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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③> 국경 뛰어넘는 첨단관세조사

해외 선물시장서 찾아낸 제조사의 정체는?... 명확한 품목분류 통해 수백억 징수


징세행정이 작동하지 않는 나라는 망하게 된다. 아무리 잘 만든 세법이어도 납세자들은 항상 빈틈을 찾아냈으며, 그 빈틈을 막지 못한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었다. 세법 집행기관의 책무는 어제의 일을 오늘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가 발견하지 못한 빈틈을 찾아내 이를 개선하고, 변화시켜, 나라를 계속 살아 숨 쉬게 하는 데 있다.
<본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자발적인 판단과 노력으로 우리나라 조세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무원들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석유제품으로 둔갑한 원유 찾아내다
동일한 물품을 수입한 기업 중 한 기업만 ‘세 번’이 달랐다. 세 번이란 관세법령상 분류된 상품번호로 세 번에 따라 관세율이 달리 적용되기에 품목을 조작해 다른 세 번을 받음으로써 관세회피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세 번은 관세행정관들이 가장 엄격하게 확인하는 항목이었지만, 얀양세관의 임덕재 관세행정관과 그 동료들이 담당한 사건은 노련한 관세행정관들조차도 고전하게 만들 법한 사건이었다. 천연가스로부터 생산되는 액체상의 탄화수소 성분은 콘덴세이트로 통칭 그 생산방법에 따라 관세법상 원유 또는 석유제품으로 구분되는 물품이다.


액체상의 탄화수소 성분은 지하에 저장되어 있을 때는 가스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을 추출되는 과정 등에서 압력과 온도가 떨어지면 액화된다.


탄화수소 성분은 자연상태에서 기체, 즉 가스가 되면 부탄이라고 불린다. 부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둘과 혼합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석유를 사용해 정제하며, 이 과정에서 프로판도 함께 생산된다.
만일 압력과 온도 저하로 액체가 된다면 펜탄인데, 펜탄은 주로 부탄보다 무거운 탄화수소 성분인 펜탄, 헥산 등이 주요 성분으로 구성된다. 펜탄은 석유화학공장에서 원료로 사용되는, 나프타 분해 시 나오는 부산물 중 하나다.


이러한 탄화수소 성분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무색투명하다. 유정으로부터 생산되는 끈적끈적하고 시커먼 모습의 원유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 외형상으로는 생산방법에 따른 차이를 확인할 수 없고, 심지어는 석유제품인 나프타와도 구별이 곤란한 물품이다.


이처럼 외형상 구분이 되지 않는 점, 해외 생산공정 확인이 어려운 점 등을 악용하면, 이를 수입하는 기업이 관세율을 낮게 적용받기 위해 원유로 분류해야 할 물품을 석유제품으로 수입신고할 개연성이 높았다. 임 관세행정관은 이에 착안해 수입현황을 분석했고, 그 결과 A업체에서 천연 가스로부터 생산되는 액체상의 탄화수소 성분을 석유제품으로 신고한다는 혐의를 발견했다. 그리고 즉각 관세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A업체는 관세법상 원유와 석유제품의 구분기준인 생산방법에 따라 수입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석유제품 중 경질유와 중질유의 구분기준에 따라 수입신고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 해당 수입물품의 대부분이 이란,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등에서 생산됐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은 생산 공정 확인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았다.


외형식별도 불가능하고, 생산공정 확인도 어렵다면, 무언가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 결과 도출한 답은 ‘거래’였다. 해당 제품이 특정기업에만 독점공급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도 팔 테고, 팔려면 파는 상품이 무엇인지 그 정보를 구매자에게 줄 수밖에 없다.


답은 해외 선물거래시장에 있었다. 임 관세행정관과 동료들은 선물거래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살펴 A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제조사에 대한 정보획득을 시도했다.


그 결과 조사를 통한 물품별 성분차이, 생산자 생산시설에 대한 자료 수집 등을 통해 해당 수입물품의 생산시설에는 석유제품에 해당하는 물품을 생산할 생산시설이 없거나 생산 시설이 있더라도 석유제품에 해당하는 물품은 당해 수입물품과는 그 성분조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A업체가 수입한 물품은 석유제품이 아닌 원유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다음 작업은 명확한 품목분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임 관세행정관과 동료들은 천연가스로부터 생산되는 액체상의 탄화수소 성분 중 지상에서 온도와 압력의 하강에 따라 자연스럽게 액체가 되는 물품은 원유로 분류돼야 하고 지상에서 가스 상태로 존재하는 천연가스로부터 메탄, 에탄, 프로판, 부탄 등 가스 등을 정제하고 남은 액체상의 탄화수소 성분만이 석유제품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A업체에게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석유제품에서 원유로 드러남에 따라 관세청은 A업체로부터 무려 324억원을 추징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품목이 명확해짐으로써 올바른 세율을 매길 수 있었고, 그 덕택에 연간 약 100억원 상당의 세수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사례는 재정수입 확보뿐 아니라 셰일 가스 개발 등 천연가스 시장 확대 전망에 따라 향후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명확한 분류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부는 이러한 업무성과에 대하여 안양세관 통관지원과 임덕재 6급 관세행정관과 관세평가분류원 이영래 5급 행정사무관, 관세청 박종호 6급 관세행정관, 서울세관 노근홍 6급 관세행정관, 서울세관 곽형준 6급 관세행정관, 서울세관 김남국 7급 관세행정관에게 300만원의 예산성과금을 지급했다.


