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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일본의 역사 왜곡②

동북아 역사전쟁을 아시나요?

(조세금융신문=전우성 관세사‧역사연구가) 일본 학자들은 사석에서 정직하게 고백한다. “일본이 이만큼 빨리 문명화된 것은 역사를 위조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야만이고 한국에게 지배 받았다고 하면 자부심이 없어지고 기가 죽어 안 되니까 이걸 거꾸로 해석해 용기를 내게 했다.”, “역사를 날조한 것은 한국에게는 큰 피해지만 우린 그것 때문에 빨리 깨고 자부심을 가지고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한국을 점령하여 식민지화한 다음, 이러한 것을 영구화하기 위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한국 국민에게 뿌리박았다. 그런데 해방된 지 74년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주류가 된 강단 사학계는 이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아직도 스스로 왜곡하여 일본의 의도대로 움츠려들며 우리 역사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망친 것도 모자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올바른 주장에는 ‘국수주의’,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주의’, ‘열등감을 해소한 삐뚤어진 우월주의’라고 비학문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중국 사대주의, 일제 식민주의에 의하여 축소 왜곡된 우리 고대 역사를 사실 그대로, 있었던 그대로 펼치자고 하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일본의 대표적 역사 왜곡 ‘임나일본부설’

 

이 같은 일본의 역사왜곡이 우리나라 역사 정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이 설은 그동안 일본이 식민주의 사관에 의하여 주장하다가 최근에는 폐기 상태에 있으나 아직도 그들의 교과서에 사실인양 기술하고 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가설인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고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일본 열도에는 말도 없고(5세기 초에 말 등장), 철기 생산 능력도 없고(6세기 초에 철 생산, 이전에는 한반도 가야에서 중간 원재료인 철정 수입), 대규모 선박 제조 능력도 없이 소규모 국가 형태에 겨우 접어든 시기(6세기 초에 들어서야 통일국가 성립, 이전에는 한반도 도래인에 의한 분국형태)였기 때문에 막강한 한반도 남부를 AD 4세기경부터 200여년 동안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분명한데도 그들의 역사 왜곡 전통에 의하여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한반도는 이미 한참 이전에 신석기 시대(BC 60세기~BC 30세기)를 지나고 청동기 시대(BC 30세기~BC 3세기)도 지나서 막강한 철기 무기를 가지고 기마 군사력에 의하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 4국이 이미 태동한 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중국 국가와 치열한 쟁패를 벌이는 등 막강한 국력으로 경쟁하던 시기이므로 있을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한반도 남부에서 200여 년 동안 지배를 한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한반도 남부 가야의 높은 문화 문물이 미개한 일본 열도로 전해 갔다는 증거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일본 열도에는 고대사 시기의 각종 유적·유물이 온통 한반도의 것 그것도 단지 문화 전파가 아닌 사람이 직접 한반도에서 건너가서 살다가 죽어야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대량 발견되고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각종 한반도 계열의 무덤과 그 무덤에서 나온 한반도 계열의 부장품인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나온 인골을 DNA 분석한 결과 현재 일본 타 지역보다 한반도 남부의 사람과 제일 유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아 다른 증거물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반도인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다.

 

문명 발전 단계와 국가 발전 단계 그리고 전투력 발전 단계로 보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의 허구의 역사 왜곡이 이 ‘임나일본부설’인 것이다. 당시 일본 열도의 왜(일본 국호는 백제의 멸망 후 사용)의 발전 단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일본 열도의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열도는 미개한 구석기 문화인 ‘죠몽 문화’를 영위하고 있다가 BC 3세기경부터 AD 3세기경까지 신석기 시대인 ‘야요이 문화’를 일으켰다. 그제서야 제대로 된 토기를 만들고 한반도식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그것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이후 AD 3세기경부터 AD 5세기경까지 일본열도에 갑자기 커다란 고분이 조성되고 신장이 큰 사람이 등장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를 ‘고분 시대’라고 한다. 이 고분에서 나온 유골의 유전자 분석 결과 한반도 남부인과 제일 일치한다. 이 고분에서 나온 유물이 거의 한반도의 것으로 특히 가야나 백제의 것이 많다.

 

당시에 고대 국가 성립은 겨우 이루어졌으나 아직은 통일 국가가 성립되지 못하고 여러 분국 형태이다. 그 분국도 한반도의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세력에 의한 분국으로써 이 또한 절대적인 한반도에서의 사국 영향이다. 이때 한반도 남부에 진출하여 지배하였다고 하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들의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교묘하게 학설로 교묘하게 위장하여 나타내어 지도상에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임나’를 표기함으로써 누가 보더라도 일본이 한반도 남부인 임나를 지배하였다는 사실로 인식하게끔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치미는 일이 있다. 그것은 이 폐기된 역사왜곡 사실이 오히려 최근 들어 한국 학자들에게서 변칙적으로 이를 주창하거나 옹호하는 학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 진출설의 증거는 전방후원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게 있다. 이러한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한다며 그동안 일본학자들이 주장해왔던 대표적인 유적이 바로 ‘전방후원분’이다. 이것은 일본 고유의 규모가 큰 묘제인데 한반도에서는 이보다 늦은 시기에 작게 나타나 그동안 한국 학자들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였다.

 

일본은 전방후원분의 기원이 자신들이며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을 두고 일본 열도 세력이 한반도 남부에 진출한 증거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있는 전방후원분의 위치, 목적 등을 살펴보았더니 오히려 한반도 국가가 식민지로 거느렸던 일본 열도 무장 세력을 용병으로 쓰기 위하여 데려왔던 세력의 무덤이며, 그 기원은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주구묘 및 장고형 무덤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였다.

 

‘전방후원’, 즉 앞은 사방형이요 뒤는 원형으로 만든 것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뚜렷한 답을 내놓을 만한 유물, 유적이 없었던 차에 고조선의 근원지인 중국 지방에서 ‘홍산문명’이 발견되었다. 이 문명에서의 원형(圓形) 제단과 방형(方形) 적석총 유적이 동방의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즉 원형의 제단과 방형의 무덤(적석총)]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본 필자가 최초로 주장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사상과 방식에 의하여 ‘홍산문명’에서 기원하여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서 크게 성행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중국 민족이나 문화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 민족은 고조선-부여-고구려(집안 지방 1만여 적석총)/백제(석촌동 고분 적석총-일제 강점 시대까지 90여기 존재)/신라/가야(4국시대)를 거쳐 일본에 까지 계승되어 나타나는 한민족 전통 내지는 한반도 세력의 일본 진출의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일본에서의 전방후원분에서 그동안 발굴된 유물은 전부 한반도의 유물로써 특히 백제가 직접 식민지인 분국으로 다스렸다는 증거물이 다량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는 유적으로 내놓은 ‘전방후원분’은 오히려 한반도 국가인 백제가 왜를 식민지인 분국으로 통치하였다는 역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은 임진왜란과 한일 병탐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고 여기서 출발한 한반도 식민지화의 합리화설인 식민주의 사관은 아직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상계를 지배하여 교과서 왜곡, 태평양 전쟁 발발 책임 및 피해 부인,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의 현실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우리나라 사학계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 연재 글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로필] 전우성 관세사‧역사연구가

• 케이앤제이 관세사무소 대표 관세사
• 전) 관세청 근무
•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감사행정학과 석사
•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 저서
<다시 쓴 한국 고대사(2015, 매일경제신문사)>

<한국 고대사 다시 쓰여져야 한다(1998, 을지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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