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대한민국이 지구촌 전체에서 ‘초격차’로 앞선 저출생 패권국이 된 것은 주로 인간 노동에 대한 무례한 태도 때문이다. 경제학적 생산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 중 유독 노동에 대해 무례했다.
독보적 저출생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은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저출생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저출생 극복책에 부심하고 있다. 국토균형개발과 일자리 지원,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금융・세금 지원 등 전방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간 일련의 정책들의 빈도와 강도가 집중되지 못한 점 때문에 수백조의 저출생 예산에도 출생률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본 분석이다. 숲을 보면 더 큰 문제가 뚜렷이 실제를 드러낸다.
최근 건설 대기업 부영그룹이 자녀를 낳은 임직원에게 축하금으로 1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돈에 대해 전액 비과세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차제에 근로자 본인이나 배우자가 자녀 출산 2년 이내에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급여에 대해 전액 비과세 내용을 2024년 세법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혼인신고를 한 부부에게 최대 100만 원을 세액공제하는 '결혼세액공제'도 신설하고, 자녀 있는 가구의 양육비 부담을 덜어주려고 자녀세액공제 금액을 지금보다 각 10만원씩 확대하기로 했다.
앞서 기자는 1억원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출생축하금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면 축하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근로소득자들이 줄어든 세금을 메워야 할 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 결혼과 자녀출생이 소득과 꽤 밀접하기 때문에, 출생률 친화적 세금제도를 꾀할 때 반드시 이런 내용의 ‘수직적 형평성’ 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비록 ‘저출생 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하는 현실에 맞닥뜨려 황급히 마련한 출산 지원 정책이지만, ‘만시지탄’이다. 국가가 결혼과 자녀출생에 대해 파격적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분명 옳은 방향이다. 다만 좀 더 근본적으로, 저출생 사회를 초래한 대한민국을 톺아 봐야 한다.
한국은 생산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 중 유독 노동에 대해 무례했다. 이를 세금이라는 얼개를 통해 짚어 본다. 조만간 전문가들이 정확히 따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제로 한 비전문가의 시론이다.
먼저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자녀세액공제 추가했음에도, 기본공제 측면에서 노동에 대한 보수(근로소득)는 토지나 자본에 견줘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왔는지 의문이다. 근로소득 과세는 총급여에서 꽤 복잡하게 계산한 근로소득공제와 인적공제, 추가공제, 특별공제 등을 거쳐 몇몇 세액공제까지 적용, 산출세액과 결정세액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공정한 세금 부담을 위해 ‘최저생계비에 대한 과세를 피하고’ ‘실현된 소득’에, 특히 ‘지불능력에 따라’ 과세한다는 취지의 ‘응능부담의 원칙’이 엄밀하게 적용된 느낌이다. 순자산 증가를 위해 사용된 비용을 왠만하면 비용으로 인정하는 법인세보다 사뭇 혹독한 느낌이다.
생산요소 투자에 대한 세금 혜택도 차별적이다. 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투자세액공제 혜택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주어진다. 첨단산업, 신성장동력산업, 진화된 생산설비 등에 투자한 돈의 일정비율을 세금에서 깎아준다. 파격적이다. 신규 또는 장기 고용, 임금증가 관련 세금혜택도 있지만, 주로 자본에 대한 예우다. 고용 유인이 된다는 점 외에 딱히 노동에 대한 예우 개념이 아니다. 게다가 땜질식으로 진화된 세법으로, 정교하지도 않다.
근로소득에서 투자세액공제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게 고작 교육비 정도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도 투자지출 개념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제한적이다. 고소득층이나 감행할 수 있는 벤처투자 소득공제는 일반 월급쟁이에게는 용어조차 생소하다. 보험이나 의료 관련 지출은 사고나 재난을 예방하거나 재난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비용에 불과한데, 법인처럼 비교적 제한없이 비용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생산요소 사용의 기간에 따른 세제혜택도 노동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주택을 사서 오랜기간 보유하다가 팔면 장기보유특별공제라는 세금 혜택이 있다. 투기하지 않고 주거목적으로 주택을 거래, 사용한 납세자에게 주는 혜택이다.
토지(지대)에 대한 이런 예우와 달리 인간 노동에 대해서는 오랜기간 같은 직종에 근무한 숙련공을 위한 세금 혜택이 딱히 없다. 높아진 노동생산성에 대한 높은 임금을 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 역시 시장에 맡겨져 있다. 특정 노동의 수급 상황에 따라 기대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토지에 대한 태도와 달리, 국가는 숙련노동(장기보유)에 특별히(특별) ‘제도적으로’ 예우(공제)하지 않는 셈이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자 토지(지대)에 대한 과세,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를 완화하자는 여론이 비등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각종 부동산 보유세와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를 파격적으로 줄이는 세제개편이 모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집권기 자산(주로 부동산) 가격 급등을 불러 현재 저출생 사회의 고착화에 기여한 원죄를 의식, 전면 반대를 못한다. 자본시장을 걱정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자는 소리가 여야를 초월해 공공연히 나온다.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수도권 인구집중도 결국 한국사회가 토지(지대)에 대해 과잉 예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질주하는 저출생 추세를 잡겠다고 수백조원을 썼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다른 건설사업 예산을 저출생예산에 욱여 넣는 수법도 적발됐다.
