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전 정부 부역자는 승진도, 영전도 없게 하라.” 인수위가 출범 후 불길한 뜻의 전문이 통의동 사무실 인근을 떠돌았다. 정부 출범 후 용산 집무실로 자리를 옮긴 후 소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검찰은 한동훈, 경찰은 이상민 장관 하에 인사가 이뤄졌다. 누가 인사를 한들 대통령의 의사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누가 정권의 의향을 대변하는 사람이냐가 중요했다. 김창기 국세청장은 14년 만에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된 정무직 고위공무원이다. 국세청 고위직 인사는 김창기 국세청장이 정권의 대변자인지 증명하는 첫 관문이다.
김창기 25대 국세청장은 후보 지명부터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인사청문회 없는 임명도 파격이었지만, 퇴직자의 국세청장 복귀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진짜배기들이 주목한 또다른 지점은 국세청장 후보군이었다.
국세청장 내부 후보는 1급 고위직인 국세청 차장, 서울지방국세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부산지방국세청장에서 추천된다.
국세청 차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국세청장을 양분했으며, 국세청 차장조차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거친 사람이 태반이었다. 3배수 후보 선정이 관례였기에 관례상 중부지방국세청장이 들어갔으며, 말석인 부산지방국세청장은 후보에 들어가지도 못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꾸린 초대 국세청장 후보군에는 퇴직자 김창기 전 부산지방국세청장(1급), 노정석 부산지방국세청장(1급), 강민수 대전지방국세청장(2급) 등 전에 없던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임광현 국세청 차장, 임성빈 서울지방국세청장, 김재철 중부지방국세청장 등 국세청 3대 고위직은 단 한 명도 후보군에 오르지 못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진짜 파격이었다.
국세청 역사상 가장 파격적 인선이었다는 14대 이용섭 국세청장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새정부와 연고가 1%도 없던 기재부 세제실장 이용섭을 초대 국세청장으로 발탁했다. 국세청 차장,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내부 출신을 국세청장으로 뽑진 않았지만, 적어도 후보 추천을 받을 때는 국세청 내부 질서를 존중했다.
어차피 내칠 사람들인데 미리 뺀 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을 수는 있다.
이들 3대 고위직은 문재인 정부에서 세도를 떨쳤던 인사들이다.
‘어차피 내칠 사람들인데 미리 뺀 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면 어차피 국세청장은 하나인데 그 후보군에 반대편을 넣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질문 역시 성립된다.
분명한 것은 이제 기존 질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Errare humanum est
실수는 인간적이다
국세청장 후보 경선의 나비효과는 국세청 1급 인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세청장을 두고 경합했던 인물들은 새 국세청장이 나오면 퇴직하는 것이 선례였다.
하지만 노정석 부산청장과 강민수 대전청장은 퇴직은 커녕 1급 인사에서 영전이 타진된다.
국세청장 후보 경합은 어떻게 전개되었던 것일까.
강민수 대전청장은 국세청장 경합 처음부터 승리자가 되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다. 경력과 인망, 능력 면에서는 하자가 없었으나, 2급 지방청장이란 것이 발목을 잡았다. 국세청장은 두 계단을 더 올라가야 했다. 행정부에서 2계급 특승은 전쟁 때나 영웅적 순직 때만 볼 수 있는 일이다.
“강민수 대전청장이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행정부에서 2계급 승진은 있을 수가 없어요. 차장, 서울청장, 중부청장 빼고 국세청장 후보를 3배수로 하다보니 넣은 걸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 허수죠.” (전직 국세청 고위직)
노정석 부산청장은 처음엔 퇴직으로 가닥이 잡혔었다. 하지만 노정석 부산청장은 지난 국세청장 경합 초반 각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라고 알려진 건진법사, 연민복지재단 우회 지원을 했다는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지원자로 거론됐다. 김창기 국세청장 임명으로 노정석 부산청장은 어렵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렇지만 노정석 부산청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출장까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 이는 생존에 성공했다는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로 여겨진다.
생존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채널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국세청장 경합에서 김창기, 노정석 두 후보가 영향력을 빌린 곳이 동일했던 것으로 꼽히고 있다.
그곳은 바로 윤핵관으로 알려진 보수PK계 정치인들.
지난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선두에 서서 윤석열 후보 캠프에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친홍에서 친윤으로 깃발을 바꾸어 2021년 8월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 윤석열 야권 대선후보가 국민의힘 입당 전인 2021년 7월 25일 윤석열 국민캠프에 합류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등이 주요 인사다.
