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완규 논설위원) 중국 송나라 때 신법을 만들어 개혁정치를 펼쳤던 정치가 왕안석(王安石)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학문과 문장이 당대의 으뜸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타고난 천재성 덕분이라는 설도 있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전언도 있다.
어려서부터 한번 읽은 서책을 잊어먹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걸 보면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았던 것같고, 평생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면학으로 성공한 사례라 여겨진다. '상중영(傷仲永-중영이란 사람의 경우를 슬퍼함)'이란 제하의 글에서 그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중요성을 회화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방중영이란 신동이 있었는데 다섯 살 나이에 훌륭한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변에서 잘 가르쳐 다듬으면 큰 재목이 될 것이라고 공부시키기를 권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다. 선비들이 모인 곳이나 고관 집을 찾아다니며 아들의 비상한 재주를 보여주고 푼돈을 챙겼다.
요즘으로 치면 여기저기 방송에 내보내 '천재 쇼'를 벌이고 출연료, 광고료를 받는 데만 재미를 붙인 것이다. 하지만 중영의 나이 스무 살이 되자 밑천이 바닥나 보통 청년이 되고 말았다. 그 글 말미에 왕안석은 이런 촌평을 붙였다. "천재도 공부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이 되고, 보통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보통 이하가 된다."
세무와 회계, 그리고 증권과 은행 등 금융 분야를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조세금융신문’의 김종상 발행인이 내게 논설위원을 맡아달라 요청해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방 일간지의 사설과 칼럼 외주가 줄어든 데다, 마침 한 기업의 의뢰를 받고 집필한 책이 탈고를 마친 터라 가볍게 허(許)하긴 했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니 이거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지난 1986년 언론에 몸담은 이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부문을 두루 섭렵했다 자임하건만 솔직히 경제 분야를 취급한 건 거시경제 쪽에 치우쳐 조세나 금융같이 특화된 미시(微視) 분야는 거의 범접하지 못한 채, 지식 또한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한 탓에 시사에 국한된 내 춘추필법(春秋筆法)과 당장에 부합될 까닭이 없음에야.
시쳇말로 “어느 분야든 글 빨로 다 죽인다”는 세간의 평판에 짐짓 우월감에 빠져 살다 이제사 임자 만난 격이려니, 애써 찾은 글감도 지식이 동반되지 않으니 도무지 글 빨이 안 생긴다. 아, 하 순간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해야 하겠거늘 이순을 넘기는 동안 술·담배와 찌든 습성들로 어지럽혀진 탓에, 기억력조차 감퇴된 지라 복잡한 머리 속이 하얘져 가는 느낌이다.
천재도 못 되는 주제에 본분과 책무를 망각하고 책 읽기를 게을리 했으니, 왕 대가의 말대로라면 이미 보통 사람 이하가 됐을 진대, 누구를 가르치고 솔선해 계도·계몽하겠다고 필봉을 드는가 싶다만,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는 세상에선 왕안석의 다음과 같은 권학문이 위안이 되려나.
"공부하는 데는 큰 돈이 들지 않고, 공부하면 만 배의 이익이 생긴다(讀書不破費 讀書萬倍利)."
허나, 만 배의 이득보다도 우리 사회가 올곧게 바로 서고,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도록 솔선계도 하는 일이 내겐 성취에 다름 아닐지니 “나눔에는 큰 돈이 들지 않고, 나누면 만배의 행복이 생긴다(分配不破費 分配萬倍福).“란 새로운 기조로 알량한 재능기부에 더해 절차탁마(切磋琢磨) 하는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퍼트려 볼 참이다.
기왕지사 논설위원이 된 마당에 한바탕 글춤을 춰 볼 요량이건만 혼자 춤을 추는 것은 사양한다. 얼씨구 반칙과 부정을 일소하고 절씨구 항구적 정정당당을 열어가는 춤사위 아니, 필(筆)사위를 맞춰줄 장단꾼이 많았으면 좋겠다. 정직한 사회로의 회귀를 기대하는 조세금융신문의 모든 독자들이 질정(叱正)에 동참해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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