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직접 재산을 넘겨주지 않고 재산이 늘도록 도운 것에 대해서도 증여의 개념을 적용해 과세해야 한다는 정책제언이 나왔다.
부모찬스로 자녀들이 거액의 재산을 늘리면서도 법에 과세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장은 16일 열린 ‘2020 국세행정포럼’에서 “증여에 대한 개별예시규정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세법상 ‘증여’ 개념에 부합하는 경우 증여세 과세의 법적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증여세는 누군가에게 공짜로 받는 재산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2003년 이전에는 법에 증여라고 보는 상황을 규정했다. 그러나 그 상황에 해당하지 않으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에 이내 법망을 농락하는 탈세수법이 등장했다.
실제 재벌기업들 사이에서 자녀에게 직접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소액의 자본금만 주어 회사를 설립하게 해놓고 자녀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거래구조상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십수억에서 시작한 자녀회사가 부모찬스로 수조, 수십조원대 거부가 되는 일이 발생하자 정부는 2003년 해외 증여세 규정을 참고해 완전포괄주의를 조입했다.
완전포괄주의란 거래형태나 형식, 목적에 무관하게 타인의 100% 기여로 이익을 얻었다면 증여라고 간주하고(의제) 증여세를 물리는 것을 말한다.
다만, 무한정으로 증여를 인정하면 과도하게 과세를 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와 유사한 경우에는 증여세 대상이 된다고 참고할만한 예시규정을 만들었다.
세법에서는 명확하게 납세자가 세금을 낼 것이라고 인지되는 경우에만 세금을 물릴 수 있다는 원칙이 있었고, 그렇게 인지할 수 없으면 과세를 인정하지 않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나름 보완한 것이다.
그런데 개별예시규정이 이 경우만 아니면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일정한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지면서 과거 완전포괄주의 도입 이전의 증여세처럼 개별예시규정을 회피한 변칙증여가 횡행하는 일이 재현됐다.
2015년 대법원에서의 판례가 결정적이었는데 내 노력 없이 100% 부모찬스로 거액의 돈을 버는 등 개념상 증여가 맞더라도 그 수법이 개별예시규정 외의 수법이라면 증여세를 물릴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재차 세법이 개정됐다(대법원 2013두13266).
이에 정부가 2015년 세법을 바꾸어 개별예시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수법이라도 경제적 실질상 부모찬스, 친인척 찬스로 거의 무상에 가깝게 거액의 부를 누린 경우 증여세를 물릴 수 있다고 규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법적 분쟁의 테두리에 있다는 것이 박 원장의 분석이다.
박 원장은 이러한 분쟁을 없애기 위해 세법상 증여의 개념에 맞을 경우 과세하는 방안에 대한 법개정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특별한 사유없이 가족이나 친인척이 아닌 완전 타인에 의한 100% 찬스라도 증여라고 보거나 특정 수법을 증여나 증여의 유형으로 규정하지 않고 타인의 의한 재산증가의 사유와 무상의 재산을 취득하게 된 시기를 보고 증여라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박 원장은 경제적 실질, 즉 어떤 수법으로든 무상 또는 내 노력 없이 이익을 얻은 경우 증여 이익으로 볼 수 있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증자, 감자, 저가의 채권을 고가의 주식으로 전환하는 계약을 맺는 등의 수법으로 막대한 주식지분가치 이익을 누리거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녀회사를 회사의 주력계열사와 합병해 우회상장하거나 그룹의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가진 계열사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자녀회사의 가치를 과다하게 산정하거는 등의 수법을 막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녀회사에 대한 신약개발, 특허권, 건물분양사업 시행 등 부모찬스로 막대한 이권을 넘겨받은 경우에도 증여할 수 있도록 재산가지 증가사유와 그 취득시기를 법에 못박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모회사와 자녀회사가 직접 거래하면 일감몰아주기 등의 과세를 적용받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중간에 자문, 컨설팅, 영업대행을 맡는 페이퍼컴퍼니를 끼워넣고 이 회사를 통해 자녀회사가 키우는 것도 완전포괄주의의 테두리에 넣어 과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세청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증여예시규정 등을 명확하게 꾸릴 것을 제안했다.
◇ 규정 함부로 바꾸면 납세자 권칙침해…국세청 역량 키워라
이날 박 원장 제안에 대한 주된 비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규정을 만들고 보완해도 또 회피할 구멍을 만들 것, 또 다른 하나는 국세청이 법을 멋대로 해석해 억울한 납세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규정의 미비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세청의 역량부터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국세청이 빅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등 과세시스템을 고도화 하고 있고, 이를 통해 납세자 거래를 모두 인식하고 분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통해서도 못 걸러내는 것은 과세권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제언했다.
무리하게 과세권을 적용해 납세자에 부담주지 말고, 시스템을 내실있게 운영하라는 취지다.
장운길 세무사회 부회장 전 국세청 세무서장은 완전포괄주의를 확대하면 납세자 다툼 여지를 널려 불복소송이 늘어나고 납세협력 비용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규정을 보완해도 또 법망을 회피하는 사례가 나오고 이를 또 잡기 위해 규정을 바꾸는 술래잡기가 계속 될 것이라는 취지의 우려도 함게 전달했다.
이준봉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 증여재산에 대한 평가방법에 대해 협소한 현행 세법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납세자가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쓸 수 있도록 규정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홍범교 조세재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역시 과세당국이 포괄주의를 적용하면 납세자는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주의로 반박하는 싸움이 새로운 변칙증여 수법이 나올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경덕 매일경제 논설위원은 자본거래나 금융방법이 매우 빨리 변하고 있어 그 때마다 법개정으로 보완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한 발 늦을 수 밖에 없다며 국세청의 내적역량을 키우고 키워진 내적역량을 통해 법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고광효 기재부 소득법인세정책관은 박 원장의 ‘경제적 실질’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학설과 판례를 검토해서 보완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하면서도 과세범위를 너무 확대하면 납세자 반발이 크니 판례와 학설의 추이를 보고 보수적으로 보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먼저 법원과 학계에서 포괄주의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기재부는 그 동향을 보고 조심스럽게 보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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