특히 윤한홍 의원은 서울시, 청와대 선임행정관, 인사비서관, 행정자치비서관까지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 한 인사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행정부지사를 하는 등 친홍계 인사로 구분되었으나 지난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윤석열 후보 비서실장을 맡아서 대선캠프 내 핵심인사로 활동했다. 경남도지사에 나온다, 대통령실에 들어간다는 입각설이 나왔지만 그는 현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오히려 평가는 더욱 올라갔다.
윤한홍 의원이 이명박 청와대 인사비서관을 하던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김창기. 참여정부 말기 청와대 파견됐던 노정석. 두 인물은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운 공생관계로 넘어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검찰과 윤핵관을 잡으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겁니다. 실력만 있어서는 어렵고….” (전현직 국세청 공무원, 정치인)
“국세청장 되려고 서로 정말 싸웠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죠. 완전히 형님-아우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같은 배는 탔다고 봐야 해요.” (전직 국세청 고위직)
◇ sed perseverare diabolicum
그러나 (오만하여) 거듭된 실수는 극악무도하다.
현재 국세청 인사 향방은 국세청 차장에 집중되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장에 강민수 대전청장, 대전지방국세청장에 정철우 교육원장, 광주지방국세청장에 윤영석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 제주 교육원장에 장일현 국세청 소득지원국장까지는 상당수 전망이 일치한다.
그러나 국세청 차장과 이와 연계된 중부지방국세청장, 부산지방국세청장 인사에 이르면서 각각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차장 후보자로 거론하는 사람은 제각각이지만, 단 하나 공통된 의견이 있다.
이번에 가는 국세청 차장은 실권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세청 차장에게 보장된 힘은 없다.
인사나 감찰은 국세청장의 영역이고, 세무조사나 세금 감면 경정, 징수는 각 지방국세청들의 영역이다.
하지만 실권자가 차장으로 가면 그 위상은 급격히 달라진다. 국세청 차장이 무언가를 결정할 힘이 있다면 대외행사에 나가는 행보마다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경제인 등 외부인들이 늘어나게 된다. 국세청 차장은 국세청 안 살림을 관장하기에 인사과정에도 개입할 수 있다.
그저 자리를 데우던 대외행사 자리가 힘과 힘이 거래되는 권력의 장으로 바뀐다.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수, 국세청 원천세 계장, 중부청 조사 계장, 서울청 조사2국 과장, 국세청 세정홍보과장 등.
비록 김창기 국세청장이 국세청 조사국이 길러낸 인재는 아니지만, 정권의 지지 하에 그의 위치는 공고하다. 국세청 차장은 차기에 도전하는 실권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정석 부산청장, 김태호 대구청장, 송바우 국세청 징세송무국장, 김진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등 행시 38회들은 공석이 확실한 중부지방국세청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밀려나는 사람이 국세청 차장 등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나마 김진호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이 부정적이지 않은 태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세무대 3기 출신의 비고시라는 것이 발목을 잡는다.
노정석 부산청장이 국세청 차장으로 이동하면 중부지방국세청장, 부산지방국세청장 등 1급지 지방국세청장 두 곳의 숨통이 열리게 되고, 김태호 대구지방국세청장, 김동일 국세청 조사국장, 김진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등 1급 승진 내지 지방청장 진출이 필요한 인물들에게 숨통이 틔이게 된다.
송바우 국장이 국세청 차장에 갈 경우 노정석 부산청장이 현 위치를 고수하거나 중부청장으로 올라가게 되기에 나머지 1급 승진 TO는 하나만 나오게 된다. 그러면 김태호, 김동일, 김진현 세 인물의 앞 길이 한 차례 늦어지거나 막히게 된다.
김태호 대구청장이 차장이 되면 중부지방국세청 또는 부산지방국세청 등 1급지 지방국세청장, 2급지 대구지방국세청장 각각 한 자리씩 나오게 된다.
중요한 점은 국세청 차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부산지방국세청장이 누가 되건, 이들은 모두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이며, 같은 배라도 1등석와 2등석은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국세청 차장은 대단한 자리에요. 가고 싶은 사람은 못 가고, 가기 싫은 사람보고는 가라고 하고, 그러니까 대단한 자리죠.” (국세청 현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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