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직면한 우리 기업들 역시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주요 그룹 총수일가의 3세, 4세가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에 오르며 이들이 점찍은 주력 사업에도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조세금융신문은 경영환경 변화와 세대교체 기로에 선 국내 주요그룹사들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획물 '주요 그룹 미래사업 분석' 을 매월연재한다. [편집자주]
(조세금융신문=이한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와 인공지능(AI),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부품 등을 점찍고 관련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 와병으로 경영활동이 어려운 이건희(77) 회장을 대신해 총수 역할을 하며 미래먹거리 육성에 나서고 있는 것.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으로 이 부회장을 지정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린 ‘반도체’의 뒤를 이을 미래먹거리로 바이오 사업을 점찍었다.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바이오를 ‘제2반도체’로 키우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반도체로 세계 1위 기업을 만들었다면, 이 부회장은 새로운 삼성의 비전을 제시하고 리더십 구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2001년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 1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18년간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은 반도체 뒤를 이을 미래먹거리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8월 5일 기준 올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삼성 계열사 12곳의 영업이익은 32조6204억원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1%(23조16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2010년 삼성서울병원 지하 실험실에서 12명으로 바이오 사업을 시작해 현재 2800여명의 임직원이 송도 캠퍼스에서 바이오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이 회장은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하나로 바이오제약을 지목하며 같은해 4월 인천 송도 매립지 위에 위탁생산(CMO)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이듬해 2월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며 바이오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유럽에서 베네팔리·플릭사비·온트루잔트 등을 출시했으며, 10월 임랄디(휴미라 바이오시밀러)를 내놓으며 총 4종의 바이오시밀러를 시판하게 된다. 신약 부문에서는 일본 다케다 제약(Takeda)과 공동으로 급성 췌장염 치료제 ‘프로젝트명: SB26, TAK-671’의 임상 1상 시험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 CMO사업(의약품 위탁생산) 등에 집중 투자해 육성할 방침”이라며 “바이오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고령화와 만성난치질환 증가 등 사회적 니즈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AI·전장 부품’ 사업 주목
바이오와 함께 이 부회장이 신경쓰는 분야는 AI와 전장 부품 등의 사업이다.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 5차례에 걸친 해외 출장마다 빼놓치 않고 챙기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유럽과 캐나다 등을 찾아 AI 업계 동향을 살폈으며 이후 삼성전자가 프랑스 파리에 AI 센터 개소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한국과 미국·영국·캐나다·러시아 등 총 5개 지역에 AI 연구센터를 구축했으며, 향후 한국 AI 총괄센터를 주축으로 글로벌 AI 연구 역량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를 활용할 경우 삼성전자가 제공하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인간에 가까운 인터페이스를 구축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며 “2020년까지 자사 모든 스마트기기에 AI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올해 선보인 ‘갤럭시S9’과 ‘갤럭시노트9’에도 지능형 인터페이스 ‘빅스비’를 탑재했으며 TV와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 제품에도 음성인식기능을 채택해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주목하는 AI 서비스는 향후 높은 성장세가 예상되는 시장이다.
전세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장(전무)은 6월 싱가포르에서 기관투자자·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열린 ‘삼성전자 2018 인베스터즈 포럼’에서 “AI 서비스 매출액 규모가 2025년 2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부회장은 석방 후 해외출장길에서 중국 비야디(BYD), 일본 야자키 등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며 AI뿐 아니라 전장 부품 사업에도 주목했다.
BYD는 세계 1위 전기자동차 업체로 배터리도 제조하고 있으며 야자키는 자동차용 전원·전방표시장치(HUD) 등 전장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다. 이 부회장은 BYD, 야자키 등 전장 사업과 신사업 분야 등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15년 12월 자동차 전장사업을 신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전사조직에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디스플레이 기술을 자동차에 확대 적용해 자율주행 등 미래 전장부품 기술을 주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17년 3월 11일 미국의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 인수를 완료하며 전장사업을 본격화에 나섰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 규모는 2020년 3033억달러(338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2025년까지 하만과 함께 커넥티드카·자율주행 분야에서 업계 리더가 된다는 목표다.
'신수종사업' 8년만에 수정
삼성은 최근 이 부회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AI와 바이오, 전장 부품과 함께 5G를 4대 미래 성장사업으로 공표했다.
5G 인프라는 자율주행과 IoT, 로봇, 스마트시티 등 신산업 발현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계기로 칩셋·단말·장비 등 전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주도해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KT 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5G 상용화 시 2025년 이후 경제적 파급 효과가 연간 30조원 이상으로 전망된다.
삼성이 발표한 4대 미래 성장사업은 2010년 이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 이후 8년 만에 제시한 미래먹거리다. 앞서 2010년 5월 이 회장은 5대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제약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등을 미래먹거리로 제시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경영 색을 나타내지 않았던 이 부회장이 경영 방향성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은 ‘AI·바이오·전장부품·5G’ 등 핵심 4대 미래 성장사업에 향후 3년간 총 25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집중됐던 투자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를 포함해 설비와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 등에 180조원을 투자하며 이 가운데 130조원은 국내에 투자할 예정이다. 다만 사업 부문별 구체적인 투자 시기와 규모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향후 4차산업혁명 중심이 되는 사업에 투자하며 미래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국내 혁신 생태계 조성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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