정치인들과 공직사회, 언론은 현실을 똑바로 마주보지 못했다. 아니 마주보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수도권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이 월세 등의 주거비를 감당 못해 결혼과 자녀출산 엄두를 못내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지대소득자들은 대한민국의 확고한 예우 대상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들이 깔고 앉은 수도권 부동산은 언제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보호대상이다. 금융투자소득자들이 결코 안정적 다수가 되지 못하는 낙후된 금융환경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토지(지대)는 ‘전무후무’한 자산(자산소득, 무산자의 생계비)이다.
한편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저출생대응부처 신설까지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토지(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와 자본(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세금 완화를 서두른다. 노동자(근로소득자)에 대해서는 자녀당 연간 ‘무려’ 10만원의 자녀세액공제를, 혼인신고 노동자에게 ‘무려’ 최대 100만 원을 세액공제를 해준단다. 노동에 대한 ‘비루한’ 예우는 근로대중을 끊임없이 구차하게 만든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금제도상 토지나 자본에 견줘 노동을 덜 예우하는 나라는 많다. 소위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가 남아있는 나라들도 개발과 성장을 위해 토지와 자본에 더 큰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이 지구촌 전체를 통틀어 초격차로 앞선 저출생 패권국이 됐을까. 뭔가 색다른 요인이 있었을 것 아닌가. 인간 노동에 대해 유독, 지구촌 국가 중 가장 극심한 ‘무례함’이 지속적이고 강도 높게 가해져 온 것은 아닐까.
한국이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 대체’ 부문에서 세계 최고라는 점에서 저출생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자본의 설비투자에 대해 막대한 투자세액공제를 해주는 최고의 예우를 해주는 동안, 일자리를 잃은 노동은 국가가 자신에 가한 극심한 ‘무례’를 자신의 무능 탓으로 여기며 무엇이든 소득을 찾아 도시를 배회한다.
지난 2014년까지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 대체’ 부문에서 세계 1위는 일본이었다. 2015년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무소불위의 1위에 등극한 것이다. 유독 한국에서 더 노동이 홀대받는 정황이고, 이유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보쪽에서는 불편할 총노동,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책임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남의 탓’이 유일한 해법인 대한민국 정치에서 이 같은 ‘노동에 대한 무례’ 역시 정쟁의 대상일 뿐이지만.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는 바로 아래 땅쪽을 보지 말고 ‘멀리’ 보고, ‘과감하고’ ‘멋있게’ 발을 내딛어야 한다. 인구소멸의 길로 향하는 국가에서 탈출하려고 저출생 극복을 위한 세금제도(세제)를 꾀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장 세액공제 몇푼을 늘리는 특정 세법 조항의 제개정이 합계출생률에 기여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금제도는 사회와 경제를 변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외려 한 사회의 질병과 상처를 낳은 배경인 측면이 강하다. 오랜기간 지켜볼수록 그런 측면이 뚜렷하다.
그런 점에서 한걸음 물러서 숲을 봐야 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세법 개정 소요를 찾으려 궁싯거리기 이전에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생산 3요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고통스럽게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한국은 빠른 성장을 위해 밭은 호흡을 유지해왔다. 짧은 호흡은 단견과 졸속정책을 낳을 뿐이다. 국제기구 ASEAN+3 산하 거시경제연구소인 암로(ASEAN+3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 AMRO)의 한범희 그룹장은 지난 7월 하순 서울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이 저출생 부문에서 초격차 1위를 유지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엄청난 경제성장 속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속도로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가족과 노동에 대한 전통적 사고와 결별한 속도 역시 엄청났다는 설명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 생산 3요소 중 ‘노동’, 그 원천인 가족과 사람의 희생이 불가피 했다는 말로도 풀이됐다. 한범희 그룹장은 한국은행 출신으로,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암로에서 ‘다자간 통화스왑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팀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팜 민 투이(Pham Thi Minh Thuy) 호치민 국립정치아카데미-지역정치아카데미 교수는 20일(한국시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 대도시에서 많은 직업이 자동화되었기 때문에 높은 실업률로 구직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안정적 직업을 얻고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에 고등교육, 주택, 결혼, 구직 등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저출생 역시 아시아 노동에 대한 무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해 봄직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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