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상습 음주운전‧중대음주 사망사고 차량을 빼앗겠다는 정부 지침에 법원이 제동에 나섰다.
지침 만들었으니 법원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 것인데 법원이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26일 채널A가 보도한 단독기사 [검경 “상습 음주차 압수”에 법원이 제동]에 따르면, 경찰이 음주운전 차량을 압수‧몰수하겠다고 영장을 법원에 넣었는데 서울과 부산 쪽에서 거부했다.
‘음주운전 차량을 압수, 몰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다’며 ‘압수할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다.
‘음주차를 왜 못 빼앗는데?’ 싶겠지만, 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압수와 몰수는 잠시 뺏는 거냐, 아예 뺏는 거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범행 흉기, 뇌물, 마약, 범죄수익처럼 ‘범행의 결과물이거나 범행 도구’를 말한다.
형법 48조 몰수는 형벌에 해당하는데 ‘범행의 결과물이거나 범행 도구’인 경우 긴급히 나라가 빼앗아야 할 경우에만 할 수 있다.
검경의 논리는 음주운전은 범행이고, 차가 범행에 쓰였으니 뺏을 수 있다고 본 듯하다.
6월 28일 새로 만든 지침은 아래와 같다.
5년 내 음주운전 2회 이상 전력자의 음주운전 중상해 사고
5년 내 음주운전 3회 이상 전력자의 음주운전
기타 피해 정도와 재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차량의 압수・몰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음주운전 근절을 위한 검·경 합동 대책’)
음주차량이 ‘범행의 결과물이거나 범행 도구’이라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오직 음주운전을 위해 차를 샀거나, 도로를 질주하며 사람 치고 자동차 치고, 3차, 4차 계속해서 치고 치는 일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법원에서 통상의 경우는 압수‧몰수 안 한다고 한 것은
무수한 음주운전 사건 가운데 몰수까지 필요한 사건은 드물고,
경찰이 제시한 사례도 그런 특이 사건이 아니다란 뜻으로 풀이된다.
음주운전은 차가 있으니까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되면 차를 사는 사람들은 잠재적 음주운전자로 몰아가는 꼴이 된다.
차량 몰수가 음주운전 예방효과를 가진 것도 아니다. 모 연예인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박탈된 상태에서 또 음주운전을 했다.
비례성?
정부 사건사고 사례집을 보면 관용차 음주운전도 있다. 그 관용차, 안 뺏었다.
부모를 봉양하며 어렵게 사는 운전수의 생계형 화물차, 월 100억 버는 사업가의 법인 외제차. 이 경우 음주운전 몰수는 어떻게 될까. 외제차는 남의 차니 풀어주고 화물차는 자차니 집어넣어야 하나?
5년 간 3회를 범행했는데 첫 번째가 자가용, 두 번째가 관용차, 세 번째가 법인차라고 해보자. 어느 차를 몰수해야 할까. 첫 번째 자가용? 아니면 맨 마지막 범행인 법인차? 아니면 전부 다?
차량몰수에 따른 유일한 효과는 형벌로 보인다.
그런데 도로교통법,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도 5년 내 음주운전 3회 했다고 몰수형에 처하라는 법은 없다. 형벌은 확정판결에 의해서만 부과되며, 몰수는 아주 긴급성이 인정돼야 할 수 있는 조치다(비례성의 원칙, 2012년 대법 판결).
게다가 지침으로는 형벌이 가능하지 않다.
행정지침은 공무원들이 일하는 데 편의상 만든 것이고, 민간인이 이를 어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임의적 몰수가 판사 재량이라는 데 그 재량이란 것도 ‘범행의 결과물이거나 범행 도구’라는 법 체계 테두리 내에서의 판단이지 무제한 재량이 아니다.
그렇다면 말 많은 민식이법은 왜 지침으로 하지 않았나?
형벌은 오로지 국회 동의로 정하는 법률에 따르며 시행령으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대검에서는 말이 되는 걸 법원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대검은 법원에서 밀어낸 사건을 연구해서 이해시킬 방법을 찾겠다고 하고 있다.
다만, 6월 28일 지침 이후 경찰이 몇 건을 압수‧몰수쳤고, 그 중 몇 건이 법원에서 수용됐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많이 영장이 나왔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형벌은 법률에 의해 정한다.
법은 민의로 만들며, 그 민의는 국회의원이 대신한다.
민주주의에서 국회와 사법부 위에 군림하는 것은 없다.
행정부라 하더라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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