 캐디는 볼을 찾기 위해서 미리 앞에 나가 있는데, 볼을 쳤다는 의미로 “포어”라고 외쳤다는 설과 친 볼이 방향이 너무 나빠서 캐디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포어”라고 했다는 설이다.

 

역사의 진실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만, 그 당시 골프 볼은 새의 깃털(featherie)로 만들어서 매우 비싸고 만들기 힘들었으며, 골프 룰에 따라 ‘One hele, One ball’ 한 홀에서는 볼 한 개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볼이 어디에 떨어지는 지를 확인하고 위치를 알려주는 캐디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그 당시 캐디는 포어캐디의 줄임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앤드류 딕슨은 후에 골프클럽메이커가 되었고, 그가 죽은 지 약 300년 후인 2003년에 캐디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을 올렸다.

 

앤드류 딕슨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캐디들은 다재(多才) 다능(多能)해서 캐디 한가지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골프클럽제작자, 코스관리자, 코스설계자 등 다양한 일을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포어 캐디가 “포어”를 보다가 볼을 건드릴 경우 처리 방법은? 포어 캐디를 고용한 사람이 골퍼면, 골퍼에게 페널티가 가고, 경기 위원회에서 고용했다면 페널티 없이 볼이 원래에 있던 위치에 놓고 다시 플레이해야 한다.

 

앤드류 딕슨 시대에는 포어 캐디가 골퍼에게 직접 고용되는 관계였지만, 현대에 와서 포어 캐디는 경기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경기 위원회에 고용되기 때문에 골퍼 한 명의 볼 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라운드에 포함된 모든 골퍼들의 볼을 찾아 표시해 주거나 볼의 위치를 알려준다.

 

또한 캐디가 골퍼의 클럽을 운반(Transfer)하고, 핸들링(Handling)해 주며, 클리닝(Cleaning)해 주며, 정보(Information)와 어드바이스(Advice)를 제공하지만, 포어캐디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앤드류 딕슨만큼 초기 캐디로서 잘 알려진 사람은 스코틀랜드 남부 에딘버러(Edinburgh)의 브런츠필드(Bruntsfield)에서 활약한 윌리 군(Daft)이다. 윌리 군은 브런츠필드의 캐디로서도 유명하지만, 아래 그림처럼 외투를 여러 겹 껴 입고 다니는 그의 특이한 복장 때문에 더욱 유명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어린 소년들이나, 골프와 관련 있는 나이든 사람들이 캐디를 했는데, 유독 윌리 군만 골프와 관련도 없었고, 나이도 많은 캐디로, 단지 생계를 위해서 캐디를 했던 최초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유명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앨런 로버트슨(Allan Robertson, 1815-1859)과 올드 톰 모리스(Old Tom Morris, 1821-1908), 그리고 1860년 디 오픈 최초의 우승자인 윌리 파크(Willie Park Sr., 1833-1903) 등도 모두 캐디 출신이었다. 포어 캐디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밥 퍼거슨(Bob Ferguson, 1846-1915)이다. 머슬버러 출신인 퍼거슨은 8살에 캐디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슬버러 골프장(Musselburgh Links) 소속인 그는 홈구장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1880년부터 1882년까지 3년 연속 우승을 했다.

 

이어서 "최초의 캐디는 누구일까? <下>편"이 계속됩니다.

 

 

[프로필] 김대중

• 2019년~현재: (주)골프앤(www.golf-n.co.kr) 공동대표

• 2010년~2019년: 스프랭캠프 대표

•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 일본 국립 츠쿠바대학(筑波大学)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 前) 한국무역협회, 홍익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강사

• 저서: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인터넷창업길라잡이, 인터넷무역실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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