제3자 거래 위장한 저가신고 탈루업체
이제 거대 제조업체들은 자체 생산하는 물량이 그리 많지 않다. 하청, 아웃소싱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업은 본사가 기획에서 제품생산 및 판매를 모두 담당했다. 그러나 시장경쟁이 치열해지자 본사는 핵심기능만 수행하고 관계사 또는 제3자가 생산 및 물류관리를 담당하는 구조로 달라졌다.


실제 주요 활동은 본사에서 수행하나, 생산은 제3자에게 하청하는 식이다. 수출자인 하청생산자는 자신이 무상으로 제공받은 디자인과 패턴에 대한 비용은 알 수도 없고 자신이 수행한 활동이 아니므로 제조원가와 이에 따른 자신의 이윤만을 청구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내 수입자는 하청생산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면서 대금청구서상 금액으로 수입신고하는 거래가 나타났다. 과세당국에선 과거 본사가 모두 활동을 수행할 당시에는 포함되었던 물품의 제작·기획, 디자인, 제품개발 단계에서 발생한 비용이 거래형태의 변경을 이유로 수입신고금액에서 누락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본사는 디자인과 제품개발 활동을 포함하는 기획과 관리비용을 본사 비용으로만 처리하는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해답은 경영지원서비스 대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본사는 국내자회사에 각종 경영지원서비스계약을 체결하고 서비스제공 대가를 명목으로 막대한 금액을 자회사에 청구한다. 자회사는 본사 또는 관계사로 이를 송금하며 국내 자회사는 낮은 수입가격을 통해 국내에서 보다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결국 본사는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 이윤을 챙기고 국내자회사는 기획, 디자인, 제품개발 비용을 제외한 제조원가와 관련된 낮은 가격으로 신고하고 이익을 확보하게 된다. 그럴수록 수입국의 조세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과세당국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우선, 국내거래와 달리 거래상대방이 모두 외국에 존재하므로 이러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확보가 곤란하다. 또 자료 제출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수입자들도 해외소재를 핑계로 과세 당국에 비협조적으로 대했다.


곽형준 관세행정관과 동료들이 조사를 시작한 후 계약서, 대금청구서, 거래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은 그간의 여느 조사와 차이가 없었다. 일부 자료를 검토한 결과 본사의 역할과 해외 관계사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료만으로 해외에 소재한 하청생산자를 판매자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2% 부족했다. 또 다른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엔 직접 하청생산자를 통제하고 품질관리 및 업무대행을 담당하는 해외 관계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통상 해외 방문조사는 교역당사국과의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조사 시 활용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경우 본사와 관계사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한 덕분에 해외 조사가 가능했다. 홍콩에 소재한 관계사를 방문하여 관계사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어떻게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지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 덕분에 곽 관세행정관과 동료들은 그동안 추측에 의존했던 거래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제품 기획과 디자인만이 아닌 거래가격의 최종 승인 및 거래처관리, 품질 및 납기 관리를 모두 본사가 통제하고 있고 홍콩에 소재한 관계사는 중국의 하청생산자를 직접 관리하며 상호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하청생산자와의 실질적인 계약은 본사가 체결했으며, 홍콩에 소재한 관계사는 본사의 가이드와 상이한 것은 모두 본사의 승인 또는 확인을 받고 있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해외 소재 관계사 방문을 통해 자료를 확보한 뒤 관세청은 추징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회사는 하청생산자가 발행한 대금청구서와 대금지급증빙 등을 제시하고 이와 같은 거래방식은 업계의 관행이라 주장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관행은 세금탈루의 면죄부가 될 수 없었다. 곽 관세 행정관과 동료들은 원칙과 규정에 따라 추가 자료를 확인해 갔고 수만 개의 모델의 세액 계산을 위한 수백만 건의 각종 데이터를 분석했다. 수백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전산전문가의 도움을 얻었고 마침내 약 400억원의 세액을 징수 했다. 이 사건의 교훈은 해외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과세자료로 활용해 거래상대방이 외국에 존재하여 확인하지 못해왔던 자료를 입수, 다국적기업 조사의 새로운 조사 방법을 구축한 사례였다.


특히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은 제3자에게 위탁하고 이를 핑계로 외국 하청생산자의 제조비용과 제조이윤만을 신고하는 유사한 기업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도 크다. 관세청은 향후 금번 조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관세청 전체에 공유함으로써 다른 기업의 조사에 활용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러한 성과는 올바른 신고 문화 정착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정부는 서울세관 곽형준 6급 관세행정관, 서울세관 신윤일 4급 행정서기관, 서울세관 노근홍 6급 관세행정관, 관세청 선영임 6급 관세행정관, 서울세관 김남국 7급 관세행정관, 서울 세관 윤우식 8급 관세행정관, 서울세관 전세영 9급 관세행정관에 대해 300만원의 예산성과금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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