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한국세무사회는 “배우 박해일의 건강보험료 납부 논란과 관련해 다수 언론이 보도한 ‘세무사의 실수로 박해일이 아내회사에 등록되었다’는 내용은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발단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시작됐다. 이후 박해일은 ‘아내 회사에 직원으로 등재돼 직장 건강보험을 적용받았고 이로 인해 지난 2012년부터 약 4년간 건강보험료 7490만원을 축소 납부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박해일의 소속사인 HM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사에 공개된 연 소득금액, 재산 보유액 등 개인 정보 역시 모두 사실이 아니고, 건강보험료 납부 금액도 월평균 150만 원으로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 대부분이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수 언론사는 “박해일 측이 ‘세무사의 실수로 이같은 상황이 빚어졌다’고 밝혔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자 HM엔터테인먼트는 “‘세무사의 실수로 박해일이 아내 회사에 실수로 등록됐다’는 등의 언급은 한 적이 없으며 이것이 박해일의 첫 공식 입장 표명임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세무사회는 “박해일 소속사의 이런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조세전문자격사로서의 명예가 실추된 한국세무사회(회장 백운찬) 소속 1만2000여 세무사들의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세무사회는 27일 “앞으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및 연예인 세금탈루 등에서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세무사 실수’ 등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거나 이를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하는 경우 진위여부를 끝까지 밝히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세무사회가 이 같은 방침을 천명한 것은 과거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나 연예인 탈세와 관련된 사건에서 ‘세무사 실수’ ‘세무사 잘못’ 등을 주장하며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세무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박해일 사건과 관련해 세무사들이 더욱 격앙하는 이유는 건강보험 관련 신고가 세무사 본연의 직무도 아니며, 설사 이를 대행하더라도 건강보험 신고 등은 개인 인적사항이 들어가기 때문에 박해일 본인 동의 없이는 아내 회사의 직원으로 등록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다.
세무사가 본인 동의 없이 특정 개인의 인적사항을 획득하거나 임의적으로 사용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박해일의 건강보험료 문제는 세무사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라는 기사가 지난 21일부터 터져 나오자 한국세무사회는 “‘세무사가 동네북이냐’ ‘세무사 명예훼손에 대해 강력 대응하라’ ‘명명백백히 진상을 밝히고 법적 조치를 취하라’는 등 세무사 회원들의 분노성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밝혔다.
박해일 소속사가 26일 부랴부랴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세무사의 실수로 박해일이 아내 회사에 실수로 등록되었다’ 등의 언급은 한 적이 없다”고 우선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세무사들의 이런 심상찮은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속사 대표는 ‘세무사 실수’ 언론 보도와 관련한 한국세무사회의 진상규명 요청에 대해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보도자료의 첫머리에 세무사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는 문구를 넣었다”면서 “세무사를 언급한 기사 등 사실과 다른 언론보도에 대해 모두 삭제요청을 하고 있다”고 했다고 세무사회는 밝혔다.
한국세무사회, 왜 강력대응 천명했나
국내 최고의 조세전문가단체를 자처하는 한국세무사회와 소속 1만2000여 세무사 회원들이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고, 강력한 법적 대응을 표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각종 인사청문회와 연예인 탈세 관련 사건에서 걸핏하면 자신의 잘못을 세무사 탓으로 돌리면서 세무사의 명예가 크게 훼손됐는데, 이제부터는 그러한 구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확고함의 표현이다.
세무사업계는 이번 사건 외에도 이모 전 헌법재판관(2005년), 이모 전 대법원장(2007년), 김모 전 외교통상부장관(2010년), 정모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2011년) 등의 인사청문회와 연예인 강호동(2011년), 배우 송혜교(2014년) 등의 세금탈루 사건 때마다 당사자들이 ‘세무사 실수’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졸지에 탈세조력자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은 세무사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세무사회의 강력한 진상규명 작업을 통해 허위 주장임이 밝혀졌다.
김모 전 외교부장관의 경우 2010년 인사청문회 때 주택매매 다운계약서를 세무사가 작성했다고 발언한 데 대해 한국세무사회가 강력히 해명을 요구하자 “본인의 착오였던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세무사회 회원들에게 본의 아니게 우려를 끼쳐 드리게 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정모 전 문체부장관의 경우도 2011년 인사청문회 오전 발언에서 자녀의 이중 소득공제는 ‘세무사의 착오’라고 밝혔으나, 세무사회가 강력 반발하자 오후 속개된 청문회에서는 ‘의원실(본인)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며 당초 주장을 정정하고 사과했다.
연예인의 경우도 세금 탈루를 ‘세무사 잘못’으로 떠넘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구태가 끊이지 않았다.
2011년 연예인 강호동이 세무조사를 통해 수억 원을 추징당해 말썽이 일자 담당 세무사의 ‘세무신고 착오’라고 주장했다.
특히 2014년 배우 송혜교는 3년 간 25억 원이 넘는 세금을 탈루한 것이 드러났을 때 ‘세무사의 업무상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때 세무신고를 한 자격사는 세무사가 아닌 공인회계사로 밝혀졌다. 이 회계사는 송씨의 탈세 문제와 관련해 당시 직무정지 1년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송만영 세무사회 홍보이사는 “‘세금’과 관련된 문제이니 자격사 구분을 못하고 ‘세무사’라고 표현했겠지만, 연예계의 인식 결여가 세무사라는 조세전문자격사의 명예를 한 방에 실추시킨 어이없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며 당시의 허탈감을 표현했다.
백운찬 한국세무사회장은 “앞으로 인사청문회나 연예인 탈세 등과 관련해 납세자 권익보호에 매진하는 세무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거나 허위 주장을 펴는 경우에는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공인은 자신의 문제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