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대법원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실명 계좌를 빌려준 해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금융실명법 위반 방조 혐의를 받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최근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월 '성명불상자'(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한 통 받았다. 그는 "마카오에서 환전 사업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A씨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고객이 입금한 돈을 인출해 '환전소' 직원에게 전달해주면 되는데, 하루 6시간 일하면 월 400만∼600만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A씨는 일주일 뒤 피해자 B씨로부터 940만원을 송금받은 뒤 수수료 15만원을 뺀 925만원을 넘겼다가 수사당국에 적발돼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금융실명법 위반 방조죄가 성립하려면 A씨가 자신의 계좌를 빌린 성명불상자의 목적이 금융실명법이 규정한 '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성명불상자의 목적이 탈법행위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실명법은 ▲ 불법 재산의 은닉 ▲ 자금세탁 ▲ 공중협박자금 조달행위 ▲ 강제집행 면탈 ▲ 그 밖의 탈법행위가 목적인 경우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번 사건에서 A씨는 성명불상자를 '무등록 환전 영업'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겠지만, 그것을 '그 밖의 탈법행위'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급심은 판단했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대법원은 A씨에게 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일을 제안한 성명불상자가 A씨의 실명 계좌에 보이스피싱 편취금을 숨긴 행위나 무등록 환전 영업 모두 금융실명법상 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하기 위해 타인(A씨 자신)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인식했음에도 이 범행을 돕기 위해 자기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A씨가 정범이 목적으로 삼은 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방조 범죄는 성립한다"고 원심파기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범들이 편취금을 받을 계좌를 구하기 위해 무등록 환전 영업, 도박자금 환전, 조세 포탈 등 명목으로 수수료를 약속, 금융계좌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탈법행위 목적을 인식하면서도 금융계좌 정보를 알려줬다면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